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인복이 없는 축에 속한다. 근무하는 곳마다 부딪친다고 해야 하나 관리자들과 싸움이 일어나 어느 때는 싸우기도 어느 때는 견디기도 하면서 근무한 지 20년이 흘렀다. 과연 좋았던 관리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해 전쟁과 같은 직장생활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싸움을 좋아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거의 일방적인 참패에 가깝다. 싸워도 진 것이고 견디는 것도 어차피 진 것이다. 그만큼 우리네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그동안 싸웠던, 견뎠던 간에 나의 아이덴티티가 생성되어 지금은 관리자들과 싸우거나 견디는 일이 없는 게 정말 고마울 뿐이다. 소문이 났나?
몇 년 전에 어느 날 문뜩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 있나?"였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당연히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내가 살아온 인생을 쭈욱 머릿속으로 나열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잘해준 사람 누구였을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은 군대 시절 김 소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우리 부대에 왔는데 키가 작고 말수가 적었다. 그냥 조용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내무반 중에 바로 밑에 후임이 지프차 운전병이었다. 그는 가끔 운행을 갔다가 몰래 술을 사 와 우리를 즐겁게 해주곤 했다. 이제 그 후임도 병장이 되어 더 이상 지프차 운전은 안 하고 아주 신참을 지프차 운전병으로 부대 밖 길과 지프차 운전법 등 기술을 이전 해주었다. 그날도 신참이 운행을 나간다기에 그당시 분대장인 내가 "가는 길이 시간 되면 술좀 사와"라고 얘기했다. 그게 불법인 줄 알면서도 나도 그 사회에 속하다 보니 아무 거리낌 없이 신참인 후임에게 이런 얘기를 하였다. 그런데 그날 하필 그 지프차 후임이 술을 사 오다 딱 걸린 것이다. 내 바로 밑에 후임은 서울사람이라 그런지 눈치가 빨라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는데 아직 신입은 일도 서툰 데다 술까지 사 오는 일을 시키니 얼마나 떨렸을지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나는 끝내 끌려가 매우 거친 중사에게 걸려 얼차려와 추궁을 받게 되었다."야! 조 병장, 네가 시킨 거지?",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나는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얘기했다. 왜냐하면 내가 술을 사 오라는 말을 한 것을 아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이 확대되어 그 후임에게 술 심부름을 시킨 다른 내무반의 병장도 있었던 것이다. 왜 다른 내무반이 우리 지프차 후임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는 건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사실 우리 부대 운전병들은 각 내무반으로 훈련이 있을 때 파견 지원을 가기 때문에 다른 내무반 사람들과 교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도 신입 운전병일 때 다른 내무반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때까지도 내가 술 심부름을 시킨 것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끝내 다른 내무반을 찾아가 술 심부름을 시킨 병장을 때리게 되었다. 그 순간 우리 부대는 난리가 났다. 병장끼리의 싸움이라. 전 부대원들이 달려들어 나와 그 병장을 뜯어말렸고 끝내 이 소식이 윗선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 하필 김 소위가 당직근무를 서고 있을 때였다. 나와 그 병장이 끌려가 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김 소위는 나와 그 병장의 이야기를 들은 후.
"조병장, 영창 갈래?" 김 소위가 나를 보고 얘기했다. 사실 영창 간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군대 내의 구타는 영창 가는 게 당연했다.
"... 예" 나는 아무 말 없이 순순히 나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맞은 병장이 "아닙니다. 이건 모두 제 잘못입니다!" 나는 놀라서 그 친구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의 충혈된 눈에서 진심을 보았다. 사실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인데 모두 자기가 뒤집어쓰겠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봐도 그 친구는 남자 중에 상남자였다.
