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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대 줌마 Apr 27. 2024

아무튼 집밥

엄마 밥은 사랑입니다

엄마 음식 중에 제 소울 푸드가 뭔지 아세요?”

지난해 장가간 아들이 저녁 준비하는 나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그런 엄마 음식이 있었니?” 

요리는 젬병이라 아들의 말이 의외다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들의 대답을 기다린다.

“ 시래기 넣고 끓여 주신 얼큰한 닭개장이요그게 최고였어요.” 

양손으로 엄지척을 날린다.

“ 그랬어그게 맛있었어


다시금 확인하듯 묻자,     

아들의 서사가 이어진다초등학교 6학년 체력장 하는 날이었어요아이들은 오래달리기 종목을 가장 힘들어했어요제가 지옥 훈련하듯 운동장 5바퀴를 헉헉거리며 완주하고 1등으로 들어왔어요아이들이 깜짝 놀라더라구요운동장 트랙을 돌면서 머릿속은 레미콘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갔죠

 경주서 대구로 전학해 온 촌놈이라고체구가 작다고살짝 깔보는 애들에게 오래달리기로 본때를 보여주자.’ 

마음먹고 이를 악물며 열심히 달렸죠그날 이후 아이들 태도가 좀 달라지더라구요역시 남자는 체력이라니까요하하하

그날 헐크처럼 힘을 낼 수 있었던 건아침에 먹은 엄마의 닭개장 덕분이었어요요즘도 지치고 힘들 때면 엄마의 닭개장이 생각나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그게 바로 밥심()이네. ”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고 달리는 어린 시절 아들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며 내 마음이 들썽인다


아들오늘부터 엄마 죽을 때까지 닭개장은 무한 제공한다언제든 먹고 싶을 때 끓여달라고 전화만 해.”      

그 초등생 아들이 서른셋 청년으로 어엿하게 성장했다옛 남친에게 뒤늦은 사랑 고백을 들은 것처럼 마음이 울렁인다. 내 아들의 엄마여서 좋고 행복하다무엇보다 아들의 엄마 음식에 대한 따뜻한 의미 부여가 참 고맙다.     

맞아집밥은 단순히 배고픔만을 채워 주는 게 아니지가족들을 향한 엄마들의 무언의 응원과 사랑이 담긴 푸드지생각해 보니 내겐 외할머니 밥이 그랬어.’     


밥 이야기를 하니 밥에 얽힌 웃픈 기억하나가 생생히 떠오른다

얼마 전 공전의 히트작 응답하라! 1988’처럼.

응답하라.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짜장면 배달 왔습니다.”

 여섯 살 난 아들 녀석이 손잡이가 달린 카세트 녹음기를 들고 우리 부부 앞에 섰다카세트의 열림 버튼 누르더니 뭔가를 꺼내는 시늉을 한다카세트를 툭 닫고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맛있게 드십쇼.” 하며 총총히 뒤돌아서는게 아닌가.     

중국음식점 배달원 흉내다흉내.”

우리 부부는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었다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속에서 멀미처럼 자꾸만 올라왔다그날 이후로 한동안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은 상처 같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당시 여섯 살세 살 난 두 아들 녀석과 초등교사 근무 시절참 전투적으로 치열하게 살았다퇴근하면서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에게 맡겨 둔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이미 파김치다저녁밥 하기가 귀찮고 힘든 날이 많았다배달 음식으로 네 식구 허기를 자주 채우곤 했다다행히 아이와 남편은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었다주부로서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나도 살아야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아이들은 다 자라 성인이 되었다.

서른 중반두 아이의 아빠가 된 큰아들은 그날을 어떻게 추억할까     


나이 들어가면서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 대한 미련이 하나둘씩 떠오른다아이들 한창 자랄 때 내가 만든 음식 많이 못 먹인 게 제일 후회된다.

지금이라도 아이들 불러서 내가 지은 밥을 자주 먹이고 싶다는 바램이 있다.

첫째는 멀리 타 도시에 살아서 어렵고다행히 둘째는 장가가서도 나와 십여 분 거리에 산다

마침 아들이 수요일마다 퇴근하고 곧바로 운동하러 간다길래

아들아수요일마다 엄마 밥 먹고 운동 갈래?” 했더니

하하하저야 좋은데어머니 귀찮지 않으시겠어요?”

의젓하게 엄마부터 챙겨준다.


장가는 갔어도 맞벌이 부부라 시간에 쫓기며 사는 걸 안다디톡스 쥬스 한 잔으로 아침을 떼운다는 말을 듣고,

건강에 좋을지는 몰라도 고거 먹고 하루 일할 힘을 어떻게 내라고?’

숨겨둔 시어머니 잔소리 본성이 불쑥 나온다물론 혼자 속으로 삭이고 마는 말이지만히히히.     


이번 수요일엔 우리 아들 뭘 해서 먹일까

시큼한 김장 김치에 돼지 사태살 듬뿍 넣은 김치찜시래기 푹푹 삶아 넣은 아들 소울 푸드라는 얼큰 닭개장단짠단짠 국물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아니면 구수한 청국장에다 양배추겉절이요즘 미나리 향긋하게 맛있는데 미나리 오징어무침도 좋겠다.

요것조것 유튜브 요리정보도 찾아본다

그 궁리로 월요일부터 나는 밋밋한 일상에서 룰루라라 즐거운 모드로 전환 된다.

   

아들아엄마 밥 먹고 세상에 쉽게 지치지 말고 힘내거라!’

음식마다 엄마 응원 한 숟갈씩 추가 한다.

자작자작보글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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