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처음>
해리의 첫 차
해리는 남자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도와주고 싶어지고 불쌍해 보인다. 도와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뭔가 돕고 싶다. 그 마음 때문에 해리의 인생이 달라졌다.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다. 옛날에는 그 말이 진리였지만 현대 사회는 아니다. 남자에 의해 여자의 인생이 달라지는 일은 별로 없다. 여자 때문에 남자의 인생이 달라지는 일이 오히려 더 많아진 것은 아닐까.
책을 사랑하고 시인의 꿈을 가졌던 해리는 남자의 아내란 직업이 싫다. 해리는 아이의 엄마란 직책도 싫다. 해리는 외며느리란 자리도 싫다. 삼시 세끼 지지고 볶아 밥장사하는 것도 싫고, 설거지며 빨래 등, 일상을 꿰매는 일도 싫다. 해리는 알약 한 알로 일주일을 살 수 있길 바란다. 해리는 나를 찾고 싶다. 왜 늘 나만 희생하고 살아야 해. 이 나이에 나도 좀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언제까지 남자와 아이에게 발목이 잡혀 살아야 해. 숨이 막힌다.
남자는 친구들과 어울러 다니며 자주 집을 비운다. 남자가 하는 일은 가끔 시골집에 갔다 오는 정도다. 시부모님이 지은 농산물, 곡식이나 채소를 실어다 주는 것을 큰 일로 친다. 나머지는 대부분 운동하러 다니는 재미와 친구들과 어울러 술 마시고 노는 것만이 삶의 가치다. 시댁에 다녀올 때를 빼고는 날마다 술에 절어 들어오고, 밝힘 증 환자다. 술이 깨는 새벽이면 남자는 어김없이 해리를 안는다. 남자의 모든 기능은 오직 섹스로 귀착된다. 아내 사랑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인지. 그것으로 남자의 우위를 결정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인지. 해리가 아무리 귀찮고 싫다 해도 일방통행이다.
뭐, 좋으면서. 빼기는.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 여자가 말이야 뺄 때 빼야지. 당신이 아직 처년 줄 알아? 착각 마셔. 내가 선심 쓰는 거니까. 대라고 할 때 대라. 돌아서 울지 말고.
해리는 남자의 뺨을 몇 대 후려치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집 앞이라도 쓸어 봐.
해리는 차갑게 한 마디하고 일어날 차비를 한다.
남자는 금세 돌아누워 코를 곤다. 정오가 되도록 자빠져 자겠지. 헬스클럽 갔다가 또 어디서 술타령이나 하다 오겠지. 무뇌아, 해리는 남자의 얼굴에 비닐봉지를 확 씌워버리고 싶다. 남자는 부양가족에 대한 책임은 고사하고 해리의 땀 내 나는 돈만 갈취한다. 툭하면 외박이고 집에 들어오는 날은 해리를 안는다. 그러면서 바람 안 피운다는 것이 큰 자랑거리다. 알게 뭐람.
해리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뜨거운 물에 전신을 푹 담근다. 눈을 감았다. 이십 년을 참아냈다. 참아냈다는 것은 거짓말일지 모른다. 그냥 살았다고 해야 맞나. 우리는 대부분 결혼을 하면 그냥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 좋은 시절도 있긴 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애정과시를 한 적도 있다. 세월이 흘러 서로 덤덤해지기 시작하면 그냥 사는 거다. 날마다 먹는 밥에 식상할 때도 있는 법이지만 그때마다 별식을 찾을 수는 없다. 별식, 남자가 해리에게 별식이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냥 밥이니까 먹는 거다. 한 끼를 거르면 평생 못 찾아 먹는 밥, 열심히 세끼를 챙겨 먹어도 허기지는 밥, 그런 삶을 그냥 산다고? 그래, 그냥 산다.
해리는 눈을 떴다. 불두덩이 후끈하다. 살며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거기 희미하지만 어떤 문신이 있다. 하트 모양에 화살촉이 박힌 문신이다. 이십 년을 살을 섞어도 남자는 한 번도 그 문신에 대해 물은 적이 없다. 어쩌면 전혀 발견도 못한 모양이다. 남자는 늘 제 기분에만 들떠 아내 몸을 찬찬히 살펴볼 마음조차 없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장땡이다. 여자가 얼마나 일방통행을 싫어하는지 알 리 없다. 문신이 쩌릿하다. 아프다. 거친 수세미로 밀듯이 쓰리고 아프다. 해리는 불두덩을 지그시 누른다.
