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by 아몰랑귀찮아

어려서부터 나는 망상을 참으로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직도 내가 4학년이던 시절을 잊지 못한다. 망상으로 점칠된 이야기를 풀기 위해서는 이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망상은, 전혀 의외가 아니다만, 홀로 있을 때 꽃핀다. 친한 친구와 대화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열중할 때는 하고픈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이 이 망상이라는 것이다. 4학년 때의 나는 애석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냈으며,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따라서 나는 정말이지 수많은 망상들로 잠을 설쳤다. 1분이라도 늦게 자려 망상을 최대한 화려하고 강렬하게 생각해내곤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잠에 들고 말았으니까. 어쩌면 나는 이때부터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버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지루함을 떨쳐내고자 최대한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를 선호했다. 어차피 머릿속이기에 불필요한 설명이나 장면들은 모조리 넘겨버린 다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재미 있는 장면들만 상상해도 됐다. 따라서 내 망상의 대다수는 기결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야기의 시작을 촘촘하게 짜서 기를 장식하고, 내 나름대로 정한 명장면 두세 개 정도를 무성의하게 배치한 다음 마지막에는 썩 그럴싸한 완결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곳에 승이나 전이 있을 장소는 없었다. 그러고 나면 내 작품은 정말이지 대문호들의 장편소설 부럽지 않을 명작으로 탈바꿈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5학년 때, 나는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흥미로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날은 아버지가 1년만에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었다. 카카오톡을 통해 주기적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며,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전화통화도 했지만 그날의 아버지는 정말이지 내게 있어 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감정을 망상 소재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1년이라는 기간동안 딱 한 번 만나본 아버지의 이질적인 모습은 꼭 대중매체에서 흔히들 비추는 도플갱어와도 같았다.


'혹시라도 쿠웨이트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면 나는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니 절로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정말 내 아버지가 맞는 것일까? 혹여 다른 사람이 아버지의 행세를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내게 아버지를 따스하게 맞이하시는 어머니 역시 실로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보는 어머니가 가짜라는 생각은 차마 못 한 채 그저 '아버지에게 속고있는 거야!' 라며 망상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망상이 으레 그렇듯 내가 진정으로 아버지를 가짜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런 상상을 할 때면 새벽에 무서워 방 밖에도 못 나가곤 했으니 실로 놀라운 상상의 힘이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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