너저분한 경력 나열

by 권태윤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입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경험'이란 단어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자신을 뽑아야 실수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경험이란 것은, 교훈으로 작용할 수 있는 올바른 경험이 아니라, 잡다한 이력을 늘어놓은 ‘경력’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경력을 내세우며 경험 많은 후보임을 주장하는 그들 '경험의 질'을 나는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후보를 선택하는 판단기준이 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능력에 따라 고위직을 맡는 경우가 많겠지만, 주로 상위 권력자의 눈에 들어 얻어내는 경력이 많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력에 한 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 권력자에게 단소리만 일삼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정치권의 리더들, 아니 일꾼을 뽑는 기준은 강압적 리더십이 아니라,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 가는 통합적 리더십이어야 하고,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명함에 온갖 경력을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 사람 치고 내실 있는 이를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속이 알찬 사람은 자신의 경력을 굳이 드러내려 안달하지도 않거니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찬 속이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선출로 뽑는 정치적 리더는 수많은 조직과 팀을 이끌어 가는 주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권력자들이 자꾸만 경력을 들먹이는 것은, 말 그대로 권력자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인해 각종 권력형 비리를 비롯한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력 많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결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권력의 나눔과 분산을 실천하는 후보를 뽑아 팀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리더를 선출해야 합니다.


워렌 베니스(Warren G. Bennis)는 "리더십이란 비전을 현실로 바꾸는 능력" 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비전을 갖는 일에서 부터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 능력은 결코 우리나라와 같은 행정과 권력 시스템 아래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들의 리더십이란 것이 대부분 일방적 지시일 뿐 창의적 리더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기는 하지만, 배는 그런 용도를 위해 만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배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안정적 국정운영은 많은 행정경험이 아니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과 비전으로 조직과 집단을 조화롭게 이끌어 가는 창조적 리더십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과거 콜롬부스(Christopher Columbus)가 달걀을 두드려 깨서 세웠을 때 사람들은 전부 그를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할 것이면 누구는 못하는가?' 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창조적 모험심으로 신대륙을 발견한 그는 어느 날 창밖을 가리키며 "저 교외의 종탑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 나타난 저 수많은 창조물들은 모두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도전한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리더는 많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사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한발 앞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아가 누리기 위한 권력이 아니라 베풀기 위한 권력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선거를 통한 인재의 선발기준은, 얼마나 공정한 권력 나눔을 실천할 수 있고, 유능한 인재를 가려 쓸 줄 아는가 하는 용인술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최고경영자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선발하는 감각과 그들이 임무를 해내는 동안 간섭하지 않는 자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고,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묘비에는 "여기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뽑는 방법을 알았던 남자가 누워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용인술(庸人術)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로서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아니 새로운 일꾼을 자처하는 이들이, 알량한 경력을 내세우며 자신의 비교우위를 자랑하기 보다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제시를 해주길 원합니다. 그렇지 않고 묵은 경력을 가지고 내일을 이야기 한다면, 그들에게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과거를 위한 것일 뿐이며, 내일을 위한 희망과 꿈은 과거의 경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고인이 되신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정상에 오른 대통령의 명함에는 이름 석자만 적혀 있습니다. 그것으로 전부가 설명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명함에 너절한 경력을 줄줄이 적어 놓은 사람은 일단 버리는 게 좋습니다,

다운로드.jpeg


작가의 이전글인적(人的) 쇄신(刷新)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