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와 첫 만남

by 어둠의 극락

온갖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의 보금자리인 오대산에는 새로운 기운이 불어왔다. 한동안 떠나있던 허월이 암자로 다시 돌아온 덕분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리의 허락을 받아 매일 초아를 그리로 데려와서 교육하고 있었다. 물론 순식이 걱정하여 계속 머물지는 않고 종종 집에 다녀왔다.

삼 년 만에 초아는 키가 허월과 비슷해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산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 나르고 나무까지 할 만큼 체력이 강해졌다. 허월로부터 말과 글은 물론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도 배우고 있었다. 원래부터 알아들었던 만큼 말은 금방 익혀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초아를 출가시킬 생각은 없었으나, 허월은 참선과 명상을 시키고 경전도 조금씩 읽어주며 그 내용을 가르쳤다.

이른 아침 눈을 뜬 허월은 몸을 일으켰다. 초아가 자던 자리는 비어있었다. 이부자리까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허월은 전날 무예를 배우느라 피곤하여 암자에서 밤을 보내고도 부지런한 초아가 기특하여 미소를 지었다. 잠자리를 정리한 허월은 창과 방문을 모두 활짝 열었다. 문 앞에는 초아에게 만들어 준 신이 놓여있었다.

“쯧쯧, 또 맨발로 나갔구나.”

허월은 혀를 찼다. 초아는 처음 옷을 입었을 때처럼 신도 몹시 불편해하였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맨발로 다니기 일쑤였다. 그래도 발바닥이 두꺼운지 발을 다친 적은 없었다. 허월은 늘 그러하였듯 청소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허월이 청소를 마치고 아침밥을 지을 무렵, 날카로운 괴성이 온 산을 울렸다.

꿰에에엑! 끼에에에엑!

커다란 멧돼지가 풀숲을 헤치며 질주하였다. 호랑이에게 쫓기거나 화가 난 게 아니었다. 한가하게 땅벌레를 파먹다가 난데없이 초아가 등 위에 올라탔기 때문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멧돼지는 초아를 떨어뜨리려 몸부림쳤으나 그는 오히려 다리로 멧돼지의 옆구리를 더 세게 붙들었다. 멧돼지는 당황하여 더욱 거세게 몸을 흔들었으나 초아는 깔깔대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날뛰던 멧돼지는 결국 힘이 다하여 쓰러졌다.

“벌써 지친 거야? 에이, 재미없어.”

초아는 그제야 주저앉은 멧돼지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멧돼지의 귀를 살짝 꼬집고는 맨발로 돌과 거친 나무뿌리를 밟으며 정상으로 향하였다.

초아는 산 정상에 올라 상쾌한 바람을 만끽하였다. 바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초아는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허월이 가르쳐주는 것 외에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피부로 느끼는 육지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그동안 세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경계해 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욕심은 갈수록 커져서 더 먼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이 녀석아. 맨발로 산을 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였느냐?”

어느새 허월도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그렇지만 맨발로 땅을 밟는 게 더 좋은걸요. 풀과 흙이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데요, 스님.”

“어허, 지금 발이 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 나갈 수가 없느니라. 하다못해 집 없는 걸인도 발은 감싸고 다닌다. 꼭 신고 다녀라.”

“예, 스님.”

허월은 정상에서 내려가려던 초아를 막아섰다.

“오늘도 산짐승들을 괴롭히며 놀았느냐?”

“예? 아, 저…….”

“몸이 다른 곳에 있어도 나는 다 알 수가 있다. 이번에는 멧돼지였지? 괴로워하는 비명이 온 산에 울리더구나.”

초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갈수록 기운이 넘치니 주체할 수가 없는 모양이로구나. 그렇다고 다른 중생들을 괴롭혀서야 쓰느냐?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고 분명히 가르쳐주었거늘, 쯧쯧……”

“죄송합니다, 스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도 이미 여러 번 하였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구나. 일단 내려가서 공양부터 하자.”

“예…….”

초아는 오늘만큼은 잘못 걸렸구나 싶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허월은 물동이의 뚜껑을 뒤집어 들고 왔다. 뚜껑에는 물과 함께 살아있는 작은 물고기가 담겨있었다.

