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장인어른께서 요 근래 안타깝게도 폐에 병이 생겨 투병을 시작하셨다. 나이도 있고 그동안 피우셨던 담배가 원인이 된 듯싶었다. 며칠 전 막내 아이와 잠깐 인사를 하러 처갓집에 들렸는데 평소와 다르게 수척해진 모습에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인사만 하고 돌아와야 했다. 휴일 오후 심심하기에 초등학생 막내 아이와 드라이브를 같이 갔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물었다.
"외할아버지 평소와 다르지?"
"너무 달라 놀랐어" 막내의 말에 나도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너에게 할아버지, 나에겐 아빠도 큰 병에 걸리셨지" 그런데 다음 말을 해야 하는데 말문이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수롭지 않은 듯 쓱 닦으며 예전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때는 신병시절 한참 힘든 훈련을 받고 처음으로 부모님 오신다고 아침부터 굶고 부모님을 기다리는데 어머니만 오셨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워낙 바쁘신 분이라 일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어머니께서 싸온 음식에만 관심을 갖고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셨고 부대 앞 다방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아빠가 큰 병에 걸리셨다고 했다. 나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다시 군대에서 근무하는데 운 좋게 1박 2일로 포상휴가를 가게 되었다. 들뜬 마음에 집에 도착했는데 들어오기 전 어머니께서 먼저 집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빠 모습에 놀라지 마" 많이 아프시고 음식도 못 드신 지 두 달쯤 되었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갔다. 내가 본모습은 정말 차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고 밝게 나를 맞아주시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내가 다음날 자대 복귀를 위해 현관을 나서려고 하는데 어머니께서 큰절 올리라고 하셨고 나는 큰절을 올렸고 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내가 자대로 복귀하고 두 달 정도 더 있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고 이 많은 사람들은 왜 나에게 위로해줄까도 어색하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장례식은 끝났고 그해가 1995년도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27년이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장인어른의 큰 병으로 나의 옛 기억이 되살아 났다.
나는 매일 우울해하는 집사람에 연휴를 맞아 억지로 1박 2일 놀러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내가 꼭 가자고 설득했고 여행을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젊었을 때 열심히 놀러 다니자" 집사람은 지금 상황이 있어 그 말의 의미를 건성으로 받아들인 듯싶지만 사실 나는 진심이었다. 생로병사란 말이 있는데 그건 지구에서 생물로 태어난 이상 받아 들어야 할 운명이다. 나는 이미 어린 시절 아버님을 통해 알았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인생은 절대 길지 않으니 오늘이라도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 미움, 욕심, 슬픔 모두 내려놓고 오늘 하루를 즐겼으면 좋겠다. 어차피 우리는 그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