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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서 Jul 16. 2023

[서평] 우연과 필연 사이의 세계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의 실재는 다층구조의 풍성함을 갖는다. 종교적 설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인간 경험의 이면에서 그 경험들을 통합하는 창조주의 의지와 본성을 봄으로써 그 풍성함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적 탐구는 신이 우주에 부여한 합리적 질서에 대한 통찰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창조세계를 즐거워하는 신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감각은 선하고 완전한 신의 뜻에 대한 직관이다. 우리의 종교적 경험은 숨겨진 신의 현존과 만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전체적이고 만족스럽다. 그것은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신의 창조물이다.(96p)”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얼마 전 그런 일이 있었다. 같이 신앙 생활을 하는 기독교인 친구가, 이제는 무신론자로 돌아서버린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생물학의 진화론을 비롯하여, 우주의 다양한 과학적 원리 등을 근거로 결코 신의 창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고 선언하며 무신론자의 삶을 살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무신론자가 되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과학과 종교를 대립시키고, 또한 종교 그 자체에도 심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그 친구가 신앙을 포기한 것에 대해서, 순전히 그 친구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에게 종교를 강요할 이유는 내게 전혀 없다. 다만 그 친구가 종교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과학과 종교는 결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둘은 상당히 상보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종교는 해석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진리는 단순하지만, 단순한 진리는 수천개의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능력과 한계를 이용하여 최대한 진리에 걸맞는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러한 일화 이후에, 철학 과제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과학과 철학의 자리라는 요지로 비판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보고서 제출 이후에 과학과 종교(혹은 신학, 철학)간의 관계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하였고, 본 책을 소개해준 <오늘의 신학공부> 채널과 최근 관심이 생긴 <비아> 출판사의 리뷰를 통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개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폴킹혼은 첫번째 쟁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영국 성공회 사제로서 지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는  “과학과 종교가 정말로 대립적입니까?” 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그는 답한다. 이 답에 관해서 논리적으로 설득하며, 더 나아가서는 과학자의 신앙생활에 대한 질문도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주요 요지이다.


과학

    우선 이 책은 시작부터 “불완전한 과학”에 집중한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으로부터 수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학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존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존 폴킹혼도 그렇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나도 그렇고 이 부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은 온전한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특정한 실험 이후 반드시 “이론적인 해석”이 들어가야 우리가 아는 과학이 완성된다. 즉 해석 없이는 과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해석에 있다. 해석의 주체는 인간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인식적 지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표현은 내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배운 표현인데, 우리는 모두 인식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나중에 더 심도깊은 독서를 통해서 서평을 쓸 생각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완전하지 못하다. 그 근거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 근거가 모든 학문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빛은 과거에는 파동이었다. 모두가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자라는 의견이 다시 생겼고, 이제 현대물리학에서 빛은 파동과 입자라고 한다. 이는 과학은 수정될 가능성에 항상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에 의견(해석)이 섞인 것이 과학적 이론이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과학이 진리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의심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종교

    이후부터는 종교에 대해서 다룬다. 저자는 종교가 과학과 사촌지간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종교적 탐구의 목적은 과학적 탐구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진실인지에 관해 근거 있는 믿음을 찾는데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서 종교 역시도 계속해서 질문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부활은 진실인가? 성서 속 내용들은 역사적 사실인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종교적 탐구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 내용은 저자의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이해한 저자의 주장은 책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과 종교는 사촌지간이다”라는 표현으로 말할 수 있다. 이 말을 더 직관적으로 풀자면, 과학과 종교의 상보적 필요성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과학과 종교는 비슷하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 악과 고통, 그리고 신

The Scream of Nature; 1893-1910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실 과학적인 부분보다는 신학적인 부분이다. 아니 사실 정확히는 이 둘의 조화에서 나오는 생각이 내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악은 왜 생기는가? 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우리 인류와 지성인들, 그리고 수많은 종교의 질문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자’를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선악과’를 예시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 과학적이지도, 너무 종교적이지도 않은, 그 둘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관점에서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의 설명을 한번 풀어보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연과 필연

    우선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나는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 깊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과학은 우연을 말하고, 종교는 필연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의 돌연변이나, 종교에서의 신의 섭리나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과학은 필연적 상황을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는다. 종교 역시도 사실 우연적 상황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다. 물론 어느 쪽이나, 그렇게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우리에게는 그 둘의 정의가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우연: 사건이 그저 발생하는 것.


