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친구들이 월세 계약서를 붙잡고 보증금 걱정에 잠 못 이루던 시절, 나는 사택에서 살았다. 월세 걱정도, 전세 대출이자 계산도 할 필요가 없었다. 평일엔 사택에서, 주말엔 부모님 집에서 지냈다. 부모님이 차려주는 밥상 덕에 냉장고 속 유통기한 걱정도 없었다.
게다가 회사는 출퇴근 차량의 기름값까지 지원했다. 덕분에 차는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내 발처럼 자유로운 도구’였다. 자동차 유지비는 0원, 기름은 무제한 충전. 주말이면 마음 내키는 대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이 모든 상황을 단순히 ‘운이 좋았다’ 고만 치부하기엔, 당시의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내 수입 대부분은 ‘순수하게 나를 위해’ 혹은 ‘그냥 쌓이는 돈’이었다. 쓰지도 못한 월급이 꼬박꼬박 투자 계좌로 들어갔고, 숫자는 서서히 불어났다.
그런데도, 부족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풍족한 환경 속에서도 ‘돈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거, 그냥 욕심 아닌가?
그렇다. 맞다. 인정한다.
이래도 저래도 돈에 대한 만족은 끝이 없었다.
처음엔 자산 1억이 목표였다. ‘1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과 성취감을 상상하며 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막상 그 목표를 달성하니, 나는 다시 기준을 바꿨다. 이번엔 ‘금융자산 1억’이었다. 현금·주식·채권을 포함한 순수한 금융자산. 그리고 이마저도 달성하면, 목표는 연 배당수익 1,000만 원으로 변했다.
목표가 변질된 게 아니라, 욕망이 한 단계씩 위로 옮겨간 것이다.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그때 비로소 알았다.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30억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끝일까? 아니다. 그 순간에도 사람의 마음은 ‘그다음’을 찾는다. 30억이 있으면 50억이 눈에 들어오고, 50억이 있으면 100억이 궁금해진다.
이건 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욕도, 식욕도, 명예욕도 마찬가지다. 욕망은 해소되는 순간 허무함이 따라온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 사진만 봐도 행복하지만, 배를 채운 직후에는 오히려 ‘왜 이렇게 많이 먹었지?’ 하는 후회가 남는다.
욕망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윤활유다. 하지만 기름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과하게 붓다 보면 엔진이 망가진다. 욕망이 동력이 아니라 독이 되는 순간이다.
충족과 감사의 경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나만의 충족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이 기준은 남과 비교해서 세울 수 없다. 친구가 연봉 1억을 벌어도, 내 삶이 편하고 만족스럽다면 충분한 것이다. 반대로, 내가 연봉 3천만 원이라도 소소한 자유와 시간을 누린다면 그것 역시 충족이다.
욕심과 필요를 구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필요 =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식사, 안전한 주거, 생활의 기본을 유지하는 자금.
욕심 = 필요 이상의 소비,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과도하게 쌓아두는 자산.
이 구분이 명확해야, 욕망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쓸 수 있다.
욕망을 쓰는 법
욕망을 ‘억누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적절히 써야 한다.
차라리 ‘욕망을 엔진오일처럼’ 쓰는 게 맞다. 달릴 땐 필요하고, 과하면 해롭다.
내 경우, 투자 목표를 세울 때 ‘달성 시점에 기념으로 소중한 사람에게 베풀어야겠다’는 보상을 걸어둔다.
그렇게 하면 목표 달성 직후 허무함이 덜하다. 다음 욕망으로 곧장 옮겨가기 전에, 잠깐 멈춰서 ‘이 정도면 됐다’는 숨 고르기를 하는 셈이다.
당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이제 안다.
욕망은 해소하는 순간부터 다음 단계를 향해 간다.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그래서 ‘내 욕망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지금 당신이 가진 것을 ‘당연한 배경’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나처럼, 이미 풍족한데도 ‘조금만 더’를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돈도, 명예도, 사랑도, 결국은 자신이 만족하는 순간이 진짜 끝이다.
그 기준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정하자.
그게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욕망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