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교직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by 정수TV

"선생님은 교직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느 날 같이 근무하는 신규 선생님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새로 발령받은 신규 선생님은 모든 것이 신기한지 아니면 어느 문제가 발생해 본인에게 물어봐도 딱이 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나에게 질문했다. 분명 본인은 대학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내용인데도 선배로 보이는 나에게까지 교직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글쎄요" 나는 당황하여 바로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해서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다. 지금이야 수능이라고 여러 대학을 지원할 수 있었지만 '선지원 후시험제'라서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고 떨어지면 후기대학을 시험을 보는 체제였다. 한마디로 살벌하면서도 지금의 세상과 매우 흡사한 경쟁구도였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좋은 과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과만 잘 고르면 운 좋게 들어갔다고 방송에 나올 정도였다. 나는 그 시절 그렇게 살다 보니 그냥 점수에 맞춰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발령을 받아 벌써 20년 정도 될 무렵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날 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큰 희열을 느끼고 보람도 있었지만 사실 마음 아픈 적도 많았다. 말 안 듣는 아이과 그 부모의 항의를 들었으며 동료 선생님들 사이의 갈등, 관리자와의 갈등 등 수도 없이 많은 갈등 속에서 깨달은 것은 그런 갈등 상황이 될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근무하는 학교로 옮기면서 내가 오기 전 젊은 남자 교사가 1년 만에 사표를 쓰고 지금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궁금하기도 했다. 하여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음 날 또 그 후배 교사와 얘기할 기회가 되어 어제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얘기했다.

"교직은 돈을 벌기 위한 거야. 그리고 나중에 그 돈을 값어치 있게 어디에 쓸까를 고민하면 되지" 사실 나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얘기할 줄 몰랐다. 그동안 대학교 4년 내내 배운 교직은 성직설, 노동자설, 자기 성장설, 사회기여설 등등 많은데 하필 노동자설이었다. 그 후 그 후배 교사는 나를 참 한심한 선배교사로 생각 들었는지 눈빛에서 경멸 같은 게 느껴질 정도로 싫어했다. 그 후배 교사야 나를 싫어하던 말던 그건 그분의 자유이고 나는 내가 했던 말의 의미를 지금도 가끔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만약 교직에 있으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면 아마도 성직자설이나 사회기여설 등 겉은 멋있는 말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교직은 절대 녹녹지 않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얘기한 건데 아무래도 상대가 사명감이 투철한 신규교사로 듣고 싶었던 원하는 대답이 아닌 거 같았고 많이 실망했을 거 같다.

그러고 보면 고3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부모님의 권유로 내가 교육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더니 끝끝내 말리셨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했다. 그냥 그때 인기 많은 공과대학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그 당시 친구들은 토목공학과, 건축학과, 공군사관학교 등 남자들이 선호하는 과로 진학했고 나는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교육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사실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고 체육수업, 무용 수업, 꽃 가꾸기, 시창(동요 부르기) 등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전문적으로 배워야 했고 게다가 잘해야 했다. 물론 즐거운 일도 있었다. 동기들과 순대국밥에 소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게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던지 내가 1학년이 끝나갈 늦가을쯤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큰 대학에 다니며 멋있어 보이는데 나는 어느 교수님마저도 "남자들이 교육대학에 왜 들어왔냐?"며 핀잔을 주시고 특히 그 눈빛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날 친구들에게 나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얘기했더니 동기들이 모두 학교 앞 순대국밥 집에 모여 점심식사로 국밥과 소주를 마시며 그 이상한 말을 떠들어댔던 교수를 욕하며 떠나지 말라고 말렸다. 나는 동기들의 위로에 눈물이 나는 거 같았고 낮 술을 먹고 이미 취하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어린 나이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때 만약 그만두었다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일도 없고 내가 누리는 편한 생활도 없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고 그때 그 후배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교직은 돈도 벌 수 있어 편리한 생활도 가능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내가 나 답게 살게 해 준다는 점이다." 교육학에서는 성직자설이 지배적이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성스러운 일이라고 이건 현실을 전혀 모르는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전무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교직은 절대 성직자가 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말 안 듣고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에게 좋은 말로써 감화가 될까? 아이들은 절대 약하게 구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게 교직인데 대학에서는 아이들은 오직 선한 존재로만 가르친다. 실제 그런 선한 존재들이 크면 세상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왜 이렇게 흉악한 세상이 되었겠는가?

그렇다고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즉, 교직은 아이들에게 방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다 보면 교직을 그만두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들 때문에 매일 상처받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오기 전 젊은 남자 교사는 1년 하고 그만둔 이유가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나는 교직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음에는 문제학생의 말에 무감각한 척 행동도 해보고 열심히 능동적으로 움직여 본 적도 있다. 그리고 깨달은 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내가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발견한다는 점이다. 내가 대학생 때 매일 피아노를 배웠던 게 생각도 나고 꽃을 가꿔보기도 했다. 즉,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노력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본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기쁘다. 교직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매우 다양한 행사가 있고 그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도 거의 매일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에게 매우 불친절한 교직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교직은 내가 나 답게 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가 교직에 관심이 있거나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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