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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r 26. 2024

동백꽃은 떨어지고

<단편소설.   처음>

<단편 소설>       

  동백꽃은 떨어지고 

                    박래여     


  삽짝에 핀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 뒹군다. 눈물이 핑 돈다. 이유 없이 허전하다. 바람이 자꾸 꼬드겨서 그런가. 갱년긴가. 어디든 달아나고 싶다. 마침 윤선생의 문자가 왔다. ‘동백 보러 가자. 거제 지심도! 붉은 꽃길 원 없이 밟다 올 수 있어.’ 역시 통했다. ‘좋아 가자. 언제?’ 답장은 금세 왔다. ‘쇠뿔은 단김에. 내일 거제 여객선 터미널에서 만나.’ 앞뒤 잴 것도 없다. ‘친구 몇 명 추가 해 봐.’ 남편 눈치 볼 나이도 지났고, 애들 뒤치다꺼리 할 시기도 지난 자유부인 아닌가.  

 다음날 우리는 만났다. 윤 선생 혼자다. 갑자기 여행 가자니까 나올 친구가 없더란다. 우리는 내로남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지심도 가는 배에 올랐다. 마음이 머무는 자리라는 지심도, 마음 心 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 동백꽃이 붉디붉다하여 동백섬이라고도 한다는데. ‘눈치라고는 없는 당신처럼 순수한 섬이야.’ 윤 선생의 그윽한 눈빛이 싫지 않다. ‘이 섬의 전설 들려주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이 깃든 이야기야’ 윤 선생의 눈빛이 푸른 바다를 향한다. 윤 선생이 굽실거리는 물결처럼 전설을 읊는다. 나는 귀를 열고 눈은 바다에 빠진다.     

 태초에 신은 원 하나를 만들었다. 하늘과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원이었다. 신은 원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천천히 회전시키는 재미로 지냈다. 아무리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도 계속하다보면 습관이 되고, 습이 붙어버리면 재미가 없어진다. 신은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원 안에 까만 점 하나를 찍었다가 지워버렸다. 며칠이 지나도 자신이 지운 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은 다시 점을 찍었다. 점은 볼수록 신기했다. 신은 그 점을 기준으로 원을 가로로 갈랐다. 까만 점은 사라졌다. 아랫부분은 출렁거리는 물로 채웠다. 바다라 이름 했다. 남은 반은 텅텅 비워 하늘로 만들었다. 자연히 하늘은 높고 바다는 낮다. 색깔은 비슷하다. 약간 짙고 옅을 뿐이다. 

 신은 바다와 하늘을 오가며 살다가 그것도 싫증나서 하늘에 주저앉았다. 밋밋한 것은 식상하다. 평범한 것도 지루하다. 좀 멋들어진 것은 없을까. 신은 하늘에서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파란 바다에 그림을 그려볼까. 신은 온갖 조화를 부릴 수 있다. 신은 바람을 불어봤다. 살랑살랑 불다가 거칠게 불다가 딱 멈추었다가 다시 불었다. 그때마다 바다는 출렁거리고 거품을 일으켰지만 입이 아팠다. 손가락으로 장난을 쳐봐도 무료했다. 신은 용 두 마리를 그렸다. 붉은 용과 푸른 용을 그려 입김을 불어 넣었다. 용은 살아 꿈틀거렸다. 바다 밑에 가서 사이좋게 살아라. 용 두 마리는 신에게 하직하고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 두 마리 용은 각자의 거취를 정하고 사이좋게 지냈다.

 바다에는 용도 아니고 뱀도 아닌 이무기 한 마리가 살았다. 신이 원을 가지고 놀다가 심심해서 찍었다 지운 까만 점이었다. 점은 이무기가 되어 원안에 숨었다. 신이 다시 점을 찍어 하늘과 바다를 만들자 이무기는 바다 밑으로 숨어들었다. 신이 하늘을 차지한 날부터 이무기는 바다를 차지해지만 신은 이무기의 존재를 몰랐다. 이무기도 신이 되고 싶었다. 은근이 신에 대해 배알이 꼴릴 즈음 붉고 푸른 용 두 마리가 내려왔다. 이무기는 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바다는 자신이 다스리고 싶다는 뜻도 밝혔지만 신은 이무기를 잊었다. 이무기는 앙심을 품었다. 이무기는 붉은 용과 푸른 용을 찾아다니며 작업을 걸었다. 두 용을 양쪽에 잡고 시소게임을 시작했다. 아무리 신이지만 너희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어. 바다를 둘로 나누어살기엔 좁잖아. 이 넓은 바다를 혼자 차지하면 정말 멋질 거야. 이무기는 뱀이 쥐를 잡아먹듯이 야금야금 두 용을 이간질 시켰다.   