해리는 새벽 일찍 시장으로 나온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장사 준비를 한다. 음식점 앞의 골목도 티 하나 없이 빗질한다. 온정은 작은 읍이다. 대도시 인근에 있는 작은 읍인데 아담하고 깨끗한 고장이다. 해리의 음식점 상호는 <엄마 손맛>이다. 상호 덕인지, 해리의 음식 솜씨가 진짜 좋은지는 몰라도 손님은 꾸준하다. 해리가 음식점을 열기까지는 제법 긴 우여곡절이 있다. 오십 초반의 해리는 아직 날씬하다. 싹 꾸미고 나가면 열 살은 아래로 본다. 유부년 줄 알면서도 집적거리는 남자도 있다.
해리는 강원도 속초가 고향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했다. 가출한 여자아이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뻔하다. 다방 아니면 술집이다. 서울에서 돌다가 온정 읍의 장미다방까지 흘러왔다. 강원도가 꼭대기라면 온정 읍은 끝자락이다. 강원도가 춥다면 온정 읍은 따뜻하다. 강원도 산세가 험하면 온정 읍은 유순하고 부드러웠다. 해리는 온정 읍이 마음에 들었다. 노후를 계획하기에 좋은 동네라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선하고 착했다.
해리는 장미다방에서 남자를 만났다. 남자의 이름은 오 봉발, 남자는 껄렁한 척했지만 하는 짓이 착했다. 아니, 때가 덜 묻어 순수했다. 오사바사하긴 해도 시망스럽지는 않았다. 남자는 일구 카센터에서 일했다. 하필이면 장미다방이 일구 카센터에서 열 걸음도 안 떨어졌다. 마주 보는 길 건너편에 있었다. 남자는 일만 없으면 다방에 와서 죽치거나 카센터로 커피를 시켰다. 썰렁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해리에게 주접을 떨었다. 자기에게 시집만 와 주면 평생 모시고 살겠다는 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스물여덟 살의 해리는 촌놈이 장가를 못 가니 별 시답잖은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고 콧방귀만 뀌었다. 해리는 술집이나 다방으로 전전했지만 콧대가 셌다. 취미는 책 읽기, 작가의 꿈은 아직 유효하다.
기름때를 묻히고 사는 오 봉발이 해리에게 책을 대 주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오는지, 사다 주는지 몰라도 그동안 해리가 읽는 책들을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신간으로 나온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은 작품에서부터 노벨문학상 작품까지 제법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았다. 해리는 남자를 다시 봤다.
이래 봬도 내가요 고등학교 때 문예부 반장이었소. 시를 써서 상도 탔었는데. 우리 아부지가 돈 없다고 대학을 안 보내줘서 그렇지. 문예창작과 갔으면 아마 내 인생이 달라졌을 거요. 이 촌구석에 처박혀 있지도 않았을 텐데. 해리 씨와 나는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그걸 아셔야 하는데.
운명 같은 소리 하시네. 시 쓰는데 돈 안 들어요.
돈은 안 들어도 돈이 안 되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돈 벌어오라는데 갈 데가 없데요. 돈은 벌어야겠고.
카센터에서 얼마나 번다고.
그런 말 말아요. 나 알부잔데. 시집만 와 봐요. 호강시켜 줄게.
정에 굶주렸던 해리는 남자의 마음 하나 믿고 시집을 갔다. 남자는 당장 카센터를 때려치웠다. 해리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온정에서 몇 십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가실이라는 산골마을이었다. 강원도 고향 같았다. 오밀조밀한 다랑이와 제법 넙데데한 개울을 끼고 동글납작하게 산으로 둘러쳐진 마을에 남자의 늙은 부모님이 계셨다. 마을이 술렁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첫눈에 해리가 산골에 박혀 살 여자는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해리는 조신하게 굴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해리는 그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새댁이 되었다. ‘지내봐야 알제.’하던 촌로들 마음 돌리는 거야 식은 죽 먹기다. 착하고 예의 바르지, 음식 솜씨 좋지, 시부모 잘 모시지, 정산 띠 집에 복덩이 들어왔다는 뒷담이 들렸다.
