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시간 경험

by 드타



경험이란 참 신기하다. 좋았던 경험, 나빴던 경험, 성공했던 순간, 실패했던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삶의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불쑥 튀어나온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의 경험’을 더 선호하고, 실패는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렇다. 누구나 쓰라린 실패보다는 달콤한 성공을 원하니까.

그렇지만 이상적인 비율로 성공과 실패를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공 70%, 실패 30%쯤이 딱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대개 그 반대다. 노력과 의지가 뚜렷했음에도 실패할 때가 많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어이없을 만큼 쉽게 일이 풀릴 때도 있다. 경험이란 게 이렇게 제멋대로고 예측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은 결국 모두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뇌는 어떤 경험이든 학습의 재료로 삼기 때문이다. 실패는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오래 남는다. 반면 성공은 순간적으로 강한 도파민과 성취의 호르몬을 분출시켜 정신을 마치 마취시킨다. 그래서 더 달콤하다. 그리고 사람은 그 ‘성공의 마취’를 다시 맛보기 위해 또 무언가를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동기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험의 진짜 가치는, 의외의 순간에 드러난다. 살면서 전혀 쓸모없을 것 같았던 경험이 중요한 순간에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건 마치 오래전에 사놓고 잊고 있던 물건이, 갑자기 꼭 필요한 날에 꺼내 쓰이는 것과도 같다. 반면에 분명히 의미 있었고 가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막상 필요할 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경험의 쓰임새는 항상 우리의 예상 밖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경험은 단순히 시간의 소비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통과해 가는 증거’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감정이 그 시간을 직접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에는 언제나 고유한 무게가 있다. 그것이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간에, 경험은 내 안에서 침전되고, 언젠가 꼭 필요한 순간에 그 가치를 드러낸다.

또한 경험은 나를 설명해 주는 살아 있는 언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모든 것은 경험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사람과의 연결점이 되기도 한다. 어떤 대화에서는 “나도 그런 적 있어”라는 한 마디가 강력한 공감과 신뢰를 만들기도 하니까.

결국, 아무리 불완전하고 불균형한 경험이라 해도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삶이란 예측불가능한 여행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온전히 시간을 겪어낸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경험이 실망스럽거나 무의미해 보여도 괜찮다. 언젠가 그 경험은 꼭 써먹게 될 것이다. 의외로, 아주 중요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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