“웬 고기여요, 스님?”

초아가 어리둥절하여 묻자 허월은 물동이 뚜껑을 기울여 물을 따라 버렸다. 허월이 뚜껑을 다시 바로 드니 물고기의 등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살짝 나올 정도의 물만 남았다.

“스, 스님! 왜 이러세요?”

초아는 허월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받아라. 이것을 들고 산에서 내려가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오너라.”

“예?”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그 고기를 살리려면 어찌하여야 할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행여 물을 쏟더라도 절대로 어디선가 다시 퍼오지 말아라. 네가 나를 속이지는 않으리라 믿겠다. 어서 다녀오너라.”

“예, 스님…….”

그것은 동물들을 괴롭힌 일에 대한 벌이었다.

등산은 초아에게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물을 쏟지 않도록 신경 쓰며 산을 오르려니 쉽지 않았다. 뚜껑이 납작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물이 찰랑거리며 넘쳤다. 거기다 답답한 신까지 신고서 산을 오르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넘치는 물을 막으려고 뚜껑을 손으로 덮어보려 하였으나 뚜껑이 손보다 커서 소용없었다. 산 중턱에 이르기도 전에 초아는 이미 지쳐 있었다.

최선을 다하였으나 초아는 비탈길에서 발이 미끄러지며 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는 물고기의 등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안돼…….”

물이 줄어들수록 점차 허월의 꾸중을 들을 걱정은 사라지고 물고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조금만 더 흘렸다가는 정말 물고기가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상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만 하였다. 오늘따라 매일 오르내리던 오대산이 유독 높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이 가까워지자 초아는 차라리 빠르게 뛰어 올라가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도 답답하고 지쳐서 나온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그를 행동으로 옮긴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허월은 정상에서 초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암자에서 기다리려다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하여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아가 다급하게 정상으로 올라왔다. 손에 든 뚜껑에 물은 거의 남지 않고 물고기는 그릇 바닥에 누워 애처롭게 퍼덕거리고 있었다. 초아는 정상에 서 있는 허월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달려왔다.

“스님! 물 좀 주셔요! 고기가 죽어가요! 제발……”

“물을 다 흘렸느냐?”

“예, 스님. 제발 물 좀 주셔요! 이러다가……”

“네가 물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였더라면 살 수 있었다. 지금처럼 숨이 막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겠지. 아니 그러하냐?”

초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부림치며 뻐끔거리는 물고기는 곧 숨이 멎기 직전이었다.

“그 고기가 너의 손에 맡겨진 순간부터 그 목숨도 네 손에 달린 셈이었다. 네가 물을 흘리느냐, 흘리지 않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었지. 힘이란 그런 것이다. 네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네 손에 쥐어진 목숨을 끊을 수도, 살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결코 함부로 휘둘러서는 아니 되느니라. 내가 왜 너에게 이런 벌을 주었는지 이제 알겠느냐?”

허월의 가르침에 초아는 살면서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동안 산짐승들을 힘으로 제압하여 억지로 데리고 놀았던 일들이 사무치게 후회되었다. 이제야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느낄 수 있었다. 초아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물고기에 떨어졌다. 뒷짐을 진 채 말없이 초아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월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호리병의 물을 물고기에게 부었다. 뚜껑에 물이 가득 차자 잠시 뒤 물고기는 다시 아가미를 움직이며 숨을 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몸을 일으켜 헤엄까지 치게 되었다. 물고기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초아는 몹시 기뻐 얼굴이 환해지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허월은 애당초 초아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물고기를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만 내려가자. 집에 가야지. 오늘 가르쳐줄 것은 이것으로 되었다. 그 고기는 조심해서 암자로 데려다 놓고 일찍 집에 가거라.”

“네, 스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초아는 연신 허월에게 고개를 숙였다.

초아는 매우 신중하게 걸음을 딛으며 암자로 내려갔다. 평소 같으면 단번에 뛰어 내려갔을 길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전혀 흘리지 않을 수는 없었으나 이번에는 물의 양이 그럭저럭 잘 유지되었다. 뒤따라가던 허월은 초아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암자에 거의 다 오자 초아는 앞서 나가려는 마음을 누르며 끝까지 조심하였고, 물을 거의 흘리지 않고 암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뚜껑을 처음 놓여있던 자리에 천천히 내려놓자 비로소 몸에 긴장이 풀린 초아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헤엄치는 물고기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네가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잘할게.”

