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되기 전에 나를 꺼내본 밤

오늘도 포기하지 못한 나의 무게

by 김미선
3년 반만에 워킹맘을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노트북도 없는 워킹맘이다.

회사에선 일하느라, 집에선 아이 챙기느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3년 반이 지나갔다.

기록도 못 하고, 쉼도 없고, 누구에게도 '나'를 말할 수 없는 시간.

그런데 요즘 문득,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일도 잘하고 싶다. 일이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싶고, 내가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집에 오면,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도구도 없고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 정리하다 보면 쉴 틈도 없이 하루가 끝나버린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버티다 보니, 원래는 ‘일 잘하고 싶다’는 내 마음조차 자꾸 잊히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내 안에 여전히 있는 걸 알면서도, 지쳐서, 바빠서, 제대로 꺼내볼 수가 없다.


늦은 밤, 잠든 아이 옆에서 나는 오늘도 핸드폰을 켠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 말 못 한 생각들, 그 사이에 혹시라도 '나'에 대한 정답이 숨어 있지 않을까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찾아본다.

하지만 대부분, 핸드폰보다 내가 먼저 방전된다.

생각은 너무 많은데, 정리는 되지 않고 무겁기만 한 오늘이 그대로 내 안에 남는다.


내 가방은 늘 무겁다.

미처 사무실에 두고 오지 못한 일거리들이 주렁주렁 달린 채, 내 어깨에 매달려 집까지 따라온다.

출근길마다 그걸 후회한다.

‘왜 어제는 그냥 내려놓지 못했을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일거리들이 없으면 퇴근길의 발걸음이 더 무거운 느낌이다.

실제로 무거운 건 일거리보다, 그것들을 들고 귀가하는 ‘오늘도 포기하지 못한 나’의 어깨일 텐데.


오늘도 여전히 정리는 안 됐지만 한 줄이라도 써낸 내가 조금은 고맙다.

언젠가 이 기록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줄 날이 오겠지.

오늘은 그냥 그 시작을 해본 날이다.


《오늘도 내가 늦었다》 시리즈 E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