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에 가다.

그들의 용기를 마주하다

by 꿈꾸는엄마

서대문 형무소,,말에도 무게가 있다면 이 단어가 주는 중압감은 너무나 커서 감히 이 곳의 방문을 그저 아이들과의 견학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신념과 의지가 빛을 잃어 갔던 곳. 아니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숭고한 빛이 일렁이던 곳.


생각했던 거 보다 높고 큰 건물,,그리고 그 전면을 채우고 있는 태극기의 위엄에 압도되어 우리는 입구에서부터 숙연한 모드로 들어섰다. 2학년이었던 큰 아이와는 관련 영화들도 꽤 보고 책도 다양하게 읽었던 터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유관순 언니 정도만 알고 있었던 6살 둘째에게는 이런 무겁고 힘든 이야기를 아무리 순화한다 해도 전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아픔을 아이에게 까지는 하고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적절한 시기가 되었을 땐 우리 아이들이 누구보다 제대로 알고 그들의 용기와 정신을 기리며 닮아가길 바라지만 말이다.


실내로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루한 문짝이 달린 방들이 서글픈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빛 한줄기 겨우 들어오는 차가운 골방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영웅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상상해 보지만 그래본들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실감할 수 있을까. 살이 에는 추위와 숨쉬기도 힘든 더위에 이런 협소하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그 모진 고문들을 견디며 살아내야 했던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참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 만큼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는 안도를 한다.


역사를 공부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저 상황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같은 가정이 아닐까 싶다. 서대문 형무소 곳곳을 견학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라면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님 애초에 독립이나 나라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으로 살았을까. 내가 일본 사람이었다면 내 나라이기에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것을 방임하거나 정당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님 옳지 않은 내 나라의 행태가 부끄러웠을까. 실제로 일본 사람들 중에서 비록 소수이지만 우리 편에 서서 돕다가 이곳에 수용된 일본 사람들도 있다고 했는데 그들의 마음은 또 어땠을지,,그때나 지금이나 옳은 건 옳다고 틀린 건 틀리다 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듯하다. 특히 그 대상이 다수라면.


다른 한 공간에는 사면에 5천 여 장의 수형인 명부가 빼곡히 붙어 있었는데 흑백사진 속 그들의 담담한 표정과 눈빛을 보니 가슴 한 켠 뜨거운 열기 하나 켜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두려웠을거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있기도 힘들게 아득한 상황 일텐데 저들은 어찌 저렇게 하나같이 단단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할 수 있었을까. 그곳에서 본 고문 도구나 공간을 보니 더 대단하다는 마음과 미안함과 그리고 그들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곳에 다녀오고 아이들이 좀 커서 함께 <항거> <영웅> <밀정> <암살> 등 영화를 함께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물어본다. 엄마라면 어땠을거 같냐고.

“엄마라도 그렇게 했을거야.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고 싶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우리이기에 지금 선뜻 용기를 내기는 힘들지만 진짜 우리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적어도 부끄러운 선택은 안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그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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