“커흠……”

초아는 갑자기 들려온 헛기침 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온 신경을 물고기에 쏟느라 암자에 누군가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허월보다도 더 나이가 든 승려와 그의 제자로 보이는 젊은 승려였다.

“누구……?”

노승이 웃으며 초아에게 다가왔다.

“이곳에 허월 스님께서 계신다고 들었소만…….”

“도선 대사님!”

도선을 본 허월이 놀라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둘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초아는 어리둥절하여 도선과 허월을 번갈아 보았다.

“여기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소승이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월정사에 들렀다가 허월 스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여 잘 지내시는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허허허, 대사님께서도 여전하십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승려들은 함께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초아는 허월 외에 다른 승려들을 처음 보는지라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도선에게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홀로 지내던 곳이라 꽤 비좁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아늑하고 좋군요.”

암자 안을 둘러보던 도선은 허월 옆에 앉은 초아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수행하는 행자님인지요?”

초아는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허월의 눈치만 살폈다. 허월의 교육을 받고 있기는 하나, 머리를 깎지도 않고 불교를 깊게 배우고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허월 외에 다른 인간과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예, 서너 해 전부터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초아라고 합니다.”

허월이 대신 답하였다. 초아는 허월에게 배운 대로 도선에게 합장하며 인사하였다.

“반갑소이다. 빈도는 도선이라 하오. 이쪽은 빈도의 제자인 경보이고.”

초아는 경보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온 세상이 어지러운데도 이곳 명주는 평화로워 보이니 다행입니다. 아드님께서 이 땅을 잘 다스리고 계시더군요.”

“허허허, 별말씀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사실 속세를 떠나면서 그 아이에게 너무 어린 나이에 중책을 맡긴 게 아닐지 늘 걱정이었답니다. 대사님께서는 또 만행 중이신지요?”

“만행은 아니고, 갈 곳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겸사겸사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확인하는 중이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난세가 시작되었으니까요.”

“하긴 그렇습니다. 아들 녀석으로부터 종종 소식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양길이 계속해서 세력을 넓히고 있고, 견훤이라는 자가 서남해 일대를 평정한 뒤에 무진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을 칭하였다지요? 조정에서 반군을 토벌하려 파견한 비장이라 하던데, 그런 자마저 조정에 반기를 들다니…….”

허월은 사태를 키운 조정이 한심스러워져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니 허월 스님께서도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세력을 키워간다면 언젠가는 이곳까지 넘볼 터이니까요. 지난번에 만났을 때 빈도가 하였던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어찌 잊겠습니까? 양손에 번뇌를 쥔 채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으니 놓아버리라고 하시었지요. 이미 하나를 버렸다고도 하시었고요.”

도선은 허월이 자신의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그 나머지를 버려야 할 때가 올 겁니다.”

“그 나머지가 혹 무엇인지요?”

“그것은 때가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되십니다. 그렇게 되면 아드님에게도 잘 일러주십시오. 그때가 오면 미련도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사님.”

초아는 둘의 대화를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슬슬 지루해지려던 찰나에 도선이 초아에게 관심을 보였다.

“행자님의 눈이 참으로 맑군요. 아주 총명해 보입니다.”

초아는 도선과 눈이 마주치자 쑥스럽고 어색하여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깊고도 예리한 눈빛이었다.

“아, 예. 무엇이든 가르쳐주면 금방 익혀서 제 것으로 만든답니다. 소승도 놀랄 정도입니다, 허허.”

허월은 도선에게 초아가 인어의 아이라는 사실도 말해주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굳이 밝힐 이유가 없었다.

“보아하니 상이며 자태가 예사롭지 않군요. 장차 이 세상을 위하여 큰일을 해낼 인물이 되겠습니다그려.”

“허허허, 과찬입니다.”

“초아라는 이름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경보야, 너도 오늘 새로이 맺은 이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거라.”

“예, 큰스님.”

