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가다

너를 들여다보다..제주..

by 꿈꾸는엄마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기에 웬만하면 한번 쯤은 다들 들어봤을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는 곡의 도입부.

제주도를 떠올리면 가장 가장 먼저 생각나고 첫 음절만 들어도 설레이는 곡이다.

나에겐 그 곳의로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제주의 까만 밤하늘의 별빛들을 볼 생각을 하면 설레고 푸른 바다의 파도 소리를 상상하면 행복감에 가슴 벅찼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함께했던 서너 번의 제주 여행은 늘 달콤하고 그저 핑크빛만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나는 제주라는 섬의 맨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수십년 동안 보이지 않는 자물쇠로 봉인되었던 그 섬의 비밀들이 이제야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아이들과 단지 보여지는 제주가 아닌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느끼려 애쓰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제주를 만나고 싶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1월의 제주도는 그런 우리를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해 주는거 같았다. 흰눈이 소복이 쌓인 4.3 평화 공원은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 모든 것이 다 묻히고 가려진 듯 하지만 언젠가는 눈이 녹듯이, 세상이 숨기고자 하는 많은 진실들도 결국은 때가 되면 다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는.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젖먹이 아기마저도 속절없이 죽었어야 했던 그때의 사람들은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그런 일이 있고도 오랫동안 입 밖에 그 억울함 한번 토해내지 못했던 남은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을까.


전시장 안에 실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다랑쉬 굴에서의 유골들을 보면서 아직 초등 4학년, 1학년 아이였던 딸들은 너무 무섭다고 뒷걸음질을 쳤는데, 나는 그 순간 그 시절 제주에 우리가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이들 앞에서는 천하무적을 자처하고 늘 “걱정마, 엄마가 지켜줄게.” 하는 내가 아이들을 지킬 수 없는 무자비한 상황과 무력감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알뜨르 비행장과 지하벙커는 4.3사건과는 상관이 없지만 제주의 또 다른 아픔과 비극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이 미국의 본토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제주도를 최후의 방어진으로 삼고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만든 곳 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을 둘러보러 가는 길은 황금빛 석양 아래 마치 커피 가루를 깔아놓은 제주 밭의 모습이 황홀하게 느껴질만큼 좋았고 ‘평화로움’이라는 형용사를 이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녹슨 철근으로 만든 제로센 전투기 모형과 시멘트 덩어리로 만들어진 ᅟ격납고가 더욱 비극적으로 보여졌다. 그 앞에 서서 둘째 아이가 조그만한 손바닥을 왼쪽 가슴에 올려두고 애국가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상상도 하기 싫은 그 시대가 아닌 2025년 제주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다음으론 애국가를 부르며 나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를 하려는 아이의 마음에 감사했다.


여행을 통해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나도 아이들도 좀 더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픔이나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르면 그저 아름답고 찬란해 보이기만 하는 그 작은 섬이 그렇듯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생채기와 흉터가 있을거다.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아픔을 헤아리고 공감할 줄 아는 어른들로 자라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