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계기
무엇을 시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굳은 각오가 아니라 사소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 같은 작심삼일의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나의 인생의 크나큰 변화 역시 시작은 무척이나 어이없을 정도로 사소했다. 내 7살 때의 선택이 나머지 13년의 인생, 나아가서 평생의 인생이 뒤바뀔 선택일지 그때의 나는 몰랐으니까. 7살 때의 나는 여린이집의 문제아 중 한 명이었다. 내 친구 도원이가 도라에몽 속 퉁퉁이라면 나는 비실이었다. 퉁퉁이만 믿고 문제를 일으키는 소심한 문제아. 그것이 나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는 어린이집에서 그 어떠한 공부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놀기 바빴다. 어차피 유치원생이었던지라 크게 상관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영어였다. 나는 미국인 지인들을 여럿 아시는 고모할아버지에게 영어를 조금씩 배웠었다. 옛 기억 속 고모할아버지는 내가 배꼽인사를 하기보다는 악수나 주먹인사를 하기를 원하셨다. 나는 주먹을 맞댄다는 행위가 신기하게 느껴졌으며, "Nice to meet you."가 어떤 의미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랬던 나였기에 어느새 나는 어린이집 내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Fan이 선풍기고 whale이 고래라는 것을 아는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물론 2025년도의 유치원생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그때의 순수한 어린양들이 아는 영어단어라고는 yes나 no, 그리고 thank you 정도밖에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무려 fan이 선풍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영어를 잘하는 아이였다. 잘하는 것을 하면 즐겁다고들 하지 않던가. 애들 사이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꽤나 유쾌했다. 잘하는 것이라고 해봐야 달리기 하나였던 내 인생에 또 다른 장기가 생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 아버지께서 내게 국제학교에 입학해 보라고 권하신 것이다. 이때의 나는 국제학교가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크게 관심도 없는 상태였다. 어린이집에서 사귄 친구들 중 대부분이 5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더더욱 관심이 줄었다. 영어를 좋아한 것 역시 영어 그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영어를 잘함으로써 얻는 관심이 좋아서였다. 정확히는 나의 친한 친구들의 관심 말이다. 그런 친한 친구들이 간다는 초등학교를 내버려두고 4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오고 가며 국제학교에 다녀보라는 아버지의 권유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운명이란 게 있던 것일까? 그 국제학교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4주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른바 여름학교(Summer School)라는 커리큘럼이 존재했다. 아버지는 여름학교를 다녀본 다음 결정하는 것이 어떻냐 물으셨고, 나는 그렇게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국제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4주 뒤면 다시 돌아가게 될 어린이집을 떠올리며 말이다. 물론 내가 그 어린이집에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