해리의 매끄럽던 피부는 거칠어졌고, 가녀렸던 손가락은 굵어졌다. 아들이 태어났다. 해리는 진정한 삶은 흙을 밟고 사는 것이구나. 깨닫곤 했다. 산비탈 묵정이도 갈아엎어 들깨도 심고, 참깨도 심었다. 남자는 농사에 무능하고 게을러터진 농사꾼이지만 남자와 달리 시부모님은 부지런하셨다. 해리는 시부모님을 위해 꽉 졸라매고 있던 전대를 풀었다. 전대는 해리의 꿈을 완성시켜 줄 담보물이었다. 강원도에서 서울, 부산, 마산, 진주, 온정 읍까지 흘러오며 모았던 돈이었다. 목표액이 모이면 해리는 가실 같은 작은 면소재지에 국숫집을 내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남자를 만나지만 않았다면 해리의 인생이 계획했던 대로 풀렸을까.
해리가 모아놨던 돈을 털어 오두막집을 헐고 반듯한 양옥집을 짓고 다랑이 몇 마지기를 헐값에 샀다. 동네 사람들은 봉발이가 마누라 잘 얻어 부자 됐다고 칭찬이 늘어졌다. 해리도 몇 년간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밤마다 품어주는 남자도 싫지 않았다. 남자가 빈둥거리며 놀지만 않는다면 금상첨환데. 남자는 갈수록 싹수가 보이지 않았다. 툭하면 읍내 볼일이 있다며 나가서 해가 져야 들어왔다. 친구 만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해리의 주머니를 털었다.
당신 자꾸 헛돈을 쓴다는 거 알아? 아들 장래 생각 해야지.
아들? 삼시랑이 애를 세상에 내놓을 때는 다 제 복주머니 하나씩 채워 보낸다고 했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아들 걱정까지 와 하노?
석이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될 텐데.
해리는 혼인신고를 하면서 알았다. 남자가 해리보다 다섯 살이 적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살아보니 나이가 문제 될 때가 많았다. 남자의 또래 친구들 부인과 어울릴 수 없었다. 동갑내기 계모임에 가 봐도 겉돌기 일쑤였다. 한창 언니뻘이란 것을 아는 사람도 그렇고 해리의 과거도 문제가 됐다. 해리는 남자랑 부부동반 모임은 극구 사양했다. 그때부터 해리는 자꾸 산 너머 먼 곳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해리는 씁쓸했다. 그렇게 남자 볼 줄을 몰랐나. 한숨을 쉬었다. 멋과 거리가 멀게 살아도, 열심히 농사일을 해도 살림은 펴지지 않았다. 풀었던 전대는 빈털터리가 되고, 아들은 자랐다.
시어른은 적어도 아이 셋은 낳아야 한다고 했다. 1980년 대, 한창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슬로건이 걸리던 시절이다. 해리는 첫 애가 딸이었으면 한 명 더 낳으려고 했지만 아들이니 한 명만 키우겠다고 했다. 고부간에 깐깐한 앙금이 쌓이고, 버석거릴 때가 자주 생겼다. 몸에 익지 않은 농사일은 해리를 지치게 하고, 고부간의 갈등은 만성 불면증을 안겼다. 산골 행복도 지속이 불가능한 것인지. 해리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가실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온정 읍으로 유학을 보내는 일이었다.
나 읍내로 이사 갈까 해. 아들 때문에
가당키나 하나 우리 형편에.
당신이 카센터에 다시 나가던가. 내가 벌던가.
그 지긋지긋한 기름때를 또 묻히며 살라고? 그때 당신 안 만났으면 진작 때려치웠을 거다. 다시 기름때 묻히고 살 생각 없어.
우선 아들과 나만 나갔으면 해. 애만 내 보낼 수는 없잖아.
돈이 많이 들 건데.
그러니까 내가 벌어야지.
해리가 돈을 벌겠다는 말에 남자는 허락했다.