    저자는 우연에 대해서 사건이 그저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설명한다. 이것의 예시로 초기 우주의 불균일성과 진화론에서의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제시한다. 초기 우주의 불균일성은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무수한 확률 싸움속에서 탄생한, 그저 발생한 것일 뿐이다. 돌연변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돌연변이를 좌우할 수 있는가? 좌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돌연변이가 아닐 것이다. 그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은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것이 우연이다.


필연: 사건이 어떻게 발생할 지를 좌우하는 자연법칙의 규칙성.


    저자는 필연에 대해서 사건이 어떻게 발생할 지를 좌우하는 자연법칙의 규칙성이라고 정의하며 설명한다. 중력과 같은 자연법칙을 예시로 들며 이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초기 우주의 불균일성은 매우 우연적이다. 어떻게 좌우할 수도 없는, 정말 그저 그렇게 발생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 불균일성으로 인하여 오늘의 우리가 된 것은 매우 필연적인 것이다.


2013년 플랑크(Planck) 위성이 관측한 우주 배경 복사이다.

    

    초기 우주의 불균일성은 우주배경복사에서 관측된 우주의 주름으로 인하여 증명되었다. 초기 우주는 거의 균일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불균일한 부분들이 존재하였다. 이 불균일한 부분들은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서로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결국 별을 만들고, 은하를 이루고, 지구를 만들고, 나를 만들고, 우리를 만들었다. 이것은 매우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중력의 법칙이 이 결과를 좌우하였기 때문이다.


Darwin's finches by John Gould

    진화론에서 돌연변이는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말 그대로 돌연적으로 발생한 변이이다. 그런데 그러한 변이를 통하여 진화가 된 것은, 그들이 질서정연한 환경 안에서의 자연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자연선택이 진화라는 결과를 좌우하였다.


    이러한 우연과 필연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평가하였다: 우연은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필연은 풍성함을 유지시킨다. 저자는 우연에 대해서 신이 창조세계에 부여한 독립성이라 말한다. 필연에 대해서는 신이 창조세계에 부여한 안정성이라 말한다. 이 둘의 조화가 세계와 우리를 만든 것이다. 세계는 신의 섭리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신의 섭리 아래에서 안정적으로 지속된다. 이는 곧 신이 주사위 놀이나 마법을 부리지 않는, 가장 세상을 합리적으로 운행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본래 논의로 돌아와서,

    그래서 우연과 필연을 가지고 악과 고통을 어떻게 설명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연은 독립성을 나타낸다.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의 창조세계의 일부인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지만, 비도덕적 일을 할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 우리가 프로그램화된 기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주장을 방증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오로지 도덕적인 일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기계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철학에서는 자유의지 방어론(free-will defense) 이라는 용어가 존재한다. 이 단어는 사실 오래된 논쟁에서 비롯되어 기독교의 교리를 변증하는 쪽으로 쓰이는 철학 용어로, 앨빈 플랜팅카(Alvin Plantinga)가 주장하였다. 다만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각설하고 설명하자면, 자유의지 방어론에서는 악이 발생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인간의 자유라는 더 큰 선을 위하여 치뤄야 할 대가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선한 신은, 모든 면에서 전능한 신은 인간의 ‘자유’라는, 창조세계의 ‘독립성’이라는, 그리고 ‘우연’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하여 이 부분을 허용하였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으로, 앞서 소개한 자유의지 방어론 역시 이 책에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된 개념이다.


자연재해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는 도덕적인 악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천재(天災)라는 단어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자연 역시도 악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를 ‘물리적 악’이라고 설명한다. 천재지변을 비롯하여, 질병까지 해당하는, 인간 외적인 것으로 인한 악이다


    우선 앞선 자유의지 방어론처럼 저자는 대가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였다. 가장 먼저 과학적인 부분에서의 대가이다. 진화적 세포의 변이와 같은 생화학적 과정은 세포들을 암세포로 바꾸거나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우연 파트에서 말하였듯이, 진화를 위해 필수적인 우연적 사건이다. 즉 질병의 가능성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체를 위하여 꼭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이다.


