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끝>
큰언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대나무 밭에 모인 동네 아이들이 내가 누운 대소쿠리 주위에 빙 둘러앉아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단다. 두 자루의 촛불이 구유 곁에 켜져 있었다. 거기 모인 대여섯 명의 아이들 중에 양촌할머니 댁 종손인 상후와 사촌 누나 순이도 있었다. 순이와 작은언니는 친구다. 순이도 상후를 데리고 놀러온 것이었다. 목사 흉내를 내던 큰언니가 흠칫 놀라 물러섰다. 가슴에 헝겊인형을 안고 눈을 감은 채 잠자듯이 누워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소쿠리 주변에 둘러앉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상후에게 눈이 딱 멈추었다. 그때였다. 내가 벌떡 일어서더니 촛불 한 자루를 뽑아들고 상후의 코앞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아이의 소리가 아니었다. 목 쉰 중년 여인의 목소리였다.
“네 이노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네가 와? 퍼떡 물러가지 못할까? 우리 옥이 데리고 갈라고? 어림없다 이 놈! 썩 꺼져라. 탄다. 탄다. 지옥불이 타고 있다. 썩 꺼져라. 한 목숨 갖고 갔으모 됐제. 오데서 또 욕심을 부려? 용왕이 노하셨다. 어린 목숨 갖고 장난치다가는 평생 그 악귀 못 면할 거다. 어서 썩 물러나래도? 용왕님이 부르고 있다. 썩 물러가래도. 탄다. 탄다. 방앗간이 타고 있다.”
나는 촛불을 든 채 상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무서웠다. 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 손에는 헝겊 인형을 꽈 잡고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촛불을 상후 얼굴에 바짝 갖다 댔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상후의 머리가 거슬러질 정도로 바짝 대자 상후의 눈도 벌겋게 타 올랐다. 상후의 목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미친 것, 네 딸년이 나를 봤어. 네 딸년도 데리고 가야겠다.”
“어림없다. 방앗간이 다 타기 전에 돌아가. 너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내 딸을 데리고 갈 수 없어. 저 아이를 불길에 던지겠어.”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졌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나는 촛불을 상후에게 던졌다. 촛불은 정확하게 상후의 가슴을 때리고 발치에 떨어졌다. 상후의 바지에 불이 붙었다. 상후는 나무토막처럼 꼼짝도 못하고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내가 상후에게 달려들자 상후는 희죽 웃었다. 상후의 뺨을 사정없이 쳤다. 타악, 아이의 손이 아니었다. 하얗게 질린 상후가 나무토막처럼 픽 쓰러졌다. 그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상후의 몸에서 쑥 나오더니 대나무 우듬지로 솟구쳤다. 내가 상후의 바지에 붙은 불을 두드려 끄면서 벼락같이 소리쳤다. 행동거지도 목소리도 어린애가 아니었다.
“순아, 상후 업고 퍼떡 가거라. 상후 에미가 지달린다. 어서”
순간 얼이 빠져있던 아이들이 깨어나고 순이는 상후를 들쳐 업고 대밭을 빠져나갔다. 동네 아이들도 순이를 따라 도망을 쳤다. 두 언니만 얼이 빠진 채 내 옆에서 떨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대나무의 우듬지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사방이 괴괴했다. 어둠이 대나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영아, 수진아, 수옥아~~~’ 그제야 두 언니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할매, 여기 여기요~~~’ 두 언니는 고함을 질렀고 할머니는 대밭으로 달려오셨다. 축 늘어져 시체 같은 나를 안고 집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헝겊인형부터 찾았다. 할머니는 안도하며 헝겊인형을 내 가슴에 안겼다.
“에미가 우리 옥이를 구한기라. 인자 우리 옥이도 사람구실하고 살기다. 헛것 안 보고.”
내 어릴 적 장난감 인형은 무명베로 만든 인형이었다. 무명 헝겊을 기워 솜을 넣어 만든 사람 형상의 인형, 털실로 만든 머리, 숯으로 그린 눈썹과 코 빨간 헝겊을 댄 입, 인형은 큰 대자로 만든 엄마와 아버지였다. 인형을 만드는 것은 큰언니의 솜씨였고, 그 인형에 눈 코 입을 그려 넣는 것은 작은언니의 솜씨였다. 큰언니는 손재주가 좋았다. 인형의 옷이랑 이불 등을 진짜처럼 만들었다. 할머니의 헝겊광주리를 열면 온갖 종류의 자투리베가 있었다. 큰언니는 그것으로 솜씨를 뽐냈다. 누비이불도 만들고 베개도 만들고, 속옷에서부터 겉옷까지 인형의 옷을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커다란 인형 상자가 있었고, 우리들은 그 인형들과 함께 자랐다. 밤에도 끌어안고 자고, 학교 갈 때도 책상 밑에 숨겨두고 갔다.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인형놀이를 아주 싫어하셨다. 사람 형상을 한 인형에 못 된 짓을 하면 장희빈처럼 쫓겨나 사약을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가 역사 속의 인물이었던 장희빈을 어떻게 알았을까.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귀동냥 한 것이었겠지만 조선의 국모였다가 사약을 받게 된 가련한 여인은 할머니의 입을 빌어 구성지게 살아나곤 했다. 할머니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외우기에는 달인이었다. 천수경은 물론이고, 법화경이나 반야심경을 줄줄 읊었다. 오지랖 넓었던 할머니는 아는 것도 많았다. 이야기꾼에 솜씨꾼이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평생 들일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이 씨 가문의 귀한 딸이 박 씨 가문에 시집 와서 신세 조졌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양촌할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두 노인은 마루에 앉아 이런 말을 나눴다.
