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참 애틋한 시
지난 새벽 매스꺼움과 어지럼증으로 대학 응급실에 실려 왔다. 평생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응급실에 거짓말처럼 와 있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실감난다. 각종 검사에다 뇌 MRI 촬영까지 긴박하게 마쳤다. 응급실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얼마쯤 지났을까?
“MRI 검사 결과상 아무 이상 없네요. 뇌혈관도 깨끗하고요. ”
의사 선생 진단 결과를 듣고, 순간 나도 모르게 '앗! 살았다.' 맘 속으로 외쳤다. 어질어질했던 어지럼증도 금방 말짱해지는 느낌이다.
병원 밖으로 나서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렇게 화사한 봄날에 살아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불현듯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여든을 훌쩍 넘긴 우리 엄마는 몇 번의 봄날을 더 볼 수 있을까?’
올봄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 놓은 엄마랑 봄나들이. 지금 당장 가자. 마음이 좋아서 먼저 콩콩콩 소리를 낸다. 그 길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친정 동네에 도착했다.
“엄마, 엄마.”
엄마는 대답이 없다. 국에 밥 한 술 말아 대충 먹는 듯한 국그릇 한 개, 묵은지 씻어 담은 김치통 한 개, 달랑 숟가락 하나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 옆에 휴대폰도 놓여있다. 온기 없는 서늘한 방바닥. 지난 밤 보일러 기름 아끼느라 썰렁하게 주무셨을 엄마.
‘노인네 지지리 궁상이야! ’ 순간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목이 울컥 메어 온다.
엄마의 단조로운 동선이야 내가 다 꿰고 있지. 햇빛 나면 밭일하기 힘들다고 이른아침에 밭에 가셨을거야. 엄마 올 때까지 엄마 방 우렁각시 노릇이나 좀 해 볼까. 이곳저곳을 치우며 한 시간 남짓을 기다렸다.
엄마가 오셨다.
“우짠 일이고? 아무 연락도 없이.”
반가움보다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으신다.
“엄마랑 단둘이 벚꽃구경 가려고 왔지? 휴대폰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거라 했지요?”
엄마가 아이를 타이르듯. 엄마에게 장난스럽게 말한다. 사실 요즘 엄마가 자꾸 내 아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뭐 전화 올 때가 그리 있나? 오늘 동네 장날이잖아. 한의원에 손님 많을까봐 아침 일찍 허리에 침 맞고 물리 치료하고 왔지.”
“그러셨구나! 많이 아프신 거야? 허리?” 엄마의 허리를 조심스레 만지며 걱정스럽게 꼬치꼬치 묻는다.
“괜찮다. 늘 아픈 거 뭐. 죽을 때가 다 되어가면 아픈 게 일이지. 안 아프고 사람이 죽나?”
“엄마도 참! 맨날 죽는 이야기 고만 좀 하셔. 이 좋은 세상에 더 오래오래 재미있게 살 생각을 안 하시고.”
가볍게 핀잔을 준다.
“엄마, 우리 오늘 맛있는 것도 먹고 벚꽃 구경도 실컷 하자.”
“우리 딸 퇴직하고 나니 좋네. 늙은 어미랑 놀아도 주고.”
엄마의 깊은 주름 고랑 사이로 웃음이 희미하게 번진다. 늘 혼자 먹는 밥. 아까 본 조촐하다 못해 초라한 엄마의 밥상이 맘에 걸린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도 드시게 해야지 싶다. 큰 맘 먹고 고급 한정식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야야,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네. 반찬이 서른 가지는 족히 되겠다.”
당뇨가 있어서, 소화가 안 돼서. 갖가지 이유로 밥을 반 공기도 채 못 드신다. 요리조리 솜씨 부린 반찬은 눈요기만 하신다. 늘 집에서도 먹는 된장찌개에 엄마의 숟가락이 자꾸만 간다. 된장이 속을 편하게 한다며… 고봉밥 한 공기 뚝딱 잡수시던 엄마의 좋던 식성도 야속한 세월이 삼켜 버렸다. 엄마의 몸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엄마, 미안해. 더 일찍 맛있는 음식같이 먹으러 다니지 못해서. ’ 나도 밥알이 목구멍에 턱턱 걸린다. 밥 대신 엄마 몰래 눈물을 꾸역꾸역 삼킨다.