해리는 온정 읍으로 나왔다.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얻고 장미다방 마담 언니의 도움으로 해리는 시장 골목에 <엄마 손맛>이라는 작은 음식점을 열었다. 주 메뉴는 시골밥상과 국수 딱 두 가지다. 읍이라 해도 좁다. 그 집 음식 맛이 괜찮더라. 값도 싸더라. 친절하더라. 정성이 들었더라. 먹을 만하더라.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소문은 금세 퍼진다. 장꾼들이 단골로 오고, 촌로들이 주머니를 열었다. 시골밥상이나 국수는 촌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시골에서 부모님과 농사짓겠다던 남자는 해리를 따라 읍내로 나왔다. 남자는 시골집과 읍내 집을 오가는 백수다. 엄밀하게 말하면 식품 조달원이다. 부모님이 지어놓은 쌀이나 양념류, 채소류를 공급해 주는 역할이었다. 공짜는 없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렸고, 남자에게 용돈이란 명목으로 봉급을 줬다. 사람은 하찮은 일이라도 일을 가졌을 때와 일이 없을 때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해리는 싱싱한 채소와 시골 쌀로 밥을 짓기 때문에 여느 식당과 다른 맛도 났다. 재료도 아끼지 않았다. 장사는 공칠 때도 있고, 푸질 때도 있다. 손님이 몰릴 때는 벅차다. 빈둥거리는 남자에게 부탁을 한다.
당신이 서빙 좀 해 주면 좋겠다.
남자가 그런 거 못하지. 종업원 구하면 되잖아.
종업원 봉급이 얼만데. 얼마나 번다고.
해리는 남자에게 짜증이 난다. 해리는 짜증 날 때마다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심성은 착한 사람이잖아.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도박 같은 것도 않잖아. 바람을 피워 애를 먹인 적도 없잖아. 날 아껴주잖아. 해리 식이 아니라 순전히 남자 식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아버지란 것, 하늘이 두 조각나도 변하지 않는 것, 핏줄, 한국인에게 핏줄만큼 강한 끈은 어디에도 없을 거다. 평소에는 친인척이라도 데면데면하게 굴다가도 패싸움이 나거나 선거판이 되면 족보부터 따지는 사람들, 같은 값이면 한 핏줄을 찍어야지. 무식하고 막되 먹은 인간이라도, 졸부 근성이 뼈와 살에 박힌 인간이라도 같은 문중, 사돈에 팔촌이라도 가문의 영광이니 어쩌니 하며 찍고 보는 사람이 한국인이고, 촌로의 근성 아닌가. 해리는 남자를 그냥 뒀다.
대신 해리는 아들의 교과서를 챙겼다. 가게에서는 소설책이나 만화책, 잡지를 읽었지만 집에 오면 밤늦도록 공부를 했다. 남편과 아들 몰래 검정고시를 봤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대학 진학은 아들 때문에 미루었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 다음 해 해리도 대학생이 될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아들이다. 나대는 짓을 보니 대학은커녕 전문학교도 못 갈 것 같지만 남자처럼 카센터에라도 취직해서 고생해 보면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다. 미리 고민할 필요 없다. 내 코가 석잔데.
옆 집 숙이는 해리와 동갑내기다. 숙이는 툭하면 눈가에 달걀을 구르며 나타났다. 숙이 미용실은 시골 촌로의 단골집이다. 옆집 남자는 택시 운전을 한다. 시장골목 이층 건물에 산다. 아래층은 미용실, 이층은 가정집인데 수시로 다양한 영화를 상영한다. 우당탕, 분탕질하는 소리가 들리면 벌써 이웃들은 문을 빠끔히 연다. 남자와 여자의 욕지기가 튀어나오고 악쓰는 소리가 들리고 이층 창문이 와장창 열리면 옷들이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날아다닌다. 다음은 싱크대에 있는 양푼이나 그릇들이 날아가 박살 난다. 가끔 앞집과 뒷집 벽에 흠을 내 주인의 원성을 듣기도 하고 남의 유리창을 박살 내 물어주기도 한다. 밥통도 떨어진다. 밥이 길바닥에 질펀하게 깔린다. 특히 텔레비전 수난시대다. 옆집 남자는 텔레비전과 원수 진 사람처럼 텔레비전을 박살 낸다. 시장 골목에 떨어져 박살 난 텔레비전만 해도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숙이네 텔레비전은 수시로 모델이 바뀐다. 텔레비전은 신제품이 아니라 중고다. 화면만 나오면 된다. 숙이는 달걀로 눈자위를 문지르며 텔레비전은 남편의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며 웃는다. 언제든 박살 내도 괜찮단다. 한바탕 집안에 있던 물건들이 집밖으로 던져지고 나면 적요한 침묵의 시간이 온다. 침묵의 시간이 지나면 여자의 흐느낌 소리가 들리고 간간이 맥이 쭉 빠져버린 넋두리가 이어진다. ‘내가 못 살아. 저런 인간을 남편이라고 믿고 살다니 내가 미쳤지.’ 여자의 울음소리가 서럽게 들리면 이웃집 창문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다. 영화는 끝났다.
