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라도 괜찮아

by 정수TV

살다 보면 참 호구 짓을 할 때가 많다. "호구 짓" 사전을 찾아보니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도 가끔 호구 짓을 한다. 뭔가 열심히 해도 나중에 그 공을 남이 가로채거나 그걸 알면서도 모른척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나름 잘 살고 있으니 호구 짓은 그리 나쁜 게 아닌 듯싶다. 이번의 글들은 나의 호구 짓을 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호구 짓도 인생의 내 인생의 한 부분인 듯싶다.

갑자기 떠오른 호구 짓은 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다. 지도교수님의 달콤한 속삭임 "야! 너 나중에 교수라도 해야 할거 아냐?"란 말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집에 가서도 부모님께 대학으로는 부족하다 더 공부해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또 등록금을 타냈다. 마치 내가 나중에 교수가 되는 꿈을 꾸는 거 같았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공부하는 게 즐거운 게 아니었다. 학부생일 때는 강의가 지겹기 그지없었는데 대학원생이 되고 보니 은근 학문과 잘 맞는 거 같았다. 가끔 대학원 내에서도 행사가 있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행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 졸업논문을 써야 했다. 그때부터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년 정도 공들여 쓴 논문이 동기들 중 나만 통과를 못했다. 얼마나 비참하던지 지도교수님께 찾아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그게 말썽이 되고 말았다. 다음 해에도 정말 간신히 논문이 통과되고 나는 더 이상 대학원과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더욱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같이 대학 때부터 공부한 동기 중에 한 명을 학부생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원에 들어온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었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도태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논문도 간신히 통과되었는데 나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 깨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학원 생활을 떠올리면 뭔가 속은 느낌이 크다. 남들은 3~4년 정도 대학원을 다니는데 나는 7년을 꼬박 다녔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에게 "너 박사 코스 밟는 거야?"라며 궁금해하던데 나는 7년 만에 정말 간신히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졸업 논문 쓰느라 죽는 줄 알았다. 대학원 나와서 뭐에 써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호구 짓 중에 하나가 대학원이 아닐까 싶다. "교수 만들어줄게~"란 말이 나의 젊은 시절 7년을 허비하게 했다. 나는 정말 내가 뭐라도 될 거란 생각에 열심히 공부도 하고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내가 참 눈치가 없었던 게 행사 때마다 나는 항상 강의를 도맡아 하는 그 동기생의 보조역할이었다. 노트북을 설치해준다거나 PPT를 클릭해준다거나 그래도 그 당시 곧 발표를 시작해야 할 동기의 PPT가 문제가 생겼는데 나에게 맡겨 달라며 시간을 벌기 위해 말을 돌리라고 했고 내가 문제점을 고쳐준 것으로 생각난다. 나는 성심을 다해 그 동기가 발표를 잘하게 도와줬다. 그런데 몇 해 전 그 동기가 나에게 사소한 문제로 심한 말을 하며 서운해했다. 나는 잠자코 들어보니 나의 잘못이 있어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 동기는 더욱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다른 동기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서슴지 않고 하는데 정말 사람에 대해 실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번 글들은 나의 호구 짓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학원 생활이 나의 젊은 시절의 호구 짓이었다면 지금은 나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줬던 그 동기가 발표하는 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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