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약간의 논란을 불러올 수 있지만 진심을 다해 쓰고자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 현실에 대해 한번은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든다. 벌써 11월의 마지막 주이다. 올 한 해 뭔가를 하려고 분주히 움직인 거 같은데 가르치는 아이들이 속을 썩일 때면 밀려오는 좌절감 또한 극에 달하는 거 같아 안타깝다. 올해 아이들이 참 극성맞다고 해야 하나? 원래 아이들은 극성맞다고 해야 하나? 틈만 나면 서로 싸우고 내가 자리에 없으면 아주 난리도 아니다. 예전의 교육 현실에 비하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선배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고 그걸 고쳐주기를 학부모들을 원하지 않는다. 선생님에 대한 예의? 지금의 아이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오직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다구니들처럼 달려들며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배척한다. 남에 대한 이해, 배려 눈을 씻고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이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부모나 주위 어른들을 따라 할 뿐이다. 그렇다고 부모나 주위 어른들에게 뭐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분들도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팍팍하고 힘든데 예의까지 차리는 것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단군이래 최고로 부유할지는 몰라도 속으로 마음의 병이 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는 불행히도 일생에서 가장 순수해야 할 아이들을 통해 느끼게 된다. 유튜브를 보면 내가 구독한 유튜버 선생님들은 이상하게 학교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바로 그만두었다. 이유야 어떻든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밥벌이만 해결되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변했고 내가 그것에 못 쫓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인 듯싶다.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정말 사랑으로 가르치셨는데 나는 그게 안된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하면 오해받기 십상이다. 매사 장난치는 아이들에서 서운함을 표현하고 집에 오는데 왜 그렇게 가슴속 체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뜩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10년 전쯤 영어체험센터라고 하여 갑자기 전국적인 영어교육 열풍이 불 때 나는 그곳에 파견교사로 2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젊고 실력 있다고 주위의 추천을 받아 들어갔는데 가보니 세상에 실력 좋은 선생님들은 나 말고도 훨씬 많았다. 총 4명의 한국 선생님들과 4명의 원어민 선생님들과 같이 근무했다. 나는 그냥 떠듬떠듬 영어를 했는데 나를 뺀 세분의 선생님들의 영어 실력은 지금 미국 한복판에서도 잘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초, 중학생들의 영어 캠프를 1주일씩 진행하고 있는데 어느 날인가 특수학교에서 하루 동안 영어를 배우러 온다고 하였다.
'특수학생도 영어는 필요하겠지...'라고 아무 생각 없이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자고 하여 모였다. 회의 주제는 왜 영어교육 기관에서 특수학생까지 받아야 하나였다. 나는 아직 이쪽 생활이 익숙지 않아 잠자코 있었는데 계획에 의해 특수학생들도 받아야 한다는 입장과 받지 말자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끝내 이 문제를 상부 교육기관에 문의를 했는데 특수교육법에 의하여 받는 게 맞다는 답변을 받게 되었다. 나는 특수교육법보다는 이미 계획된 일인데 그냥 추진하는 게 오히려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업을 원어민 한 명과 한 팀이 되어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오는 특수학생들은 다른 곳은 멀쩡한데 눈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원어민과 상의하여 검은 주머니에 풀, 오렌지, 인형 등 작은 물체를 넣고 손으로 만져보며 하나씩 꺼내며 영어단어를 배우면 좋을 거 같다고 하였다. 그렇게 여러 프로그램을 특수학생을 위해 새롭게 만들고 준비하였다.
검은색으로 짙은 선팅을 한 버스가 센터 앞에 도착하여 영어센터의 모든 교직원이 마중하러 나왔다. 학생들이 내리는데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 고학년까지 20여 명의 학생들이 모두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내리는 모습을 봤다. '아!' 낮은 탄식이 나왔다. 그렇게 그 학생들과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준비한 수업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얼마나 무서워하고 즐거워하던지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예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었다는 반복 하며 깔깔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옆에서 수업보조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졌다. 나는 더 이상 수업을 진행을 못하고 같이 있던 원어민에게 손짓으로 계속 진행하라고 하였다. 10년이 더 지난 일인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 여러 영어수업이 끝나고도 그 모습이 눈에 잊히지 않았다. 나는 눈이 이렇게 잘 보이는데도 불평불만에 살고 있는데 저 여학생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렇게 준비한 모든 수업이 끝나고 그 학생들은 오던 모습 그대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시 짙은 선팅을 한 버스를 타고 떠났다. 우리들은 모두 배웅을 해줬다. 평소와 다르게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짧은 교육시간이 아쉬웠는지 다시 만나자고 했고 우리도 또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학생들이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이 사라지고서도 한참 동안 바라보게 되었다. 그날 저녁 평소에 안 하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나는 눈이 보이게 나줘서 고맙다는 전화였는데 그냥 안무 전화만 하고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 있냐라는 말씀에 그냥 전화했다고만 말하고 끊었다.
행복은 사실 거창한 것에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나는 이 일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아이들에게 대한 깊은 좌절을 겪고 나서 문뜩 떠오르게 되었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속을 좀 썩인 들, 뜻하던 바가 올해 못 이룬 들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미처 눈이 보인다는 기적과 같은 대단함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지금 내가 눈이 잘 보이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