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적시는 피

by 어둠의 극락

날이 저물었는데도 서라벌의 왕궁에서는 음악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상에는 평민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산해진미와 유리병에 담긴 향긋한 술이 차려져 있었고, 악공들의 연주에 맞춰 화려하게 치장한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오직 왕 한 사람만을 위한 연회였다. 그러나 정작 왕은 주안상 앞에서 턱을 괴고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낮부터 계속된 연회가 지루해진 탓이었다. 갈수록 무기력하고 우울해져 술과 가무도 더는 괴로움과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였다. 반란의 규모는 점차 커져만 갔고, 그를 진압하려 자신이 직접 파견한 견훤마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가무가 지겨워진 왕은 결국 손짓으로 악공들과 무희들을 물러가게 하였다. 내관들도 전부 내보내고 넓은 연회장에 홀로 남은 왕은 술을 들이켰다. 현 시국은 더 이상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차라리 전부 내려놓고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유일한 후계자인 조카는 아직 어렸다. 이대로 어린 조카에게 모든 일을 떠넘겨 버린다면 틀림없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될 터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연거푸 술을 들이켜도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폐하, 병부시랑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들여라.”

왕의 부름에 병부시랑이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직책에 비하여 너무 젊은 자였다. 왕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폐하, 주악을 즐기고 계셨나이까?”

“오늘따라 밤이 길고 무료하여 몇 잔 마셨느니라. 무슨 일이냐?”

“폐하께서 외로우실 듯하여 말벗이라도 되어드리고자 찾아뵈었사옵니다.”

“말벗이라? 술을 얻어 마시러 온 것이 아니고?”

“솔직히 말씀 올리옵자면 술벗이 되어드릴 용의도 있사옵니다.”

“하하! 귀엽기도 하여라. 그래, 이리 오너라.”

왕은 병부시랑에게 자신이 마시던 유리잔을 건네고 술을 가득 따랐다. 병부시랑은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는 왕에게 다가가 다시 잔을 채웠다.

“고맙구나.”

“나날이 폐하의 용안에 수심이 가득하니 신은 너무도 마음이 아프옵니다. 모두가 신을 비롯한 백관의 잘못이옵니다.”

“아니다. 짐이 부덕한 탓이니라. 짐은 애당초 이 자리에 올라서는 아니 되었다.”

“당치도 않사옵니다, 폐하. 선왕 폐하의 유지를 떠올려 보시옵소서. 선왕께서는 선덕대왕과 진덕대왕의 선례를 드시며 폐하께 선위를 하셨나이다. 폐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으시옵니다. 그저 초지일관하시옵소서.”

“말이라도 고맙구나.”

“허언이 아니옵니다, 폐하. 신은……”

“그래, 그래. 알았다. 그래도 이 조정에 그대와 같은 충신이 있어서 다행이다.”

왕은 잔을 들었다. 그는 일부러 병부시랑의 입이 닿았던 곳에 자신의 입을 대었다. 뒤늦게 취기가 올라온 왕은 곁에 꿇어앉은 병부시랑의 뺨을 어루만졌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차가웠으나 보드라웠다. 병부시랑은 왕의 손을 살며시 쥐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손가락과 손등, 손목에도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분명 무례한 행동이었음에도 왕은 그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도 즐기고 있었다. 어느덧 왕의 마음에는 욕정이 근심을 밀어내고 들어앉았다.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병부시랑을 끌어당겨 그의 입술과 자신의 것을 서로 포개었다. 입술도 뺨처럼 차가웠으나 개의치 않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술맛이 덩달아 느껴졌다. 한참을 왕의 입술을 만끽하던 병부시랑은 고개를 숙여 왕의 목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아……”

병부시랑의 입술이 목에 닿자 왕은 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의 숨결이 살갗 위로 퍼지며 간지럽혔다. 술기운과 더불어 몸이 달아오른 왕이 어깨를 들썩이자 걸치고 있던 표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병부시랑은 계속해서 왕의 목에 입을 맞추고 혀로 핥으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왕은 눈을 감고 그의 손길과 숨결을 느꼈다. 급기야 포까지 벗어버리고는 병부시랑을 끌어안아 그의 얼굴을 가슴에 품었다. 그의 얼굴과 입술이 닿는 감촉과 숨결이 가슴에까지 느껴지자 왕은 더욱 몸이 달아올랐다.