“순이한테 들었소만. 우리 상후 목심을 구해줘서 고맙소. 명도 할매라먼 알 것 같아 왔다우. 우리 집안에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나 알고 싶소. 꽤 좀 빼 주소. 내 복채는 든든히 놓으리다.”
“방앗간은 다 탔소? 상후는 우떻소? 그 집에 한 맺혀 죽은 귀신이 있소. 한 명도 아니고 일가족이요. 그 한을 풀어줘야 남은 자식들이라도 건사할 수 있을 기요. 일단 이걸 갖다가 손자 속옷에 달아주고 당장 용왕님께 치성 드릴 제물 준비를 하소. 제물이 준비되면 서둘러 금오암으로 가소. 금오암 스님이 알아서 풀어주실 거요. 내가 무슨 심이 있소. 우리 옥이도 아직 에리요. 지난해 용왕님께 치성을 디리는 둥 마는 둥 했으니 그 귀신이 해코지를 하는 기제. 귀신의 힘은 산 사람의 허물을 먹고 자란다요.”
할머니는 아주 작은 새빨간 복주머니를 양촌할머니께 주셨다.
그 뒤 한 달여 나는 앓았다. 그 사이 양촌할머니네 불타버린 가운데 방앗간은 깨끗하게 치워졌다. 그 자리에 나직한 묏등 세 개가 생겼다. 소용돌이가 이는 강가의 절벽 위에 아담하게 조성된 묏자리였다. 묏등은 도화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 묏등의 주인은 미궁에 빠졌다. 언제 묻혔는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누구의 시체인지, 결코 찾아낼 수 없었다. 요즘 같으면 DNA 검사를 해서라도 알아냈겠지만.
그 시체는 가운데 방앗간을 치우는 과정에서 발견 되었다. 불타버린 잔해를 치우려 바닥을 긁어내는데 가지런하게 놓인 편편한 널돌이 발견했다. 인부 중 한 사람이 구들장으로 제격이다 싶어 뒤집었는데 그 밑에 사람 형상으로 남은 뼛조각이 있더란다. 세 구의 시체였다. 살은 허물어 사라지고 뼈만 남은 것을 금오암 스님이 거두어 화장을 했다. 양촌 할머니는 큰 굿을 하고 그 뼛가루를 소중히 거두어 그 자리에 묏등을 썼다. 이승을 떠돌던 영혼이 저승으로 떠나야 평화가 찾아오는 곳이 이승의 삶이라고 하든가.
그 후 우리 가족도 고향을 떠났다. 오십대 중반이셨던 아버지가 산판에서 사고로 돌아가시자 충격으로 쓰러진 할머니도 아버지를 따라 갔다. 세자매만 남은 우리는 고모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고모의 보살핌으로 유년시절을 보내고 도시유학을 떠난 후 도시 삶에 젖어들어 고향은 잊은 거나 진배없었다.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은 양촌어르신도 돌아가시고 이어 양촌할머니도 돌아가셨단다. 그들의 남은 자식들도 고향의 재산을 정리해서 각자 짊어지고 떠났단다. 고대광실이었던 양촌어르신네 집은 오랫동안 폐가로 남아있었다. 귀신들린 집이라고 팔리지를 않았다.
이순이 지난 지금도 나는 성탄절이 돌아오면 그 날을 기억한다. 잊고 싶은데도 잊히지 않는 날이 있다면 해마다 돌아오는 성탄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도화강은 여전히 흐르지만 내 고향은 볼라보게 도시화 되었다. 내가 고향을 떠났듯이 상후도 고향을 떠난 지 오래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두 개의 방앗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강의 흐름조차 변해버린 고향은 내 기억의 삽화 속에만 살아있는 구전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푸른 발에 걸린 성탄절과 안개처럼 흐릿한 코흘리개 적 상후의 모습과 대나무 우듬지를 흔들던 검은 그림자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