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야 건강해야 돼

by 정수TV

작년 늦가을이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근무하다 저녁때 퇴근하려고 평소처럼 차에 문을 열려고 하는데 뒤에 뭔가 푸덕거리는 거 같아 궁금해서 다가갔다. 어디서 예쁜 갈색의 비둘기가 어딘가 아픈지 내 차 뒤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한참을 지켜봤는데 몸이 불편하지 같은 자리를 맴돌 뿐 나를 봐도 도망갈 힘이 없어 보였다.

'오늘 밤 고양이에게 잡혀가겠군' 이렇게 생각하고 안타깝지만 자연의 섭리라 생각하고 집으로 퇴근했다. 그런데 자꾸만 생각나는 건 왜일까 집사람에게도 얘기하고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하며 모두들 그 비둘기의 운명을 아쉬워했다.

다음날 아침 비도 부슬부슬 내리니 날씨도 쌀쌀해졌다. 학교에 가는 길에 어제 보았던 비둘기 생각이 났다. 당연히 동네 건달 같은 고양이에게 잡혀 갔을 거라 굳게 믿고 가서 봤더니 세상에 이게 웬일일까 그 비둘기는 처량하게 비를 맞아가며 근처 풀숲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 짧은 탄식이 나왔다. 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몸은 아픈데 날 수도 없어 그냥 밤새 그 비를 맞고 그 자리에서 맴돌았던 듯싶었고 어제보다 더욱 상태가 더욱 좋지 않았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바로 보건실로 갔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아프면 항상 보건 선생님과 상의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보건 선생님과 상의했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정실로 달려가 행정실 직원들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나는 평소에 행정실 직원들과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자주 한다. 이상하게 그쪽 분들과 성격이 잘 맞았는지 별거 아닌 것도 즐겁게 이야기하고 또 나도 듣게 된다. 역시 행정실 직원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경청해줬다. 그렇게 교실로 와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마음속에 자꾸만 그 비둘기가 걱정되었다. 그렇게 수업을 한참 하고 있는데 행정실에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야생동물보호소에 전화했더니 방금 와서 비둘기 데리고 갔어요. 요즘 바이러스가 유행이라 며칠 주사 맞으면 바로 건강해져서 날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두 손을 번쩍 들어 기뻐했고 아이들도 나의 전후 이야기를 듣고 기뻐해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둘기는 학교 근처 산에서 날아온 것이고 정식 명칭은 산비둘기로 크기가 보통의 비둘기보다 작고 색깔이 고왔다. 그 후 운동장에 자주 그와 같은 비둘기들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작은 생명이라도 그 무게는 똑같다고 하는데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그 기분 좋은 일이 있은 후 오랜만에 쉬는 휴일이라 뭐를 좀 먹을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햄버거 가게를 가게 되었다. 햄버거 가게 옆에 우연히 또 몸이 좋지 않은 비둘기를 보게 되었다. '오홋! 너도 몸이 좋지 않구나!' 나는 내가 직접 보호소에 전화하는 거보다 햄버거 가게에 얘기하는데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문한 햄버거를 받고 직원에게 "밖에 아픈 비둘기가 있으니 야생동물 보호소에 전화하면 곧 데리고 간다"라고 얘기하려고 하는데 말이 헛나왔다.

"밖에 비둘기가 아픈데 야동 보호소에 전화하세요." 순간 그 여직원이 눈이 휘둥그레 졌고 주위에 조용히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야생동물 보호소"란 말이 그렇게 어려웠단 말인가! 다행히 주위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다른 직원이 "아~ 야생동물 보호소요?"라고 얘기해서 그 민망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햄버거를 손에 들고 나오면서 그 비둘기를 보고 얘기했다. "건강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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