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조각 상보는 가족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었다. 엄마는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마친 뒤에는 밥상을 다시 정리하여 그 위에 상보를 살포시 얹어 놓곤 했다. 늦은 시간까지 배곯아 가며 일하고 들어온 가족을 위한 엄마만의 사랑 표현이었다.
나는 며칠 있으면 다가올 명절 준비를 위해 냄비, 소쿠리, 채반 등 조리도구를 찾던 중 낯익은 보자기 하나를 발견하였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조각 상보였다. 색은 조금 바랬지만 조심조심 빨아 햇볕에 널어놓고 보니 조각 상보가 점점 선명한 색으로 다가왔다. 타임머신은 나를 태우고 중년의 엄마 앞에 데려다준다.
엄마는 늘 반짇고리와 재봉틀을 옆에 두고 시간만 나면 무엇인가를 꿰매고 수선하곤 했다. 오 남매의 구멍 난 양말이나 바지의 해진 무릎 부분, 못에 걸려 찢겨 나간 옷, 바지 단의 길이 조절까지 감쪽같이 새것처럼 만들어 주셨다. 반짇고리와 재봉틀만 있으면 엄마 손에선 매직이 일어나곤 했다.
부모님이 기거하시던 안방 한구석에는 오래된 문갑이 있었다. 그 안에는 엄마의 보물들이 가득했다. 엄마의 보물은 한복, 모시, 베, 광목의 자투리 천과 작아진 자식들의 옷가지, 색색이 단추, 지퍼, 색실, 가위, 바늘, 고무줄, 골무 등이었다. 그 당시 엄마의 보물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엄마는 수선해야 할 목표가 정해지면 영락없이 문갑 문을 열고 조각천을 찾아 이리저리 대보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중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한복 조각을 여러 모양으로 잘라 색과 모양을 조화롭게 구성해 조각 상보를 만드시는 것이었다. 바늘에 실을 꿰어 머리 위로 가져가 쓱 쓱 문지르고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어린 눈에는 무섭기도 하고 신기했다. 한번 시작하면 완성될 때까지 늦은 시간에도 계속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상 앞에 가면 새로운 조각 상보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곤 했다. 그 시절 엄마는 고난과 힘든 시간을 인내하기 위해 바느질을 선택하셨던 것 같다. 가슴이 저릿해 왔다. 모전여전인지 나도 마음이 복잡해지면 유행이 지나 입지 않던 옷들을 꺼내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수선을 한다.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엄마도 이런 심정이었나 보다.
결혼 초 서울에서 엄마가 보내 주신 살림을 정리하던 중 알록달록한 조각 상보 여러 개를 발견하였다. 네모 모양, 육각 모양, 팔각 모양, 둥그런 모양 다양한 색으로 조각조각 잇대어 손바느질로 만든 조각 상보였다. 몬드리안의 작품보다 엄마의 조각 상보가 예술혼이 더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혼과 사랑이 오롯이 전해지니 가슴이 뜨거워지고 명치끝이 탁 막히는 듯했다. 아프셨던 엄마는 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한 달 후 하늘나라로 떠났고 막내딸 집에는 와 보지도 못해 나는 밥 한 끼 차려 드리지 못한 불효자식이 되었다.
엄마의 조각 상보는 그렇게 30여 년 긴 세월 내 곁을 지켜주었다.
명절 때 만 되면 각종 전, 떡, 생선 등 명절 음식을 만들어 채반에 놓으며 보란 듯이 엄마의 조각 상보를 자랑스럽게 덮었다. 힘들게 장만한 음식들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번 명절에도 하나 남은 헤어지고 색 바랜 조각 상보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명절 음식 위에 살포시 얹어 놓아야겠다.
각자 인생의 빛바랜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덧대다 보면 자신만의 삶의 모양이 만들어지듯 엄마의 조각 상보도 엄마 삶의 여러 모양 중 하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