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잘 모르지만 이 음악들은 알 수 있다
수성 화성 금성 지구 해왕성 천왕성 토성 목성
십일 년 동안이나 머물며 세 아이를 낳아 키웠던 미국의 메릴랜드에는 볼티모어라는 큰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는 록히드 마틴(아는 사람은 아는 미국의 군수업체)이 큰돈을 기부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과학관이 있다. 아내는 일 나가고 아이들은 모두 방학이라 집에 머무는 극한의 상황이 닥치면 시간 때우러 자주 놀러 갔던 곳이다.
과학관들은 모두 그래야 하는 걸까? 이곳도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것은 거대한 공룡의 뼈다귀이다. 비싼 돈 주고 구입하거나 만든 것일 테니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뽐내는 것 정도는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낡았지만 아이들이 이것저것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을 지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아주 짧게 우주관이 나온다. 사실상 나의 관심사는 우주뿐인데 우주에 대한 내용이 너무 빈약해서 불만이었다.
그 우주관에는 구멍이 8개인가 9개 뚫려있고 거기에 순서에 맞게 태양계의 행성의 이름이 쓰인 블록을 끼워 넣는 판이 있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있었다. 이유는 태양계의 행성들을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었기 때문. 단순 순서는 아는 사람이 좀 있지만(한국 사람은 모두 알고 미국인은 관심 있는 사람만 알고 있다) 작은 순서대로는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 위에 언급한 순서가 정답인데, 두세 번 헤맨 끝에 나는 정답을 완성했고 팡파르 소리를 들었지만, 자동으로 리셋되어버린 블록들을 두고 우리 다음에 온 백인 모자는 완전히 헤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도와줘도 되겠냐고 물어본 후, 정답을 알려주자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우주. 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이 길을 잃고 둥둥 떠다닐 때는 숨이 막힐 정도로 막막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보통은 온갖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지의 공간으로 다가와서 많은 음악들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여러 가지를 상상해 보라고 목청껏 노래하던 레논 형님도 빠질 수 없다.
https://youtu.be/90M60PzmxEE
상상할 수 없이 빠른 빛이 억년 단위로 움직여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조라는 천문학적 단위도 그 압도적 크기를 헤아리기에 턱도 없이 부족한 우주를 표현하는 음악들은 기묘한 화성들과 몽환적 멜로디로 가득 차곤 한다.
https://youtu.be/iYYRH4apXDo
만약에 화성에서 작은 미생물이라도 발견되거나 외계에서 지구에 방문한 지적 생물체가 있는 것이 확인이라도 된다면 어떤 음악들이 만들어질지 궁금해진다.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지구인이 아닌 다른 지적 생명체에 의해 클래식 음악이 연주된다면 그 첫곡은 어떤 곡이 될까?
그 답은 보이저 1, 2호가 알고 있을 것 같다. 1977년에 발사되어 아직도 태양 반대편으로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는 이 두 우주선은 아직도 현역으로 지구와 교신하며 사진을 비롯한 많은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다. 당시로서는 가장 좋은 것이었겠지만 지금 휴대폰에 달려있는 것보다도 뒤쳐지는 화질의 카메라는 아직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고 있고. 나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보이저의 실시간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voyager.jpl.nasa.gov/mission/status/#where_are_they_now
재미있는 것은 거기에 지구의 소리를 싣기 위해 구리로 만들어 금을 입힌 골든 레코드와 그 플레이어가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공기가 있는 환경에 거주하는 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는 외계인이 보이저를 발견했을 경우 지구의 언어들과 음악들을 들어보라는 것인데, 실상 빛조차도 몇 년씩 여행해야 다음 별을 만나게 되는 넓은 우주에서 조그마한 우주선이 누군가에게 발견될 확률이 얼마 정도인지 생각해 보면 정말 정보의 전달보다는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들을 모아놓았다는 데에서 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약 45년 전 미국의 지식인들은 지구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어떤 곡을 뽑았을까. 약 90분가량의 곡들이 들어가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클래식 위주로 살펴보겠다.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첫곡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의 1악장이다.
https://youtu.be/olLi5RtE_6M
바흐의 이름값답게 그의 곡들은 더 담겨 있다.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의 가보트.
https://youtu.be/3TlWfPS4XI0
이 곡들을 칼 세이건 본인이 직접 선곡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흐의 평균율 프렐류드와 푸가의 연주자로 글렌 굴드를 선택한 걸로 보아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골든 레코드에 담긴 세 번째 바흐의 곡은 건반을 위한 평균율 2권의 1번이다.
https://youtu.be/HSDCnKN3Sq4
모차르트의 곡도 한 곡 담겨 있다. 뭐 나쁜 선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지구인들이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인데. 오페라 마적 중에서 밤의 여왕 아리아.
https://youtu.be/S5_d6_N7d3k
악성 베토벤도 빠질 수 없다. 두 곡이 실려 있는데 첫 곡은 ‘운명’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불리는 교향곡 5번의 1악장이다.
https://youtu.be/s8Hbjl90pD4
베토벤의 두 번째 곡은 그의 죽음 직전에 쓰인 곡들 중 하나인 현악 4중주 13번 작품번호 130 중 카바티나라고 불리는 5악장이다. 병들고 힘들었던 작곡가의 상태와는 달리 매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곡이다.
https://youtu.be/LFp_NuSw9B8
마지막 클래식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어떤 외계인이 언젠가 이 곡을 듣게 된다면, 작게는 지구의 사계절에 대해 큰 오해를 하거나(봄의 날씨는 굉장히 괴롭다거나 하는), 아니면 계획에 없던 지구 침략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https://youtu.be/0WX3hFFyIdE
골든 레코드, 보이저 호 등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본, 중국의 음악은 들어 있는데 한국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섭섭하다. 보이저가 망망 우주를 몇십억 년 여행해서 태양계도 지구도 모두 사라진 후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면 이 우주 어딘가에서 음악들이 부활해서 연주될 텐데 거기에 한국음악이 없다는 것이.
힘을 내요 B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