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빚졌을까?

by 드타

"한 달 벌어 한 달 쓰는 게 당연해졌다.

근데 이상하다. 매년 더 힘들다. “


어릴 땐 이렇게 배웠다.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저축도 하고, 노후도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다르다.

벌 만큼 벌어도, 돈은 쌓이지 않는다.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사라진다.

대출이자, 월세, 보험료, 카드값, 물가 상승분으로 전부 소비된다.

‘쓸 게 많아서 못 모은다’는 말이 이제는 정상처럼 들릴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문득 의문이 든다.

“왜 우리는 이렇게 빚졌을까?”


개인의 잘못이라는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소비를 줄이지 못해서 그렇지.”

“가성비보다 감성 소비를 너무 많이 했나 봐.”

“다른 사람들은 다 저축하는데, 나는 왜 못 하지?”


하지만 이런 자책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일 만큼 빠르게 증가해 왔다.

2024년 기준으로 한국 가계의 부채는 GDP의 100%를 넘는다.

즉, 나라 전체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총소득만큼을 가계가 빚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건 개인의 소비 습관이나 금융 문해력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사회의 구조가, 빚을 질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전세 제도는 부채의 입구다.


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는

가계가 빚을 지게 만든 대표적인 구조 중 하나다.


전세는 겉보기에 이자 없이 거주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전세 자금은 대출로 충당된다.

그리고 전세 가격 자체가 시장에 따라 급등락 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더구나 전세 대출이 많아질수록, 그 돈은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

집값을 더 올리는 역할까지 한다.

즉, 빚이 빚을 부르고, 그 빚이 자산가치를 또 부풀리는 악순환.


‘집은 내 것 아니라 은행의 것’이라는 말은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 자조 섞인 표현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빚을 전략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생존과 자산 형성의 유일한 도구처럼 여겨져 왔다.


“전세로 살다 간 평생 집 못 산다.”

“무리해서라도 내 집 마련해야 한다.”

이런 말은 사회 전체에 내재된 불안감을 반영한다.

결국 다들 대출을 당겨서라도 집을 사려하고,

그 수요는 부동산 시장의 과열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안에는 또 다른 역설이 있다.

집값이 오르면 가진 사람은 자산이 늘어나지만,

없는 사람은 더 빚을 져야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는 구조가 된다.


결국 이 구조 안에서 ‘대출은 투자다’라는 말이 정당화된다.

그 순간, 우리는 빚을 전략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점점 빚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저금리의 함정은 빚을 당연하게 만든 10년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코로나19 직후까지,

한국은 역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시대를 경험했다.

돈이 싼 시대였고, 대출은 쉽게 열렸다.


그 덕분에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자산 시장은 활황을 맞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레버리지가 너무 일상화되었다는 점이다.

월급보다 자산 가치 상승이 더 빠르다는 착각,

은행이 알아서 대출을 챙겨준다는 신뢰,

그리고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조급함이 겹쳐졌다.


그 결과, 대출은 옵션이 아닌 기본값이 되었다.

소득보다 대출이 먼저였고,

현금보다 자산 가치가 더 중요해졌고, 미래를 당겨 쓰는 게 유일한 생존 방식처럼 여겨졌다.


시스템이 빚을 유도한다.


정리하자면,

빚은 나쁜 것 이 아니다.

하지만 과도한 빚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인 구조에 대해 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빚을 진 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집은 사야만 하는 자산이 되었고, 전세는 빚의 입구가 되었고,

대출은 생존의 기본이 되었고, 자산 상승만이 희망처럼 포장되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보다

‘내가 잘못 살았다’는 자책을 먼저 한다.

그게 이 시스템이 만든 가장 큰 착각이다.


이제 구조를 다시 봐야 할 때이다.


이 글은 소비를 줄이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미니멀리즘이 답이다’ 같은 낭만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왜 내가 이 구조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는지를 아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던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에 계속 밀려나고 있다면,

그 이유를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그걸 알아야,

적어도 내 삶에서 ‘지속 가능한 선택’을 설계할 수 있다.

빚이 아닌, 흐름을 중심으로 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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