다음 날 보면 숙이는 어김없이 눈가를 날계란으로 문지른다. ‘왜 맞고 사냐고, 따끔하게 혼쭐을 내거나 보따리를 싸야지’하면 남이야 맞고 살든 말든 뭔 상관이냐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부부사이 사랑의 방식은 각자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는 것은 타인이다. 한 이불 덮고 한 생을 살아도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도 남자를 모른다. 당신은 남편을 속속들이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서로에 대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눈여겨본 적 있는가. 적어도 몇십 년을 함께 산 부부라면 서로에 대해 기본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해리는 손님이 없을 때는 책을 본다. 옛날 해리에게 책을 빌려다 주던 남자는 해리를 별종 취급한다. 책 보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그딴 짓은 처녀 때 남자 꾀려고 하는 짓이야. 내가 걸려들었지만. 그렇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삶이 있는 것도 아니다. 책 속에 아무것도 없다. 돈 한 푼 공짜로 나오는 법 없고, 쌀 한 줌 나오는 법 없다. 그럼 왜 책을 읽느냐고? 책 속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으니까. 대리만족이란 것이 있다.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세계를 사는 사람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들. 아니, 습관이다. 아니다. 중독이다. 불안해소용일 수도 있다. 아니, 그냥 본다. 그냥 본다는 말이 매력적으로 들린다. 누가 물어도 ‘그냥 봐, 별 거 아니야.’적당히 체념적이고, 적당히 달관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 삶이다.
옆집 숙이가 마실을 왔다. 미용실에 손님이 없을 때는 자주 들락날락한다.
또 책 봐? 참 눈도 밝네. 난 글이 안 보여서 못 읽어.
그냥 보는 거야.
염색 좀 해야겠다.
숙이는 해리의 머리카락을 유심히 살피더니 염색을 하라고 부추긴다.
염색한다고 호박이 장미꽃 되겠어.
안 하는 것보다 낫지. 나 봐? 내 나이 보다 열 살은 어리게 본다.
숙이는 해리보다 젊어 보인다. 옷도 젊은 애들처럼 입는다. 생머리는 늘 등에서 출렁거린다. 뒷모습은 처녀고 앞모습은 할머니다. 온갖 마사지에 비싼 화장품 떡칠을 한 얼굴에도 멍 자국은 보인다. 푸른 멍 자국이 부자연스럽다. 멍이 든 날은 유난히 화장이 짙다. 속눈썹도 길게 달았다.
그이는 화장하는 여자를 좋아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신랑이 평소엔 참 얌전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잖아. 술이 도가 넘치면 안하무인이 돼서 탈이지만 그것도 다 그이의 사랑 방식이야. 이 멍 자국이 가실 때까지 우리 그이는 온몸에 키스를 해 준단다.
그게 좋니? 나는 안 맞고 안 당하겠다.
당하다니. 아니야, 그이의 사랑방식이라니까.
사랑이 넘치다간 살인나겠다.
아이참, 아니래도
맞는데 도가 틔셨네.
그렇지. 살다 보면 도사가 되는 거야.
숙이가 웃었다. 그 웃음이 헛헛해 보인다. 해리도 헛헛하다. 해리는 맥주 한 병을 가져와 딴다. 둘이서 잔을 부딪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