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내가 군대시절의 이야기이다. 군시절 이야기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마치 내가 글을 쓰기 위해 군대를 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나는 두 달간 논산훈련소에서 기본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아 제대할 때까지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내부반 옆이 바로 PX였다. 졸병 때는 PX를 갈 수가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부대 내규라서 선임이 신병을 데리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신병이 마음대로 PX 같은 신성한 곳에는 갈 수 없는 체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제도인데 혹시 모를 신병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한 내규라는 점에서 누구나 이 규칙을 지켜야 했다.
아침마다 인원 점검을 위한 점호를 받는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모두들 건물 앞에 나와 인원점검을 하고 중대장으로부터 훈화를 아주 짧게 듣거나 아니면 인원 파악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서서 중대장이 무슨 말을 하나 귀를 기울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 중대장은 사회성이 부족한 분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나이 들어보니 알 것 같다.
"오늘 날씨도 쾌청하고 아침부터 까치가 울더니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부대장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 유리창이 터지더니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펑"
불은 우리 내무실 옆 PX 유리창에서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모두들 갑자기 얼어붙은 거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성인 남자 70명이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불길은 더 퍼져나가는 듯싶었다. 누군가 내무실에 보관된 총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했다. 평소에 매일처럼 다니던 내무실인데 나도 총을 가지러 들어가려고 하니 정말 검은 연기가 벽처럼 우리를 막아섰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막아서는 것처럼 검은 연기는 섬뜩했다. 다행히 용감한 몇 명이 들어가 방독면을 착용하고 차례차례 총을 갖고 나왔다. 나는 뒤에서 총을 운반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았고 그렇게 70명이 여러 모양의 물통을 구해 어떻게든 불을 끄기 위해 방황하는 사이 신고를 받은 동네 119 대원 한분이 소방차를 슬슬 끌고 와서 눈 깜짝할 사이에 소방대포를 쏴서 그 맹렬했던 불을 잡을 수 있었다. 70명이서 그 불을 끄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소용없던 것이 119 대원 1명이 끄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으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날 이후 우리의 손에는 모두 수세미와 뽕뽕이 지급되었고 그 검은 연기가 지나간 자리는 온통 검게 색칠이 되어 벽이며 바닥이며 모두 닦아 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을 검은 때를 베껴내며 PX에서 이번에 왜 불이 났는지 자초지종을 소문으로 들을 수 있었다. PX에 근무하는 일병이 여자친구가 보낸 편지가 문제가 된 듯싶었다. 사회 있을 때 사귄 여자친구가 1년 정도 떨어져 지내다 보니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고 이제 이별을 해야겠다는 편지를 받은 것이다. 상심한 일병은 그 편지를 찢어 곱게 버리면 되는데 감성적 이게도 라이터로 불을 붙여 쓰레기 통에 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침 점호가 있다 보니 쓰레기통을 확인 못하고 PX를 나온 모양이다. 그러니 그 불이 금세 PX를 집어삼켰고 PX에 있던 많은 물건들이며 부탄가스들이 동시에 터지며 그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 후 문제의 일병은 군기교육대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후 무슨 환자처럼 새 하얗게 변해 세상을 통달한 모습으로 몇 달 뒤 돌아왔고 본인이 근무하는 PX를 모두 태웠기에 그 피해 복구금은 일병의 부모님께서 오셔서 모두 변상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90년 대 중반 2천만 원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따지면 6천만 원 이상의 금액이었다. 이 모든 게 그 여자친구의 편지 한 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대원 전부 벽을 뽕뽕 칠하며 닦으면서 이런 말이 오갔다. 그 당시 우리 중대장의 말 "아침부터 까치가 울더니 좋은 소식이 있을 모양이다."
그 후 우리 부대원 사이에서는 '까치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까치냐'고가 유행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