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땅을 물려줄 수 없게 한다면

안도현, '땅'

by 인문학 이야기꾼

-안도현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땅에 벼도 심고 보리도 심고 콩도 심을 수 있습니다. 땅에 집을 짓고 학교를 짓고 운동장도 만들 수 있습니다. 땅에 꽃을 심어 꽃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도 있습니다. 땅에 세월을 심었다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땅은 먹을거리를 주기도 하고, 땅은 문명을 이루어 그 문명이 후대에 이어지게도 합니다. 땅은 감미로운 정서를 충만하게도 하지만 땅은 부(富)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화자는 자신에게 땅이 있다면 나팔꽃을 심겠다고 합니다. 꽃이 피면 감미로운 나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들으려고 합니다. 나팔꽃 덩굴이 감미로운 소리와 기쁜 소식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해 하늘 속으로 손을 뻗는 모습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애쓰는 나팔꽃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삶을 돌아봅니다. 나팔꽃은 자신의 것은 나누어주기 위해 애쓰며 손을 내미는데, 우리는 자신의 것을 그저 움켜쥐려고만 합니다. 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탐욕이 내것을 움켜쥐려고 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화자는 땅이 있다면 자식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나팔꽃의 베푸는 마음을 닮지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자식에게는 땅 대신 꽃씨를 물려주려고 합니다. 꽃씨가 싹을 틔우고 덩굴을 뻗어 저 멀리까지 꽃을 피우듯,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씨앗을 세상에 뿌릴 수 있도록 자식에게는 꽃씨를 주려고 합니다. 덩굴을 하늘 속으로 뻗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피운 꽃을 볼 수 있도록 애쓰는 나팔꽃을 자식이 닮도록 하고 싶습니다.


‘땅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을 법으로 만들어 시행하면 안 되겠지요? 땅을 많이 가진 자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겠지요? 땅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가진 자들의 논리에 동조하겠지요. ‘땅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문학적 상상만으로도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날까지는 자신의 땅을 소유하고 아파트를 여러 채 소유하고 은행 계좌를 거느리고 땅땅거리며 살더라도 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땅도 아파트도 빌딩도 은행 계좌도 모두 국가로 귀속된다면 땅에 돈을 심기보다 나팔꽃을 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요. 그러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 나팔꽃의 감미로운 소리를 닮으려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요. 내 것을 움켜쥐기보다 내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많아지겠지요.


땅에서 나팔꽃의 감미로운 나팔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식에게 땅을 물려주기보다 나팔꽃 꽃씨를 물려주는 것이 이 세상을 밝고 맑고 감미롭게 만드는 길임을 이 시를 통해 알게 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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