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지키기
끝물 고추 갈무리 하고
도토리 껍질 까서 평상에 널고
조물조물 김밥 싸 놓고
타작하러 간 농부 기다린다.
어둠살 등에 지고
후줄근히 젖어 온 농부
차마 전하기 어려운 말
아비랑 같이 오라는 딸 목소리
여보, 딸내미 공연 날인데
그렇지 퍼뜩 준비해라
가뭄에 단비 맞은 듯
가슴이 뛴다.
운전대 잡은 아내에게
김밥 먹여주는 농부
당신 먼저 드세요 배고플 텐데
당신도 저녁 못 먹었잖아
김밥을 말아온 세월
별님도 따라오고
달님도 따라 온다.
딱 맞춤
객석에 앉자
무대에 삶이 펼쳐지고
막이 오른다.
*아마 대안학교 다니던 딸의 학교 축제날이었나 봐요.
딸이 연극 공연을 한다는데 하필이면 타작하는 날이었어요.
농부는 온종일 탈곡하는 트랙터를 따라다니며 나락 포대를 덜어냈지요.
해는 저무는데 농부는 오지 않고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엄마아빠, 내 공연 보러 꼭 와야 해.
딸 목소리가 귀청에 울려 조바심치다가 늦은 출발을 했었지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딸 학교까지 달렸어요.
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과속도 무섭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부모와 자식 간의 맹목적인 사랑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