경보는 주뼛거리는 초아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상냥한 미소 덕에 초아는 어색함이 조금은 가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선과 대화를 나누던 허월은 어느덧 헤어질 때가 되자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또 뵐 수 있을지요?”

“그야 모르지요. 하지만 한 번 묶인 인연의 실이 어디 쉽게 끊어지겠습니까? 허허허…….”

허월은 이대로 도선과 헤어지기가 몹시 아쉬웠다.

“산 아래까지만 따르겠습니다.”

“허허,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만 쉬시지요.”

도선은 초아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행자님도 열심히 수행하시어 훌륭한 인물이 되시오. 출가하지 않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늘 마음속에 간직하시오.”

“예, 대사님. 조심히 가셔요.”

“안녕히 계십시오, 허월 스님.”

“조심히 가십시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도선과 경보는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허월과 초아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참, 초아야. 어서 집에 가거라. 어미가 기다리겠다.”

“네, 스님. 내일 또 뵙겠습니다.”

“아, 내일은 오지 않아도 된다. 성에 볼일이 있어서 여기 올 틈이 없을 듯하구나.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라.”

“성에 가신다고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스님.”

“아니 된다. 아직은 사람이 사는 법을 더 배워야 해.”

“어휴, 아직도 안 된다고요? 대체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데요?”

“사람은 본래 평생 끊임없이 배우며 살아가는 법이니라. 이제 겨우 삼 년밖에 되지 않은 너는 오죽하겠느냐? 아직 신을 신는 버릇도 제대로 들지 않았잖느냐?”

할 말이 없어진 초아는 양 볼을 불만으로 가득 채워 부풀리며 입을 비쭉 내밀었다. 인간에 대하여 배울수록 그들을 만나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으나 허월은 그 마음을 억누르게만 하였다.

“어서 집에 가거라. 나도 이만 가보아야겠다.”

“예, 스님…….”

허월과 초아는 각자 다른 산길로 내려가 집으로 향하였다.

그 무렵 도선과 경보는 산기슭으로 내려와 있었다.

“이제 곧장 송악으로 가시렵니까, 큰스님?”

“그래야지. 처음부터 그곳이 목적이었으니까.”

“예…….”

경보는 오랜 여정이 고되어 암자에서 조금 더 쉬고 싶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아까 그 초아라는 아이 말이다. 어찌 생각하느냐?”

“뭐, 딱히 특별할 점은 없어 보였습니다만…….”

“그렇게 보였느냐? 사실 그 아이는 인간이 아니다.”

“예? 그게 무슨……”

“아니. 인간은 인간이되,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인간이 아닌 것에게 길러진 아이더구나. 참으로 묘한 인연이로다. 이미 오래전에 맺어졌는데도 둘 다 그를 모르고 있으니, 허허허…….”

경보는 알쏭달쏭한 도선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 아이와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라는 내 말 말이다. 그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 아이를 반드시 기억하거라. 언젠가 너와 함께 이 삼한과 온 세상을 위하여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아이니라.”

“큰스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 아직은 어렵게 느껴지겠지. 그래서 나는 너를 송악 성주에게 부탁하여 당나라로 보내려 한다.”

경보는 순간 귀를 의심하며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당나라라니요?”

“무얼 그리 놀라느냐? 큰 인물이 되려면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시야를 넓혀야지.”

도선이 워낙 별일 아니라는 듯이 차분하게 말한 탓에 경보는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소승은 여전히 큰스님께 배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유학을 떠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바로 그것이다. 배움이 부족하니 더 넓은 곳으로 떠나라는 말이다. 너는 이제 내게서 배울 만큼 배웠느니라. 송악 성주는 바닷길을 잘 알고 크고 튼튼한 배를 다룰 줄도 아니 너를 당나라까지 별 탈 없이 데려다줄 것이다.”

“큰스님…….”

“공부를 마치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면 세상이 바뀌어 있을 터이니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여야 할지는 가면서 천천히 일러주도록 하마.”

연이은 도선의 엄청난 말에 경보는 속이 울렁거렸다. 분명 농담이 아니었다. 도선이 실없는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다리가 떨릴 지경이었다. 경보는 스승이 자신에게 그토록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를 않았다.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오늘 처음 만난 초아와 함께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용어 해석>

비장 : 신라의 군 계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