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쓴 편지에 대해, 그 편지를 받은 상대가 "그건 거짓말"이라고 한다거나 "만들어 낸 얘기일 뿐 나는 그를 사랑하지도 않는다."라고 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일 것입니다. 또한 교수가 학생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강의자료를 가지고 열심히 강의했는데, 나중에 학생들이 "그 강의는 순 엉터리였다. 허무맹랑한 논리다"라고 반응한다면 참으로 억울하고 슬픈 일일 것입니다. "진실은 오직 신만이 알 것"이라며 여유를 부리기엔 우리네 감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김영삼 前대통령은 '新 3金 연합'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그런 말은 모두 언론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언론이 사실을 전달하는 집단이 아니라,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소설가 집단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언론사나 기자들은 참으로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는지 일체의 반응도 없었습니다. 기사는 언론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기자의 양심과 명예를 내건 작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작품을 두고 '가짜'라고 말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며 무덤덤하게 나온다는 건 언론의 속성에 비춰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단 김 前대통령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정치인, 기업인 등이 언론의 보도사실에 대해 "그건 언론이 지어낸 얘기다"라고 한다든가 "그건 순전히 기자의 작문이다"라는 반응을 보인 게 사실입니다. 특히 연예인들의 경우 그런 반응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각종 스캔들 보도가 나올 때면 대부분 부정하거나 "순전히 기자의 소설이다"라고 반응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기자들은 그런 엄청난(?) 명예훼손을 당하고서도 전혀 반응할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사간, 언론사와 정당간 명예훼손 고소·고발사건들을 놓고 볼 때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언론사간 보도사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불사하는 언론들이나 기자들이, 자기 기사를 두고 '가짜'라고 혹평하는데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다보니 독자들도 아주 당연히 기자들의 기사를 '소설'로 보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물론 아무 알맹이 없는 내용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기자들과 언론도 있기는 합니다. 특히 정치기사는 상당부분 추측과 예상에 바탕을 두는 '소설'인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사나 기자들이 자신들의 기사에 대해 '가짜'라느니 '거짓말'이라며 부정하는 일에 대해 단 한번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그 하나는 부정하는 당사자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고, 두 번째는 자신들의 기사를 '가짜'라고 해도 거기에 대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려있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사실보도를 고수해야 하는 언론이 작문을 밥 먹듯 한다면, 언론에 대한 신뢰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나아가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런 식의 기사 쓰기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언론사라는 명칭은 '공상작문社'라는 명칭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경우라도 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사라는 작품을 통해 평가받고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사람들이, 자기 기사를 '가짜'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목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기자 집단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지켜야할 명예도 없는 기록 노동자, 그것도 거짓을 기록하는 쓸데없는 집단임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기자 집단의 명예를 지키는 일은, 사실을 고수하려는 자세입니다. 분명한 사실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거짓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사의 사실 입증을 통해 스스로의 명예를 지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면 자신들의 기사가 부인하는 사람의 주장처럼 명백한 '거짓말'임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언론사나 기자의 명예는 사실을 보도하고, 사실만을 기록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사나 기자들이 하루가 멀다않고 벌어지는 기사에 대한 부정(사실이 아니다 라는 주장)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스스로 거짓기자, 거짓기사가 만들어 내는 거짓언론이라는 결론을 인정한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언론들과 기자들은 자사(自社)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만 발끈하며 소송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인정받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기자나 언론의 생명을 걸고 '거짓기사'라는 주장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소설화되어 가는 기사를 방지하고, 언론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