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있기에 살 만한 세상

안도현, '갈등'

by 인문학 이야기꾼

갈등

-안도현


바람은 불지요.

길을 열자고 같이 나섰던 동무들은

얼음장 꺼지듯 가라앉아 소식 없지요.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언덕배기 빈 터에 쑥 돋듯 하지요.

저 연록 물오른 바람난 실버들 가지처럼

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지요.

나도 내 존재를 어쩌지 못해서요.

이래서는 안 돼, 안 돼 하면서

내 몸은 자꾸 꼬여가지요


설상가상(雪上加霜)은 눈 위에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연거푸 일어날 때 사용하는 말이죠. 화자는 현재 설상가상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습니다. 함께 길을 열자고 한 동무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이것만 해도 힘든데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이 미칠 듯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이 겹쳐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소망하는 바가 있고,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그 소망 실현을 방해하는 현실이 있게 마련입니다. 화자는 현재 바람이 잠잠하기를 소망하는데 현실은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소식이 감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이라도 들지 않아야 하는데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은 빈터에 쑥 돋듯이 돋아납니다. 자신이 존재의 주인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자신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자신이 소망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한얼 작가의 『바람이 불지 않으면』이라는 그림 동화책이 있습니다. 예쁜 모자를 쓴 소녀 봄이가 걸어가는데 바람이 불어 봄이의 모자를 날려버립니다. 모자를 잡으려고 달려가다가 화가 난 봄이는 ‘바람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람이 멈춥니다. 그 순간 곰들이 날리던 연이 멈추고, 풍차 방앗간이 멈추고, 배가 멈춥니다. 봄이가 바람에게 사과를 합니다. ‘바람아, 미안해. 네가 필요해’


비를 간절하게 바라는 농부도 있고, 해가 쨍쨍 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바람이 잠잠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구가 소식을 수시로 전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신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만 와도 살 수가 없고 해만 쨍쨍 나도 살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오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닐지라도 비를 몹시 바라는 사람이 있기에 그를 위해서 비를 반갑게 맞이하면 되겠지요. 해가 쨍쨍 나는 날은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닐지라도 해를 몹시 바라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해를 반갑게 맞이하면 되겠지요.

우리는 누구나 갈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나와 남의 생각이 다르니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요. 같은 모양과 색깔도 다르게 보이고 같은 사건도 다르게 보이는데, 하물며 호불호(好不好), 선악(善惡), 이해(利害)는 개인의 입장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 않겠는지요. 내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내가 손해를 본다면 누군가는 이익을 보는 것이 세상 이치이죠. 제로섬(zero-sum)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절묘하게 균형점을 잡으며 운행되고 있습니다.


세상일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갈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내 생각을 바꾸기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리움이라는 서정적 정서도 생겨나고, 잘 풀리지 않은 일이 있기에 갈등이란 서사적 사건도 생겨납니다. 그렇게 보면 갈등이 있기에 세상은 살 만하고, 갈등이 있기에 자신의 존재 가치가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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