“하아……”

무언가가 이상하였다. 뜨거워진 왕의 몸과 달리 병부시랑의 몸은 점점 더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본 왕은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웬 하얀 물체가 그의 가슴에 파묻혀 있었다. 왕은 화들짝 놀라 그것을 밀어내며 나뒹굴었다. 바닥에 쓰러져 올려다보니 그것은 머리부터 발까지 온통 새하얀 사람의 형체였다.

“너, 넌 누구냐? 벼, 병부시랑…….”

왕은 너무 놀라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짜내었다. 그러나 상대는 말없이 왕을 내려다보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만 있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여봐라!”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병부시랑도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듯 온데간데없었다. 왕은 다급히 뒤로 기어서 몸을 일으켰다. 미처 옷을 챙길 겨를도 없이 그는 연회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헉!”

문밖에는 내관들이 쓰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목이 찢긴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시 연회장 안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왕은 시신들을 뛰어넘어 달아나려 하였으나 요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왕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기괴한 생김새의 요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요괴는 왕과 걸음을 맞추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겁에 질린 왕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였다.

“너는, 너는 대체 누구냐? 병부시랑을 어찌하였느냐?”

“먹었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깨끗이. 다음은 무얼 먹을까? 너? 아니면 저쪽에 있는 어린것?”

“아무도 없느냐? 여봐라! 누가 좀……!”

왕이 애처롭게 소리쳤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요괴는 깔깔대며 연회장 한가운데로 날아가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왕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벌벌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긴 옷자락을 깃발처럼 휘날리며 빙글빙글 돌던 요괴는 다시 왕에게 날아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나랑 놀자!”

얼어붙어 있던 왕은 맥없이 연회장 안으로 끌려 돌아왔다. 요괴는 왕의 손을 잡고 흔들며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이름이 뭐야? 폐하가 이름은 아니지? 내 이름은 뭔지 알아? 어떤 건방진 녀석이 백화라고 지어줬다? 다 못 그린 하얀 그림이란 뜻이라던데 어때? 이제 네 이름도 말해 봐, 응?”

요괴에게 붙잡혀 이리저리 휘둘리는 왕은 그의 수다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쉬며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을 듯하였다.

“폐하!”

그때, 연회장 안으로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연회장 내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시위들이 들어온 것이었다. 그들은 백화에게 무력하게 붙들려 있는 왕을 발견하고는 무기를 빼 들었다.

“웬 놈이냐? 쳐라! 폐하를 구하라!”

군관의 지시에 따라 시위들이 일제히 백화에게 달려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백화는 왕에게 입을 맞추고는 바닥에 앉혔다. 창칼이 날아들었으나 백화는 몸을 돌리며 옷자락으로 그것들을 전부 튕겨내었다. 백화가 움직이며 일으킨 바람에 군사들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이얏!”

군관이 칼을 휘둘렀으나 백화는 칼날을 맨손으로 가볍게 낚아채어 군관을 베어버렸다. 시위들이 물러서지 않고 계속 공격하였으나 백화는 여유롭게 옷자락으로 전부 막아내었다. 아직 피 맛을 더 보고 싶었던 백화는 군사들을 옷자락으로 베어버리거나 붙잡고 피를 빨았다. 시위들은 어린아이의 손에 꺾이는 들꽃처럼 쓰러졌다. 백화는 깔깔 웃으며 신나게 연회장 안을 날아다녔다. 한참 연회장을 휘젓던 백화는 문을 부수며 밖으로 날아갔다. 살아남은 군사들이 뒤쫓았으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요귀를 쫓아라! 궁 안을 수색하라!”

군사들이 흩어져 이동하고 시위들과 함께 와 있던 내관과 궁녀들이 서둘러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들 사이에 왕이 홀로 앉아 있었다. 머리며 옷매무새가 다 흐트러진 채로 넋이 나가 있었다.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궁녀들이 다가가 왕을 부축하였다. 힘이 다 빠져나간 그의 몸이 축 늘어졌고, 초점이 풀린 눈이 허공을 향하였다.