"이 짜식들이 나가서 둘이 마음 풀어" 김 소위는 그날 밤 나의 영창 행을 조용히 눈감아 줬다. 그날 당직을 다른 간부가 섰다면 나는 꼼짝없이 군대 내 구타로 영창으로 가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나와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사과했다. "내가 잘 알아보지 않고 때린거 정말 미안해. 근데 너 정말 남자더라."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피식 웃으며 자기 내무반으로 갔다. 그리고 그날 그 난리 같던 시간들이 지나고 잠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술사 오라고 얘기했던 게 그제야 기억이 났다. 그게 왜 하필 그때서야 기억에 났는지 이미 일을 모두 벌어지고 말았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에게 이유 없이 잘해준 사람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인 듯싶다. 요즘 컴퓨터 실의 리모델을 맡아 일을 하다 보니 리모델링 업자에게만 맡길 수 없어 직접 일일이 챙겨야 할게 많았다. 특히, 컴퓨터 실의 특성상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았다. 쓰던 컴퓨터를 빼내고 책상을 옮기니 각종 껌 자국에 아이들은 마이쭈를 먹고 왜 바닥에 버렸을까? 그 엄청난 자국들이 세월의 흔적인지 바닥과 딱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끝내 같이 근무하는 실무사에게 부탁을 했다. 실무사란 몇 해 전부터 무기계약직으로 바뀌었는데 교사나 행정실 직원보다도 처우가 나쁘다. 그런데 나의 부탁을 받은 실무사는 나와 같이 즐겁게 그 껌 자국을 떼내고 오래된 책상에 먼지를 물티슈로 모두 닦아냈다. 요즘 코로나로 새롭게 나온 항균 물티슈는 알코올이 함유되어 청소할 때 찌든 때를 닦아내는데 이만한 게 없었다. 같이 청소를 하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분은 정말 즐겁게 일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같이 청소를 하고 깨끗해진 컴퓨터실을 바라보며 따뜻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니 참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 알았다. 행복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예전부터 그 분과 얘기를 나눠보면 참 마음이 넓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같이 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모든 실무사가 이분 같지 않다. 몇 해 전 같이 근무했던 실무사는 사사건건 나와 트러블이 났다. 내가 "제가 바빠서 그런데 이것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이건 제 일이 아닌데요"라며 쌀쌀맞게 얘기를 하곤 했다. 나는 이상하다 싶어 작년 공문을 찾아보니 분명 그 실무사가 그 업무의 일을 도와줬다. 그래서 내가 그 부분을 얘기하니 "그때는 담당자가 달랐잖아요"라는 것이다. 즉, 작년 맡은 담당자는 자기 마음에 들어 도와줬고 올해 내가 담당자 일 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건 뭐지?' 싶었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사람과는 친해지지 못하고 말도 안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후 쌀쌀한 그 사람과는 얼굴만 마주쳐도 마음이 상하고 불편했다.
이렇듯 좋은 사람은 드물고 만나기 참 쉽지 않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그럼 방법이 없지 않은가?" 할 수 있지만 사실 하나가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신사임당"이라는 유명한 유튜버가 지금 아주 핫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걸 우연히 봤다. 그중 한 유명한 분께서 "운이 좋아지는 방법은 두 가지 있습니다.", "예! 무엇인가?" 신사임당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사실 나도 똑같은 심정으로 화면을 보았다.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까지 내가 얘기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맞아!"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신사임당도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운이 좋아지는 다른 하나는 자연과 함께 하는 겁니다"
나는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휙 하고 지나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워도 좋은 자연과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좋은 자연도 좋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기분을 풀어준다. 몇 해 전 혼자서 작은 학교에 근무할 때 밤마다 정말 외로웠다. 그래서 그 지역의 아는 선배, 동기, 후배에게 전화 걸어 만나자고 해서 같이 저녁도 먹곤 이야기도 나눴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나를 피하는 건 아닌데 자주 전화하는 내가 괜히 미안해졌다. 결국 어느 날은 내가 외롭다고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만났다가 오히려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짐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뭐든지 과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후 차라리 퇴근하면 조용히 혼자 학교근처 동네를 한 바퀴 걷게 되었다. 시골 학교니 주위의 풍경이 얼마나 좋은지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거 같았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은 좋은 자연과의 시간도 함께 하길 진심을 다해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