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죽도시장이 있다. 그중 으뜸은 다양한 해산물을 파는 어시장인데 늘 전국 각지 사람들이 몰려 시장은 북적인다. 그러나 나는 선뜻 어시장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진하게 풍기는 비릿한 냄새와 바닥은 물로 흥건해 신발이나 옷에 비린 물이 튈까 봐 까치발을 하고 어정쩡하게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내기라는 티를 내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신혼 초에 그래도 용기를 내어 남편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한산한 시간을 선택해 죽도시장을 방문하였다. 방문객이 없어서 그랬는지 내가 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아주머니들이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호객 행위를 하는 행동에 질려 한발 한발 그 속으로 들어가기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시장 온 목적을 되새기며 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떤 것을 사나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나를 끌어당겼다. “새댁 갈치 물 좋다. 개시도 못 했는데 하나 팔아 주고 가이소” 이러시는 거였다. 그 말에 내 발이 그 자리에 묶여 버렸다. “맛있고 싱싱하죠?”라고 당차게 서울말로 또박또박 물어보았다. 내가 물어보는 순간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 벌써 갈치를 자르고 손질하고 있었다. 나는 쭈뼛쭈뼛 말도 못하고 순순히 돈을 드리고 검은 봉지를 받아 들었다. 돌아 나오면서 왠지 모를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집에 와서 남편의 귀가 시간에 맞춰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미역국, 잡채, 불고기 그리고 갈치구이 등 제법 그럴싸한 밥상이 차려졌다.
남편은 갈치구이를 제일 좋아한다. 밥상의 갈치를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바로 가시를 바르고 두툼한 살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따라 얼른 한입 먹어 보았다. 그런데 이건 내가 먹어 보았던 갈치 맛이 아니었다. 두툼한 살은 퍽퍽하고 비리고 고소함은 전혀 없었다. 뼈는 갈비뼈만큼 크고 단단했다.
당연히 국내산인 줄 알았는데 세네갈산 갈치였다. 갑자기 속았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가며 쓴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이런 에피소드 덕분에 한동안 죽도 어시장 가기를 거부하는 강력한 이유가 되어 버렸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 흘러 흘러 이제 결혼 36년 차가 되었다.
이제 어시장 가면 단골 가게도 생기고 문어, 갈치, 고등어, 소라, 전복 등 국내산과 수입산을 구별하게 되었다. 비릿한 생선 냄새도 익숙해졌다. 어시장의 시끄러움과 아주머니들의 거칠고 투박한 말투, 사지 않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쏟아 내는 해석 불가한 사투리는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 포항 아줌마가 되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네갈산 갈치의 맛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 추석장을 보러 장바구니를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