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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May 01. 2024

울릉도 가족여행

<이튿날>

 이튿날, 섬 드라이브    

 

 세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일출 구경을 가고 나는 리조트에서 남아 늦잠을 잤다. 느긋하게 일어나 뜨거운 물에 씻고 카페 겸 식당에 갔다. 울릉도 특산물로 차린 조식은 맛깔스러웠다. 일인당 35천 원짜리 밥상이란다. 칡소 섬엉겅퀴소고깃국과 부지깽이나물 무침이 입맛을 잡았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왕후의 밥상을 즐겼다. 어젯밤 포식한 것도 소화가 덜 됐는데 아침을 거하게 먹었더니 속이 불편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더라.’ 우스개를 날렸다.


 아침 아홉 시경, 섬 일주를 나섰다. 울릉도는 화산섬이다. 기암괴석이 우뚝우뚝 서 있는 골짝 깊숙이 사람이 살았다. 거친 바람을 피해 숨어든 형국이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살아가는 곳이란 것이 한눈에 보였다. 가파른 산비탈 어디나 명이나물과 부지깽이나물, 삼나물로 불리는 눈개승마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나물 채취를 하는 촌로가 있었다. 밭마다 모노레일이 깔려 있었다. 모노레일이 없으면 채취한 나물을 평지까지 가져오기에도 힘든 지대였다.  


 울릉도 서면을 돌았다. 통구미와 거북 바위, 코끼리 바위, 비파산, 투구봉, 얼굴바위, 안용복도 만나고 우산국도 만났다. 우산국 우해왕과 평미녀의 사랑과 국수바위, 비파산의 전설을 만났다. 우산국 박물관, 수토역사전시관 등, 수제 호박막걸리도 샀다. 마침 국회의원 투표 날이었고, 우리 가족은 미리 투표를 하고 왔지만 당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도를 포기했으니 저녁에는 맛있는 것들 잔뜩 사다 놓고 개표를 보자고 했다. 농부와 아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다. 나는 책 보고 빈둥거리고 셋은 개표방송을 보며 속상해하기도 하고, 열불을 내기도 했다. 유명 횟집에서 시킨 초밥과 생선회, 해삼 등과 집에서 가져간 훈제 고기, 수제 맥주 집에서 사 온 맥주, 수제 햄 등등.


 여행은 길 따라가다가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편하게 쉬어가며 즐기고 먹고 마시는 재미 아닐까. 많이 걸었다. 지팡이도 짚고 세 사람의 보호도 받았다. 승용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는 무조건 차로 갔다. 농부는 젊은이 못지않게 쌩쌩했다. 호기심도 많아 구석구석 잘 쫓아다녔다. 나는 소설을 생각했다. 울릉도에는 소설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누군가가 이미 써서 발표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쓰는 소설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관음도, 신령수, 삼선암의 전설, 우산국, 우해왕, 이사부, 지증왕 등, 기암괴석과 깊은 골짝, 칡소, 자생 식물들, 열대 우림 같은 특이한 변종 식물들이 있는 울릉도가 바로 소설의 소재였다.


 소설가의 눈에 보이는 바다는 그냥 푸른 것이 아니다.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봤다. 어떤 인물을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지어볼까. 울릉도와 독도 지킴이 안용복 같은 인물을, 독도 첫 주민 최종덕 같은 인물을 그릴 수도 있겠다. 아니면 우산국 우해왕과 평미녀 전설, 국수바위 전설, 신라 이사부나 지증왕 전설 같은 것을 각색해도 멋진 소재다. 아니, 바다는 그냥 바라만 봐도 느긋해진다. 물속까지 환한 맑고 깊은 감청색, 녹색, 연두색 바닷속, 거기 노니는 물고기들, 배들, 오징어잡이 금어기라서 싱싱한 오징어 회를 먹을 수 없어 아쉬웠다. 나는 소설을 생각하며 숲길을 걷고 바위산을 보고 거기 자생하는 나물 군을 봤다. 울릉도는 신비로운 섬이었다. 


 비록 밤잠을 설치며 선거 개표 방송을 봤지만 유일하게 나를 즐겁게 한 것은 우리 동네 돌아가신 어르신의 손자가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뽑혔다는 사실이다. 빨간 당 일색인 우리 동네에서 파란 당 젊은 국회의원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비록 경기도 화성이 표밭이지만 우리 동네에 그 국회의원의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집에 그이 부모가 들어와 살고 있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그냥 좋다. 나도 지지해주고 싶은 젊은 정치인이 한 명 생겼다는 사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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