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촌부 일기

갑진 년 마지막 단감이 떠났다.

by 박래여

갑진년 마지막 단감이 떠났다.

저장고를 비웠다. 단감가격은 지난해보다 못하지만 마무리가 되어 반갑다. 아들 덕에 수월하게 마무리를 했다. 구정 때 올리라는 것을 일찍 끝낸 것은 농부가 한 달간 집을 비운다. 집 떠나기 전에 챙길 것이 많은지 농부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나무 해 나르기, 골짜기 물 호스 점검하기, 딸에게 조목조목 알려준다. 지난 추석에도 올 설도 농부가 없는 명절을 보내게 됐다. 시부모님이 안 계시니 명절 음식 챙길 필요도 없지만 남매는 명절음식 하잖다. 가래떡이며 튀김 같은 것은 명절 때 아니면 언제 하겠느냐고 한다. 그래, 그래,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생업을 접고 거리로 나선 애국자들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체포를 외치고 있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부대도 등장해 맞불 집회가 서울 도심을 흔든다. 당파싸움이다. 법도 도덕도 무시한 한 사람으로 인해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왜 그들은 내려놓지 못하는가. 탄핵당한 대통령 지키기에 나선 사람들을 보며 광신도가 저런 것이구나. 혀를 차게 된다. 너 편, 내 편, 편 가르기로 승부를 내야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기고 보자는 식이다.


2024년은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회였다. 2025년 정초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거짓말이 판을 친다. 더구나 연말과 정초가 되면 사방에서 후원금을 청하고 있다. 후원금은 정직하게 노력해서 버는 돈이 아니다. 그 후원금이 얼마나 모이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나는 모른다. 후원금은 내 마음의 표시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형편에 맞게 하면 된다. 문제는 후원금 보내달라고 강제하는 표현에 고개를 흔든다. 세치 혀로 버는 돈의 가치는 세치 혀에 불과하다. 내가 노력해서 벌지 않으면 돈의 소중함을 모른다. 하루 종일 땅을 파 봐라. 십 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는가. 그 땅에 씨앗을 심어 가꾸어봐야 십 원짜리 동전 하나의 가치를 알게 된다.


산골에 칩거하다시피 사는 나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무심하고 싶은데 무심할 수가 없다. 당장 시장에만 가도 치솟은 물가와 불안해하는 민심을 만나기 때문이다. 모두 주머니를 꽉 자매고 있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미래가 불안해서 그럴 것이다. 나도 움츠려든다. 부동산 매매도 어렵단다. 팔겠다고 내놓은 논밭이 주변에 늘렸지만 사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없단다. 가격도 반 이상 떨어졌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평당 몇 십만 원을 호가하던 땅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단다. 농촌 인구는 해마다 줄고 빈집은 늘고 묵정이가 되는 논밭도 늘지만 반대로 주변에 있던 비옥한 토지는 건물과 도로로 채워져 간다.


농사지을 사람도 없는데 잘 된 건가?

농민은 줄고 건물은 는다. 그렇다고 상업이 발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개업과 폐업이 수시로 일어난다. 비혼 주의 젊은이가 늘고 부모에게 기대어 백수로 사는 젊은이도 는다. 대신 노인은 일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한다. ‘허드렛일은 쌨다. 집에 놀모 머하노.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자식에게 손 벌릴 수도 없고, 자식이 부모를 먹여 살리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진통제를 달고 살면서 유모차 끌고 다니면서도 일을 하는 촌로가 많다.


갑진 년에 지은 마지막 단감이 떠났다. ‘고맙다. 잘 가라.’ 나는 단감 박스를 쓰다듬으며 마음으로 보낸다. 몇 백주 단감농사를 짓던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노인의 길을 걷는 우리 부부에겐 몇십 주 단감나무도 벅차다. 단감 일 끝내고 무릎 아픔을 호소하는 농부다. 농부는 ‘앞으로 몇 년이나 단감 농사지을 수 있으려나.’ 한숨을 쉰다. 퇴행성관절염은 노인성이다. ‘살살 달래 가며 살아야지요. 정 힘들면 단감농사 포기해야지요.’ 내 말에 농부는 ‘단감농사도 포기하면 무엇으로 먹고사나’한다. ‘다 지 복만큼 산답니다. 우리 복이 요만큼이니 요만큼 살 방법은 생기겠지요. 이런저런 후원금부터 잘라야지요.’ 내 말에 농부는 허탈하게 웃는다.


오후에 아들도 직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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