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닦는 농부
을사년 정초는 어둡다. 정계도 경제도 어둡다. 불안한 시국에 제주항공 대형 사고도 터졌다. 연말에 179명의 귀한 생명이 별이 되었다. 전 국민이 애도하는 정초다. 사고는 순간이지만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유가족의 애끓는 눈물만 바다가 되어 출렁거린다.
우리 가족은 조용히 정초를 맞이했다.
농부는 정초 첫날인데도 일을 시작한다. 을사년 첫날부터 중노동이니 한 해 일복이 터지려나. 온종일 장난감 같은 작은 굴착기가 그르렁 거린다. 장난감에 올라앉은 농부의 등에 햇살이 꽂힌다. 연말에 농협 농기계 점에서 굴착기를 빌러와 산에 길을 다진다. 나는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 난다며 말렸지만 그 똥고집을 누가 이기나. 노인이 되니 나무 해 나르는 것도 힘에 부친다는데. 에스에스기라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는데. 무슨 말을 하랴. 구들방은 군불을 때야 겨울나기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노인의 길은 걸어가는 중이다. 나무 하는 것도 짐이다.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나무를 해 나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사방에 산이고, 사방에 나무가 있어도 거둬드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방학을 맞이해 온 아들과 나무를 해다 장작을 패 쟁여놓는 일도 몇 년 계속되었다. 교사란 직책은 방학이라도 편하게 놀 수 없다. 아들이 진 짐도 무거운데 나뭇짐까지 지워서야 되겠는가.
어떤 귀촌 인을 생각한다. 군불 때는 황토 방이 몸에 좋다기에 덜렁 황토 방을 꾸몄단다. 몇 년은 경운기와 트럭으로 나무를 해다 지글지글 끓는 방구들 신세를 졌단다. 너무 좋았는데 나잇살 늘자 나무하는 것이 힘들어지더란다. 나무를 사서 쓰기로 했다. 한 차 사다 쟁여 놓으면 한 해 겨울은 나겠지. 막상 나무를 사보니 돈은 돈대로 들고 나무도 금세 바닥나더란다. 화목 보일러는 나무 먹는 하마다. 결국 기름보일러를 설치했단다. 기름 값이나 나무 값이나 별 차이 안 나더란다. 돈이 들어도 몸이 편하니 낫더란다.
구들방에서 지낸 지도 30년이 넘었다.
우리도 기름보일러 설치할까?
구들방을 고치려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든다.
그럼 아쉬운 대로 전기장판 쓰자. 한겨울에만 군불 때고.
전기세는 누가 감당하고?
어떤 선택을 하던 경비는 들 수밖에 없다. 부모의 고민을 아들이 눈치챘다. 집에 올 때마다 나무 해다 쟁여 놓을 테니 걱정 말란다. 농부는 아들이 나무를 해다 준다 해도 길은 내야 한단다. 산에 있는 나무를 실어내려면 농기계가 다닐 정도의 길은 필수란다. 사방에 널린 것이 나무지만 거두어들일 일꾼이 부실하니 이런 고민도 하게 된다. 노인의 길이 길어질수록 몸을 부리는 일은 힘들어진다. 처음 집을 지을 때 구들방에도 예비용으로 기름보일러 선을 설치하자고 했었다. 농부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왜! 그때는 젊었으니까.
농부는 아들에게 짐 지우기 싫다며 태양광 설치도 신청해 놨다.
뒤늦게 일 벌이는 것도 자식들에게 도움 안 돼. 여태 살았잖아. 살아온 대로 살자.
내 말은 귓등으로 넘어간다. 살아있을 동안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을 어찌 모르겠나 마는 나는 기존 살아온 방식대로 살기를 고집한다.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나잇살 늘면서 그 성격은 더 단단해진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산다. 가진 것을 활용하다 못 쓰게 되면 버린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안 산다. 그런 주의다. 농부는 나와 반대다. 무엇이든지 편리함을 쫒는다. 손재주가 좋고 부지런하니 일을 만들어 고생한다. 농부의 성격이 진취적이라 한편으로는 부럽지만 장단을 맞춰주기엔 내가 힘들다.
산길은 이틀 만에 반들거리게 닦였다. 농부는 시험 운전한다며 에스에스 기를 몰고 나무를 하러 간다. 부지런하면 밥은 안 굶고 산다던가. 부지런한 농부 만나 나는 편했던가. 부지런한 남자 따라 사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그랬지만 늘그막에 들어선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새해가 밝았다. 을사년 한 해도 지난해랑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다. 올해는 아들이 결혼을 한다니까 새 식구가 들어오겠지. 새 식구 들어온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시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려나. 새해 바람이라면 큰 기복 없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삶이었으면 싶다.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 건강해야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