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용서

by 정수TV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기억이 나서 훑어보니 군대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그때의 추억이 필요한 시점인 듯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은 솔직히 너무도 참담하다. 특히,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면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다. 저번주 어느 아이들이 나의 얼굴에 엉덩이를 갖다 대며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외면하였는데 그 아이들의 행동은 점점 대범하여 나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업을 방해하였다. 나는 뒤로 나가 서있으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뒤에서도 서로 발차기를 하며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OO, 씹OO 내 좆같아서 못해먹겠다. 씨O!"

정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끝내 학부모들에게 전화 걸어 죄송했다고 사과했고 아이들에게도 사과할 예정이다. 주말에 조용히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평소처럼 넘어가도 될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그 당시 내가 왜 조금 더 참지 못한 것일까?

지금 학교로 옮기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 전문가 선생님을 만나 한참 상담이 무르익었을 때라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못 고치세요" 나는 내가 화가 나면 아이들에게 욕을 해서 그것을 상담받고 싶었고 또 고치고 싶었는데 전문 상담사는 절대 못 고친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나이가 4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는데 화나면 욕하는 성격을 고치기란 오랜 상담경력을 통해 모두 실패했고 나 또한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그 후 욕하는 습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을 접었고 그냥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난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욕을 동반하고 있었다. 문제는 화가 안 나면 욕 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 왜 자꾸 화가 나는 것일까? 사실 그 상담을 통해 이것을 풀 수 있는 열쇠를 하나 받은 게 있다. 바로 나를 용서한 사람을 떠올리라는 점이다. 보통은 부모님인데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부모님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또한 이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도 조금의 잘못이 있어도 바로 부모님께서 혼내시곤 하신다. 그게 얼마나 싫었던지 결혼하며 같이 살 수도 있었는데 일부러 분가를 했다. 결혼 후에도 나에게 작은 일로 자꾸만 지적하고 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전문 상담을 받으며 군대시절에 작은 오해로 후임을 때린 기억을 떠올렸다. 끝내 당직사관이었던 김소위에게 불려 가 "조병장, 너 영창갈래?"라고 했을 때 옆에서 나에게 맞은 후임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해서 맞은 겁니다. 조병장님은 잘못이 없습니다."라며 오히려 나를 두둔해 준 경험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완전히 오해한 부분이 있었고 남은 군생활 동안 항상 그 부분을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이 부분을 잘 기억해서 아이들이 잘못이 있을 때 적용하면 화날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내 비록 지금까지 부모님께는 용서받지 못해 남들에게도 모질게 대할지라도 그때 그 후임을 생각해서 나도 약간의 잘못이 있는 아이들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번 추석 긴 연휴 남들은 친구들도 만나고 친척들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욕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한 것도 있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이 사실 그랬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대학에 진학한 게 아니라 시험점수와 부모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주일 만에 공대에서 교대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 후 대학생활 내내 방황을 했다. 대학 시절 배우는 과목 자체가 재미없고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냥 시간만 보내는 그런 생활을 하니 전혀 재미가 없었다. 오직 동아리 활동에 만 집중하며 지냈고 연애하는 생활에 젖었다.

그렇게 교사가 되고 보니 지금이 이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의 심한 장난, 그로 인해 지도과정에서의 불상사, 학부모의 거친 항의 등 계속 그 상황이 악순환될 뿐이었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했고 모두 받아 들어졌기에 그만두는 정도의 잘못은 저지르지 않은 거 같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어 잘 극복하는 듯싶다. 그것마저 없다면 미련 없이 떠나도 이상할게 아니었다.

추석 연휴 많은 날과 시간을 보내며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비록 스포트라이트 받는 직업은 아닐지라도, 전문직처럼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닐지라도, 못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좋지 못한 말은 듣는 직업일지라도, 묵묵히 걸어가야겠다고. 추석이라 많지 않지만 한 달에 한번 받는 봉급으로 아이들 좋아하는 옷을 사줬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니 알 것 같다. 행복은 그리 많은 돈이 드는 게 아니라고. 나의 좌충우돌한 경험이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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