백화는 전각 위 용마루에 살며시 내려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군사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그를 찾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자신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백화가 기와를 딛으며 처마 끝까지 내려와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윽고 왕이 궁녀들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잃었는지 거의 들려서 옮겨지고 있었다. 백화는 그 꼴이 딱하고도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워서 조금만 더 희롱할 생각으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발바닥에 지면이 닿는 느낌은 들었으나 백화의 눈앞에는 갑자기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기절한 왕과 그를 데려가던 궁녀들, 자신을 찾던 군사들 모두 한순간에 사라지고 어둠만 가득한 방 안이었다. 서라벌의 왕궁에 있던 백화는 그 찰나의 순간에 흑재의 은신처로 돌아와 있었다. 어리둥절한 백화가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등 뒤에 송아가 서 있었다. 백화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짜증을 내었다.

“나 참, 한참 즐기고 있었는데 왜 이래?”

“자꾸만 그렇게 제멋대로 구는 까닭이 무엇이오? 내가 언제까지나 그대의 뒤치다꺼리만 할 수는 없소.”

“아, 알았어. 알았다고. 재미없게…….”

백화는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흑재의 것 못지않게 크고 화려한 의자에 한쪽 발을 걸치고 앉았다.

“잘 걸치고 다니네.”

나가려던 송아는 백화의 말에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송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향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었구나? 잘 어울려.”

“……고맙소.”

“어? 이제 고맙다고 할 줄 아네? 착하기도 하여라.”

꼭 어린아이를 대하는 말투였으나 송아는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아기태는 언제 돌아와?”

“아지태요. 한동안은 이리로 오지 않고 서원경에 머물 것이오.”

“안 와? 에이, 냄새나는 인간들 틈에 섞여서 뭐 할 게 있담? 재미없어.”

“어르신께서 시키신 일이오. 재미를 따질 일이 아니오.”

“어, 그래. 그렇겠지.”

백화는 심드렁히 답하였다.


아지태가 장악한 서원경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더는 의문의 살인 사건도 없었고, 곡식을 빼앗아 가는 무능한 관리들도 없었다. 관군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남아서 아지태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주민들도 일심동체가 되어 서원경을 더욱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었다. 도적은 물론 요괴들도 서원경을 함부로 넘볼 수 없게 되었다.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아지태의 저택이 지어졌다. 새로운 지도자를 위해 촌주들이 기꺼이 비용을 대고, 주민들이 너도나도 공사에 참여한 덕에 저택은 몇 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서원경 사람들은 관아보다 더 크고 넓은 집을 지어 주려 하였으나 아지태는 주민들의 부담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아지태는 그 집에서 살며 대윤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였다. 아지태를 보좌하는 역할은 촌주들의 자식들이 맡게 되었다.

아지태는 관아를 따로 짓지 않고 저택에 집무실을 차려 촌주의 아들들과 함께 여러 직무를 보고 있었다.

“사해점촌과 살하지촌에서도 촌주들이 귀부를 청하여 왔습니다.”

“이곳 근교에 있는 촌락들이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그곳의 촌주들도 사정이 어려워 더는 조정을 받들지 않고 어르신께 의탁하기를 원한다고 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리로 직접 찾아오라고 전하게.”

“하긴 직접 와서 어르신께 머리를 숙이게 해야겠지요.”

“그런 뜻이 아닐세. 충성과 신뢰는 그런 식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야.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지. 재물이나 볼모 같은 것 말일세.”

“아…… 그렇지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들의 소식은 계속 접하고 있는가?”

“예, 어르신. 상인들에게 들으니 죽주의 기훤이 제 수하들에게 배신당하여 죽고, 그들이 북원경의 양길에게 귀부하면서 죽주도 양길의 차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세라면 머지않아 명주와도 대치하게 될 듯합니다.”

“패서는 어떠한가?”

“그곳은 별일이 없습니다. 늘 해오던 것처럼 저들끼리 교류하며 바닷길로 장사나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게다가 견훤은 아무리 세력을 확장하더라도 사벌주에 막혀 더는 북상하지 못할 걸세. 자식이 아비와 맞서려고 들지는 않을 터이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가장 경계하여야 할 상대는 양길이 되겠군.”

