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오프라인을 보면 마치 성별, 세대 간 갈등이 아니라, 끝장을 보는 전쟁처럼 느껴진다.
누가 옳은가를 말하기 전에, 왜 이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는지부터 되묻고 싶어진다.
물론 이 갈등의 뿌리는 단순하지 않다. 각자의 입장에는 실제 상처와 고통이 녹아 있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차별을 말하고, 남성은 남성이기 때문에 받은 손해를 호소한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보다, '무기'로 만들어버리는 구조다.
네가 더 나빴잖아
너희는 그럴 자격 없어
이런 식의 말들이 오갈수록, 대화는 사라지고 정당화만 남는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기기 위한’ 논리를 찾고 있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감정들이 점점 ‘팔린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주장일수록 더 자극적이고, 클릭을 유도하며, 정치적 소비될 기사 등으로 활용하기 쉬운 재료가 된다.
이슈는 짧고 선명할수록 좋다.
여자들은...
남자들은...
기성세대들은...
청년세대들은...
단 몇 글자만으로도 수많은 댓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감정조차 ‘소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의 실제 상처가 ‘논리 배틀의 재료’가 되고, 누군가의 분노는 ‘트래픽 수단’이 되어버리는 상황.
정작 상처 입은 사람들은 더 고립되고, 진짜 문제는 흐려진다.
이럴수록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서로가 다르게 느끼는 지점을 “그건 네가 예민해서 그래”라고 무시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상처가 똑같이 크지는 않지만, 모든 아픔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들으려는 태도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통계와 논리가 오가도 서로는 계속 평행선을 그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냥 조용히 살면 돼. 왜 그렇게 싸우려 해?”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싸움’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침묵이 쌓인다.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다. 자라온 환경도, 경험한 사회도, 들은 이야기들도 다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이해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이해하려는 ‘의지’는 가질 수 있다.
논쟁이 아닌 ‘대화’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내 생각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
그건 훈련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서로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침묵과 더 많은 경청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갈등을 ‘풀어가는 사회’의 시작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