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살이 시>
여자는 울었네.
박래여
호박꽃과 호박벌이 만나 맺은
사랑의 증표
오살이라고 따온 늙은 호박
호박죽 끓일까 싶어 쪼갰더니
속은 썩어 구더기가 살더라.
사랑만 있으면 돼
물불 안 가리고 시집온 여자
삼복더위도 너끈히 이겨내며
그것이 여자의 행복인줄 알다가
덜컥, 생사의 귀로에 섰다 돌아오니
서리 맞은 호박넌출처럼 헛헛한 가슴
남편도 자식도 타인 아닌 타인 같을 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온 날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더 치명적이고
더 깊은 절망만 도드라지는
겉보기만 멀쩡하고
속 다 썩어 문드러진
여자의 속내 같은 늙은 호박
호박 속 긁어내고 도려내며
여자는 울었네.
*시집 온 여자는 죽을 때까지 속병 앓으며 사는 것 같아요. 잘나든 못나든 가정의 안주인자리에 있으면 속 다 썩어 문드러진 후에야 편해지는 것 같아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고 살아야 내가 편하다던 가요. 늙은 호박을 쪼갤 때마다 나를 보는 것 같거든요. 지금은 다 늙어 잘 죽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람 일이란 내가 원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잘 사는 것이겠지요. 번뇌도 고통도 내 안에서 나고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몸이 성하든 아프든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지요.
저 시를 쓸 때가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빙그레 웃으며 시를 읽습니다. 시 맛 나는지 모르겠지만 진솔한 마음은 담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