“이미 중원경까지 그자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그렇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안전이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네. 어떠한 선택을 하던 백성들이 희생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겠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어르신.”

서원경 촌주들의 자제들은 아지태가 나타나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고요 속에 풀벌레와 맹꽁이 울음소리만 들리는 밤이 내렸으나 아지태는 잠들지 않았다. 그는 집사나 하인을 따로 두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려는 목적도 있었으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송아가 남들 눈에 뜨이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고 그와의 대화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는 일은 잘 되고 있소?”

등불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송아가 나타났다. 아지태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였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놀라지 않았다.

“앉으시지요.”

아지태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송아에게 내어주려 하였으나 송아는 그 옆에 빈자리에 앉았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어째서?”

“그야 송아님께서는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시고 어르신을 모신 세월도 오래되었으니까요.”

“나이가 많은 이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이오?”

“그래서 어르신께서도 늘 상석에 앉으시지 않습니까?”

“상석이 무엇이오?”

아지태는 말문이 막혔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닙니다. 거기 앉으시지요.”

아지태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도로 앉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습니다. 이곳의 민심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인간들을 제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어르신의 힘을 되찾아 드릴 방법도 찾아내었습니다.”

“무엇이오?”

“고독이라는 주술입니다. 항아리에 맹독을 지닌 벌레와 두꺼비, 뱀 따위를 채워 담고 봉한 다음, 서로 잡아먹게 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하나를 꺼내어 사용하는 술법입니다. 그것의 독을 음식에 타거나 피로 부적을 쓰는 식으로 상대를 죽이거나 저주한다고 합니다.”

송아는 저주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어르신의 힘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오?”

“본시 저주란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주에 담긴 힘은 오로지 인간에게 해를 입히고 죽이는 데에만 사용되지요. 그러니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는 다르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을 해하는 힘이라면 반대로 어르신께는 큰 보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흑재가 그동안 인육을 먹은 맹수의 피를 마신 것도 인간의 피와 살을 먹은 짐승의 피가 더 특별할 듯해서였다. 송아는 이번에는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소?”

“송아님께서는 딱 하나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무엇이오?”

어째서인지 아지태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독을 완성하더라도 어르신께 곧장 바칠 수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송아님의 아이 하나에게 우선 시험을 해보았으면 합니다만.”

말을 마친 아지태는 숨을 죽이고 송아의 눈치를 살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표정과 낯빛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놀랐는지, 화가 났는지 당최 알 수가 없어 아지태는 긴장한 채 송아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나면 되오?”

“예, 하나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송아는 아지태의 요청을 쉽게 들어주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아지태가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면 그 고독은 언제부터 만들 참이오?”

“실은 이미 재료를 구하여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제 거의 다 되었으니 내일 밤이면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되었구려.”

다음 날 밤, 아지태는 집 안 깊숙이 숨겨두었던 고독이 담긴 항아리를 꺼내었다. 여러 겹의 천이 씌워진 항아리의 입구는 뚜껑과 새끼줄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아지태는 천천히 줄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천에 손을 얹은 그는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막상 결과물을 확인하려니 긴장되고 두려웠다. 망설이던 그는 심호흡을 하며 새끼줄을 풀 때보다 더 천천히 천을 들어 올렸다. 천이 들리는 순간, 엄청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항아리 안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항아리 바닥에 수북이 쌓인 벌레의 파편과 배설물이 썩어 있었다. 아지태는 비위가 상하여 고개를 돌려버렸다. 송아는 그 지독한 악취에도 눈썹조차 움찔거리지 않았다. 아지태는 숨을 참고 다시 항아리로 고개를 돌렸다. 안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항아리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아지태의 얼굴로 달려든 그것은 시커먼 뱀이었다. 아가리를 쩍 벌리고 독니를 드러낸 뱀은 송아의 손에 붙잡혀 아지태의 눈앞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뱀은 송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송아의 손을 물었으나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것이오?”

아지태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항아리를 살살 흔들며 더 살아있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였다.

“예, 그것 딱 하나 남았습니다. 이제 독과 피를 모두 뽑아내겠습니다.”