"엄마, 이제 배도 채웠으니 경주 보문 벚꽃 구경 가 볼까요?"
사실은 얼마 전부터 휴대폰 용량 부족 경고 메시지가 자주 떴다. 이참에 사진 정리 좀 할까 싶어 저장된 사진을 살펴보았다. 우리 부부 해외여행 사진, 친구들, 아들 사진, 손자 사진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정작 엄마랑 찍은 사진 한 장이 제대로 없었다. 내가 이리도 무심한 딸이었나? 엄마랑 세상 이별하는 날 얼마나 후회하려고 내가 이러고 살았나? 화들짝 놀랐다. 엄마랑 지금부터라도 추억을 많이 남기자. 사진도 같이 많이 찍자. 마음 먹었었다.
“아이구 곱기도 해라.”
엄마는 꽃보며 사랑스러운 아기 보듯 예뻐라 고와라 연신 벙글벙글하신다. 엄마 모습 스냅 사진도 몰래 촬칵촬칵 찍어둔다. 엄마의 거뭇거뭇 주름진 얼굴에 내가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얼른 씌워준다. 난생처음 써 보는 선글라스를 오늘은 어색해하지 않으신다. 엄마 이렇게 해봐. 요렇게 해봐. 내 요구도 척척 잘 들어주신다.
전에 같으면 "다 늙은 어미 얼굴은 자꾸 찍어서 뭐 하노." 하시며 손사래를 치셨을 텐데. 엄마도 함께 나이 들어가는 딸의 기분을 맞춰 주시려는 걸까? 우리가 함께 할 날이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 엄마랑 다정하게 셀카도 몇 장 찍어둔다. 엄마도 웃고 나도 엄마 따라 웃는다. 나는 너무 좋아서 또 눈물이 나려 한다.
엄마와 함께 뜨끈한 온천욕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오늘 고맙다.우리 딸 덕에 호강했네. ”
“엄마는 자식한테 늘 고맙다고 하셔? 자식이 천만배 만만배 더 고맙지. 엄마, 우리 다음에 또 우리 재밌게 놀자.”
약속을 남기고 돌아선다. 발걸음이 다시 무겁지만 마음은 숙제 하나를 해낸 듯 가벼워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엄마 방에 걸려 있는 엄마 새댁 때 사진이 자꾸만 클로즈업된다. ‘엄마도 여자였고 뜨거운 청춘시절이 있었는데, 엄마는 밤마다 엄마 한창때 사진을 보며 헛헛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실까?’
엄마 인생이 그려낸 무늬. 주름 꽃 핀 엄마 얼굴. 엄마는 흉하다고 하시지만 내 눈에는 숙연하도록 슬프고도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사진 속에 엄마는 환하게 웃고 계신다.
오늘처럼 엄마가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효도라는 말로 치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일상속에서 소소하게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자.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엄마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드리자. 정서적 안정감 속에서 앞으로의 남은 삶을 살아가도록 살펴드리자.
엄마와 나의 소소 리스트를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본다.
전화도 더 자주 하고, 반찬 두어 가지 만들어 가서 엄마랑 같이 밥 먹자. 엄마랑 잠자며 밤이 깊도록 수다도 떨자, 엄마랑 목욕가서 등도 시원하게 밀어주고 바나나우유도 나란히 마시자. 오늘처럼 꽃 보러도 자주 다니자. 생각해 보니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환갑까지도 못사시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살아계실 때 잘 못 해드린게 평생 후회스럽다. 아무튼 친정엄마가 나의 한이 되지 않도록 하자.
그 무엇보다도,
살면서 쑥스러워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말. 요즘 젊은이들은 밥 먹듯이 잘도 하는 그 말. 늘 속으로만 우물우물 대는 말.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꼭 해주고 말.
‘엄마 사랑해!’
오늘은 우선 버스 유리창에 손 글씨로 또박또박 써 본다.
‘엄마,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