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시골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이유는 사실 집사람과 이런저런 이유로 하도 싸워 이러다 정말 가정이 두 동강 날 것 같아 차라리 시골에 가서 혼자 생활하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새롭게 간 시골 학교 선생님들이 나에게 어떻게 오게 되었냐며 묻는 말에 그냥 "시골 점수 따서 승진을 하려고 왔어요"라며 둘러댔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왜 집에 안 가고 학교 사택에서 사나?'라며 은근히 나를 경계하고 관리자들은 급기야 괴롭히기까지 했다. 그래도 차마 시골에 온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학년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서 수업을 했는데 그것을 본 교장 선생님께서 마음에 안 드셨는지 오후 4시가 되면 나를 교장실로 불러 내가 한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40분이 한 차시 수업인데 40가지의 잘못을 지적하셨다. 1분에 하나꼴로 수업의 단점을 이야기하는데 무슨 기네스기록을 깨는 듯한 분위기였다. 우리나라 교육법상 관리자가 수업을 참관하고 좋은 방향으로 코멘트해 주는 것은 법적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드는 교사를 지적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 후 급기야 매일 수업을 참관하겠다며 괴롭게 했다. 지금이야 관리자가 이렇게 굴면 바로 갑질로 신고하면 끝인데 내가 그때 처한 상황이 누구에게 하소연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누가 뭐라 하건 말건 나의 일을 해야 할 뿐이었다. 끝내 교장선생님께서 자꾸만 우리 교실에 와서 수업을 지켜보니 오히려 딴짓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교장선생님께 그만 와달라며 편지를 써서 학교에 비치된 학교폭력 신고함에 넣은 모양이었다. 그랬더니 화가 난 교장 선생님은 누가 그 편지를 썼는지 색출해야 한다며 아이들을 하나하나 면담하는 등 그 작은 학교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사실 교장선생님만 나를 괴롭힌 게 아니었다. 교장선생님이 그러하니 동료 교사들까지 어떻게 하면 나의 잘못을 보고 못해 안달이 난 듯싶었다. 그 후 나는 왜 이런 대우를 받고 이곳에 있어야 하나 나 스스로 묻곤 했다. 바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가 싫다고 다시 돌아간다면 또 가정 내 싸움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가정은 필시 깨질 것 자명했기에 교장선생님이나 그 외 선생님들이 싫어한다고 하더라고 끝까지 버텨야 했다. 한 번은 과학실에 근무하고 있는데 청소를 하는 아이가 내가 자기 몸을 만졌다며 허위신고를 해서 난리가 난 적 있었다. 그 아이는 평소에 내가 좋다며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 아이였다. 내가 하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그날은 내가 평가 점수를 박하게 줬다며 와서 따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신고를 한 것이다. 그 후 또다시 시작된 교장선생님의 호출 이젠 나를 성폭행 범으로 몰기까지 했다. 교사로서 성과 관련된 사안은 그 소문만으로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다행히 보건 선생님께서 나와 그 아이를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오해를 풀었지만 내가 그동안 받은 누명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시골학교에서 버틴 5년을 끝으로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학교로 전근하려고 하는데 그날 교장선생님은 퇴임식을 하며 참석한 나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며 이야기했다. 나도 괜찮다며 헤어졌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사실 온몸이 떨리고 괜찮지 않다. 수업으로 괴롭혀, 성폭행했다고 괴롭혀, 사소한 일도 크게 만들어 괴롭혀, 교육청에 나에 대한 비난의 진정서를 계속 제출해 등등 차마 모두 글로 남기기 어려운 일도 많았다. 그런데 세상은 참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괴롭히던 교장선생님도 퇴임을 하고 가정이 어려워졌는지 다시 기간제 교사로 돌아왔다고 하니 마음 한편이 오히려 아리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같은 교육 공무원으로서 가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의 심정이 어떨지 느낌으로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을 이유 없이 괴롭히면 본인도 그만큼 경제적으로 못 사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