    둘째는 창조세계의 독립성에 접근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본성에 맞게 작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방식대로 존재하듯이, 자연 역시도 그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이 그 주장이다. 이러한 통찰을 그는 자유과정 방어(free-Process Defense)라고 명명하였다.


“아니. 하나님. 왜 이렇게 자유를 많이 줬어요”

“아이고오..”

    그럼에도 우리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질문들이 생겨난다. 왜 신은 도덕적이고, 물리적인 악이 신의 전능한 능력으로 해소키지 않는가?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는가? 왜 그러한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하는 등의 질문들 말이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신은 마술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신은 합리적인 우주를 창조한다. 나는 우리가 인간의 생각 속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수’가 경험적 관찰로 증명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수학과 과학은 각각 추상 세계와 자연 세계로 그 세계 자체가 다르지만, 이들은 하나로 연결된다: 바로 합리성이다. 추상 속의 이성적 산물인 수학과 경험적으로 관측하여 증명시킨 과학이 일치할 수 있는 이유는, 내부의 합리성과 외부의 합리성이 일치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우주가 합리적이고 그러한 우주를 창조한 신 역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저자의 주장으로 돌아와서, 만약 그러한 마술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끊임없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한 세계가 진정한 창조세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세계를 창조한 이유를 밝혀낸다.


    그러므로, 자유과정 방어가 적용되는 우주만이 자유의지 방어가 적용되는 존재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


왜 흥미로웠는가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신의 강력한 섭리와 주권을 강조하는 장로교(개신교의 교파) 소속의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우연과 필연에 대한, 더 나아가서는 악에 대한 좋은 해답이 필요했다. 우연과 필연은 항상 부딪히고 싸우는 개념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서,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 신의 창조세계라는 관점에서 일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최근 들어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최근 들어 물리학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신학과 철학은 평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역시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난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비판하는 서평을 쓴 적이 있다. 사실 이 책 역시도 그 점에서 비슷하다. 정확히는, 책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이 책은 과학적 사실만을 담지 않았다.


    이 책의 분야는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과학신학이라는, 과학이 아니라 신학이라는 틀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생물학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책의 분야는 과학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잘못 읽었을 경우,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었을 때와 거의 대척점의 양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저자의 성향에 따라 무신론적인 색깔이 매우 강하다. 물론 과학적인 이야기도 들어있긴 하지만, 그 주장과 요지는 엄연히 철학의 영역이다. 이는 이 책도 동일하다. 과학적인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주장과 요지는 엄연히 철학의 영역이며, 성공회 사제인 저자의 유신론적인 색깔이 매우 강하다.


    다만 그래도 내가 안심하는 것은 이 책은 애초부터 종교를 명시하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종교 관점에서 작성하겠다고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과학책을 위시한 철학 도서들보다는 안심되는 편이다. 그리고 글에서도 저자는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과학적으로 할 수 없다고 못박아놨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상당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진리가 아니라 의견으로서 제시하기 때문에 사고의 확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천합니다: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

과학에 대해서 편견이 많은 종교인

종교에 대해서 선입견이 많은 무신론자

기독교가 설명하는 자연세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

모든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


    2,3번의 사람들에게 정말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과학만능주의에 빠진 무신론자는 종교가 왜 필요한 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종교 근본주의에 빠진 종교인은 과학 역시도 신의 창조세계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추천한다. 유신론 관점의 책도 읽고, 또 다음번에는 무신론 관점의 책도 읽기를 꼭 바란다. 양 극단의 책을 읽으면서 자기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책도 상당히 짧다. 내용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교양 수준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저자도 이미 그걸 염두해두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

    이 책은 내가 운영을 맡고 있는 대학교 교양 학술회에서 처음으로 내가 소개한 책이다. 소개하고, 또 책 내용을 분석하면서 오랜만에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다음 읽을 책은 여전히 고민중이긴 하지만, 과학과 종교에 관한 책들은 앞으로도 계속 읽을 생각이다. 최근에는 불교철학에도 많은 관심이 생겨서, 불교와 양자역학간의 관계에 대해 다룬 책도 읽어보고자 한다.(물론 이 책 역시도 비판점이 많아보이지만)


    처음으로 서평을 써보았다. 글을 나름 잘쓴다고 자부했었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잦은 글쓰기로 나의 생각과 사고를 확장하고 나만의 글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다음 번에 새로운 책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긴 글을 읽어준 독자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이만 물러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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