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크는 중 #1

프롤로그

by rodit 로딧

나는 6년 차 백패커, 하이커이다.

초등학생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산으로, 혹은 섬으로 떠나거나, 때로는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자연에서 하룻밤 내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을 6년째 해내고 있다. 아니, 6년째 빠져있다. 물론 대부분의 일상은 아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작년, 그러니까 2024년까지의 나의 일상은 이러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스케줄을 확인한 뒤, 오늘은 또 어떤 문제상황이 나의 능력치와 융통성을 확인하자고 달려들지 예상해 본다. 침대에 누운 채로 중요한 업무도 확인해 본다. 여행지에서 눈을 뜨자마자 텐트 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침대에서 꾸물거리는 마약 같은 시간을 겨우 이겨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들고, 피트니스 사우나 냉온욕으로 정신을 차린다. 바야흐로 하루의 시작이다. 그래도 문득 삶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종종 일상 속에서도 찾아든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출근길에 듣는 정지영 씨의 라디오. 익숙한 목소리와 갖가지 사연들을 듣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라디오에서는 매일매일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이 흘러나온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우리 초등학생 아들이 어제는 저한테 뭐라고 하면서 문을 쾅, 하고 닫는 거 있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하는 어머니의 사연. ‘지영이 이모’에게 보낸 꼬마 아이들의 명랑한 노랫소리, ‘지영이 이모’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싱글의 일상을 이어가는 나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문득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과, 가보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 혹은 설렘이 닮아있기 때문일까. 삶과 여행은 닮은 구석이 많고, 나는 자연으로의 여행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이런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이 길로 가도 괜찮은 걸까, 오늘은 이곳에 텐트를 치고 몸을 뉘어볼까?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거야. 일단 이 길로 가보자!

이번 여행지는 어떤 곳일까? 경사, 고도, 기온은 어떻지? 특별한 술을 먹을까? 로컬 음식을 먹을까? 그곳에서 장을 볼까? 제대로 된 기록이 필요한데 이번엔 촬영에 집중해 볼까? 미니멀로 갈까? 아차. 이번에 장만한 장비는 챙겼나? 또 맥시멀이 돼버렸네.

매번 선택의 순간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버릴 것을 버리고, 챙겨야 할 것은 챙기며 나는 내가 더 노련해졌음을, 더 성장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배낭은 나의 유일무이한 친구가 됐다. 짊어져야 할 짐인 동시에 생존이고 힐링이며, 리프레시의 통로이다. 자연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켜켜이 쌓여 나를 뒤바꿔 놓았다.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6년째에 접어듬과 동시에, 퇴사와 함께 25년 새로운 일상을 준비 중이다.

이제 나는 여행지를 생각하면 설렘이 먼저 솟아오르지만, 5년 전 나의 삶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나 홀로 창업을 하고, 아이들 미술놀이 수업을 하며 하루하루를 일궈나가고 있는 와중에 30대 중반 싱글 여성에게 다가오는 사회적 압박은 내 삶을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혼이라는 숙제를 하기 전에는 오롯이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시선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 시선들에 면역이 생길 법도 한데, 유난히 예민했었던 걸까? 나 자신에게 확신이 부족했던 걸까...? 내 마음속 오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나 홀로 백패킹을 도전하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어 준 것이다. 나의 백패킹은 그렇게 시작됐고, 다소 불안하고 꼬여있었던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초보라고 하기에는 경력직이고, 프로라고 하기에는 아직 겁이 많은 이른바 ‘중고 신인’이지만 나의 백패킹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내가 왜 ‘하룻밤의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는지, 그곳에서 어떤 풍경과 세상을 마주했는지, 자연에서 어떻게 커나갈 수 있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