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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군 Nov 14. 2023

위선

위선은 차선일지도 모른다

위선을 비난한다. 

평소에 성실하고 선하며 이타적인 삶을 사는 이미지였던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 작은 흠이라도 발견되면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의 위선을 힐난한다.

특히 요즘은 '내로남불'의 표현을 써가며 유독 과민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정작 대놓고 나쁜 짓을 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덜 비판적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뻔히 보이는 나쁜 짓을 장황하고 정성스럽게 해 놓은 빌런에게는 오히려 무관심하다.

기대치가 낮은 것인지 그러려니 하고 단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비난은 해도 분노하지 않는다.  

반면 정직하고 순진해 보였던 사람이 행한 작은 잘못에는 눈에 불을 켜고 입으로 담기 힘들 정도의 욕을 해댄다. 

위선적이라는 비난의 말이 항상 따른다. 

그러나 위선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착하게 보이려 노력은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정직하거나 성실하거나 이타적이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그런 노력조차 안 하는 뻔뻔한 사람들이야 말로 더 제대로 응징해야 옳다.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성하고 더 주의하라’는 충고로 충분하다. 

물론 소위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완벽하게 꾸며진 '가짜의 삶'은 예외로 해야 하겠다.

그리고 사기든 폭력이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한 경우는 위선적이라는 말도 과분하다 할 것이다.

또한 위선에 관하여 말할 때 기부행위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몇몇 연예인의 기부 관련 기사에는 이런 식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너무 보여주기 식 아니야?"

"너무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보기 불편하네."

결국 이것도 위선 아니냐는 얘기이다.

기부의 이유는 그 형태만큼이나 다양하다. 

다소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부라는 좋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까지 극비로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기부하려면 남들 모르게 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런 당신들은 얼마나 많은 기부를 하며 살고 있는가?

자신이 아닌, 

자기 가족이 아닌, 

자기 친구가 아닌,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돈이나 노동력을 대가 없이 기꺼이 제공한 적이 얼마나 있는가?

착해 보이려고, 있어 보이려고 기부를 한다 해도 그건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다. 

어쨌든 그 기부 행위로 누군가는 도움을 받는다. 

누군가는 그들을 보면서 또 다른 기부에 동참할 수도 있다. 

그게 위선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런 정도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비판하는 사람에 내재된 상대방에 대한 묘한 질투심과 열등감이 작용한 결과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위선은 선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배’라는 말이 있다.

위선에 대한 알레르기는 위선의 문제가 아니라 알레르기, 즉 과민 반응의 문제이다. 

'대놓고 하는' 악에 대한 분노만으로도 우리의 인내력이 이미 용량 초과되어 버린 시대이다.

'적당한' 위선에 대한 발작에 가까운 호들갑은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자.  

'진심으로'가 안 된다면 '거짓으로'라도 선함을 행하도록 권하는 사회가 그나마 살만 한 세상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그런 세상은 불완전하게나마 선함이 악함을 이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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