아지태는 마구 흔들리는 뱀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뱀이 입을 벌리게 한 뒤 준비해 두었던 찻잔을 뱀의 주둥이에 대고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누런 독액이 뱀의 이빨에서 스며 나와 잔 바닥에 모였다. 어느 정도 독을 뽑아낸 아지태는 뱀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 뜯어버렸다. 그리고 다른 찻잔에 머리가 뜯긴 뱀을 꾹 쥐어짜 피를 받았다. 뱀은 머리가 뜯기고도 계속 꿈틀거렸다.

“그럼…….”

송아가 손을 앞으로 뻗자, 소매에서 검은 아이가 꾸물꾸물 기어 나와 탁상 위로 내려앉았다. 검은 아이는 노란 두 눈을 반짝이며 송아와 아지태를 번갈아 보더니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지태는 문득 송아의 마음속이 궁금해졌다. 검은 아이를 저주를 시험하는 데에 이용하겠다는 말에도 순순히 내어준 것을 보면, 자신의 몸에서 나온 존재에게 아무런 애착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였다. 송아는 손짓으로 검은 아이를 아지태 앞으로 가게 하였다. 아지태가 독이 든 잔을 내밀었으나 검은 아이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마셔라.”

송아가 말하자 검은 아이는 그제야 찻잔을 들어 뱀독을 마셨다. 숨죽여 결과를 기다렸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검은 아이는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그저 빈 잔을 이리저리 굴리며 장난을 칠 뿐이었다. 아지태는 이어서 피가 든 잔을 내밀었다. 검은 아이는 그것도 받아 마셨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낙심한 아지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용없는 듯하군요. 송구합니다. 다른 방법을 찾……”

갑자기 검은 아이가 쓰러져 뒹굴었다. 그러더니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등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눈을 가린 어둠 속에서는 방 안을 온통 뒤집어엎는 요란한 소리만이 귀에 들렸다. 아지태는 어둠 속에서 바로 앞에 있는 탁상이 박살 나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굉음만 가득한 방 안에서 아지태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크르르……

이윽고 소음이 멎으며 짐승이 위협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아지태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는 어떤 존재를 보았다. 어둠보다 더 짙은 무언가가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짐승이나 사람 같은 형태였다. 아지태는 용기를 내어 그것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엇!”

그 존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지태를 덮쳤다. 누르는 힘이 엄청나 아지태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얼굴을 들이밀자, 어둠에 익숙해졌던 아지태의 눈앞이 도로 캄캄해졌다. 으르렁대는 소리는 더욱 커져 귀를 울렸다.

키아아아악!

콰드득- 뿌드득-

괴성과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지태의 몸을 억누르던 힘이 사라졌다. 아지태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보니 다시 어렴풋이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존재는 사라지고 송아의 모습만이 또렷하게 보였다.

“저주가 잘 먹혀들었나 보오.”

“그렇다면 방금 그것이?”

송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은 성공적이었다. 힘없는 어린아이를 사나운 맹수처럼 변하게 만든 셈이었다. 아지태는 자신이 이루어 낸 성과에 스스로 감탄하여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해내었습니다! 이제 재료만 더 좋은 것으로 바꾸면 됩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아니 될 만큼 눈부신 결과가 나올 겁니다!”

아지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송아를 끌어안았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보기는 처음이었던 송아는 이상한 느낌이었으나 아지태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어, 저…… 용서하십시오. 크흠……”

아지태는 곧바로 포옹을 풀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였다.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였으나 송아는 흡족하였다. 또 한 번 아지태가 성공을 거두니 진심으로 기뻤다. 벌써 옛 위용을 되찾은 흑재의 모습이 그려졌다.




<용어 해석>

병부시랑 : 군사와 관련된 업무를 보던 부서인 병부의 차관.

백관 : 모든 벼슬아치.

초지일관 :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감.

포 : 어깨에 걸치거나 양팔에 걸쳐 늘어뜨리던 목도리 형태의 장식. 영포라고도 함.

표 : 저고리 위에 입는 긴 겉옷.

용마루 : 지붕 위 중앙에 가장 높은 수평 마루.

귀부 : 스스로 와서 복종함.

패서 : 지금의 황해도 및 평안남도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