 처음에는 이무기의 농간에 무심했던 용도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붉은 용은 붉은 용대로, 푸른 용은 푸른 용대로 ‘내가 바다를 몽땅 지배할 수만 있다면 신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두 마리 용은 앙숙이 되었다. 바다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다. 두 용은 바다 밑에서 치고받고 싸웠다. 두 용이 격렬하게 싸울 때마다 바다는 요동쳤다. 바닷물이 꿈틀거릴 때마다 바다 밑이 뒤집혀 위로 솟구쳐 올랐다. 바다위로 솟구친 것들은 굳어 바위가 되었다. 바위너설이 생기고 널찍한 구릉이 되기도 하고 깎아지른 절벽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생겨난 바위의 틈과 틈 사이에 바람이 물어다 준 먼지가 쌓여 땅이 되고, 그 땅에 생명의 씨앗이 자연스럽게 발아되었다. 나무와 풀이 뿌리를 박고 자라기 시작했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 하나를 형성했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두 마리 용이 만드는 세계를 지켜봤다.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 자리를 잡는 뭇 생명은 경이로웠다. 자연이구나. 신은 탄복했다. 신은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 저절로 벌어지는 바다를 즐겼다. 두 마리 용이 피터지게 맞불을 놓을 때조차 용들이 기특했다. 덕분에 신도 할 일이 생겼다. 두 용이 만든 섬을 관리하기로 했다. 하늘에서 비도 뿌리고 바람도 불어주고 햇볕도 주었다. 섬에는 나무와 풀, 온갖 기화요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바다를 끼고 푸른 숲이 우거진 섬은 아름다웠다.

 신은 두 마리 용에게 싸움을 멈추라고 지시했지만 용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섬이 자꾸 생겨났다. 잘못하다가는 바다를 온통 없애버릴 것 같았다. 신은 두 용을 하늘로 불러 올렸다. 그때 이무기는 더 깊고 어두운 바다 밑의 갯벌로 몸을 감추었다. 신은 두 용에게 물었다. 왜 싸우느냐. 누가 너희들을 이간질 시켰느냐. 두 용은 서로를 바라봤다. 눈을 껌뻑거렸다. 고자질쟁이는 되지 않겠다고. 그제야 신은 이무기를 기억했다. 그 놈이구나. 내가 실수로 찍었던 점, 걱정마라.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내가 해결하마.

 신은 이무기를 낚아채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평화롭게 살아라. 바다는 너희들 것이 아니더냐. 저 섬을 만든 것도 너희들이다. 섬과 바다는 하나다. 너는 뜨거우니까 바다 깊은 곳이 나을 것이고, 너는 차가우니까 섬에서 살도록 하라. 그때부터 신의 명령으로 붉은 용은 바다에 살고 푸른 용은 섬에서 살게 되었다. 푸른 용이 사는 섬은 기름진 땅이 되었다. 붉은 용과 푸른 용은 바다와 땅을 오가며 사이좋게 살았다. 

 윤 선생의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여기까진 해피엔딩이지? 전설은 끝나지 않았으니 기다려봐. 우리가 가는 섬도 그렇게 태어났어. 마음 心자를 닮았다 해서 지심도, 마음을 다스려주는 섬, 사랑을 이루어주는 섬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생긴 것은 그다지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야. 어느 소설가의 사랑이야기가 전설이 되었어.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짝사랑의 비운을 안고 이 섬으로 흘러들어왔던 소설가가 있었다네. 그는 여기서 작품을 썼지. <사랑이 머무는 자리>라나. 그의 소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짝사랑을 하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네. 믿거나 말거나 나도 짝사랑이 이루어지려나 싶어 그대를 청했지.”

 “농담으로 넘길 게. 우리 사이는 내로남불 그런 사이 아니잖아.” 

 “정색은. 농담이다. 사실 이 섬은 두 마리 용의 눈물이 맺혀 생겼단다. 전설의 핵심이지.”

 윤 선생의 눈은 다시 바다로 향했다. 촉촉이 젖은 눈빛이 애잔하다. 나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마음을 어찌 모르랴. 윤 선생과 나는 한 동네에서 자랐다. 서로 볼 것  못 볼 것 다보고 자란 사이다. 그의 눈빛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속내를 짐작할 정도다. 남녀 공학이었던 중학교 시절에도 우리는 단짝이었다. 그는 내 보호자였지만 공부 머리는 없었다. 그의 숙제를 도와주고 시험공부를 돕는 것은 나였다. ‘말만 한 가시나가 말만한 머시마랑 날마다 어울려 다니니 누가 너보고 가시나라 하겠니.’ 엄마의 꾸지람도 소용없었다. 그는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사랑하는 희야에게’라는 편지를 보냈다. 나는 ‘사랑 좋아하네. 머시마야 닭살 돋는다.’며 우스개로 넘겼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유학을 갔고 윤 선생은 고향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윤 선생 하나 물어보자. 진이를 언제부터 좋아했어?”

 “너 때문이다. 임마!”

 내가 대학 초년생일 때 윤 선생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상대는 중학교 동기라 했다. 그 시절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 운운하는 조그마한 소읍에서 결혼도 안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면 볼 짱 다 본 거다. 윤 선생이 나를 찾아와 울었다. 술김에 그렇게 됐다고. ‘사내자식이 울긴 책임져라.’ 윤 선생은 그렇게 코를 꿰었다. 애 아버지가 된 윤 선생은 지방대학이지만 사범대학에 진학을 했고, 학교 선생이 되었다. 고향 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우린 각자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친구로 남아 있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하소연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 윤 선생은 귀한 내 친구다. 

 “코는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했다. 왜 나 때문이야?”

 “중늙은이가 되어 시샘할 일 있니? 지심도 전설이나 마저 들어봐라.” 

 나는 통통거리는 배의 엔진소리와 하얗게 갈라지는 바닷길에 묻히려는 윤 선생의 목소리에 귀를 바짝 세우고 고개를 윤 선생의 어깨에 얹었다. 윤 선생의 어깨가 파르르 떨었다. 

 “어디까지 말했지?”

 “두 용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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