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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Aug 07. 2021

<오자크> 여자 현장 요원은 어디에

여성 FBI의 제한된 세계

※ 스포일러 경고

<오자크> <마인드헌터>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오자크>(2017~)의 로이 페티는 집을 떠나 몇 달째 신분을 위장하고 모텔에 머문다. 표적은 멕시코 마약 재벌의 돈세탁을 담당하는 재무 컨설턴트 마티 버드인데, 이를 이루기 위해 먼저 주변 인물인 러스 랭모어에게 다가간다. 로이는 러스의 성범죄 전과를 조회할 수 있었던 FBI 요원이자 침착하게 접근한 끝에 신뢰를 형성하고 마침내 러스의 순정을 얻어내는 게이다. 파트너는 있지만(바뀌지만) 아이는 없고,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긴 해도 그게 장기 출장에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로이는 러스를 포섭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최종 작전 수행에는 실패하는데, 그건 이 작품의 주인공이 법 집행관 로이가 아니라 그보다 머리 좋은 회계 범죄자 마티이기 때문이다. 마티가 머리를 쓸 때 로이는 감정을 쓰고 폭력을 쓴다. 그로 인해 로이는 정체가 들통나고 마티의 역공을 맞아 결국 고된 출장 업무는 무용한 것이 되었다. 커리어는 박살 났지만, 그래도 로이는 파견지에서 작전을 펼치고 실패할 기회가 있는 남자 FBI 요원이다.



<마인드헌터>(2017~)의 빌 텐치와 홀든 포드는 1970년대에 활약한 FBI 요원으로, 수없이 비행기와 렌터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일과다. 그들의 업무와 역할은 계속해서 변한다. 지역 경찰에게 FBI의 수사 실무를 강연하는 교육자였다가, 미국 전 지역의 연쇄 살인범을 인터뷰해 프로파일링하는 연구자였다가, 관련 수사에 투입되는 현장 요원이 된다. 빌 텐치에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가 있다. 빌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상담실로 직행할 만큼 애를 쓰긴 해도, 치료가 필요한 아이와 거의 매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배우자와 공정한 역할 분담을 하지 못한다. 결국 아내와 아이는 집안일보다 바깥일이 더 급한 빌을 떠났지만, 빌은 양육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일을 관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혼이고 연애에 별 재능이 없는 그의 파트너 홀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계속 일할 수 있고 미국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연방수사국 남성 요원이다.


미국은 개별 주마다 자치성이 강한 연방국가지만 때에 따라 전 지역을 통합 관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약 수송처럼 전역에서 촘촘하게 계획되는 범죄와 지역 경찰 관할 구역 바깥으로 도주할 수 있는 용의자 관리에 있어서 이런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 수사물에서 흔히 접하는 FBI는 연방 범죄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조사하는 법 집행 기관으로, 56개 주요 도시에 현장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오자크>의 로이도, <마인드헌터>의 빌과 홀든도 본거지를 떠나 일한다. 


장거리 출장 근무는 여성도 할 수 있으니 <지정생존자>(2016~)의 한나 웰스(매기 큐, 미혼 상태)나 영화 <시카리오>(2015~)의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 이혼 상태)처럼 여성 FBI 요원 캐릭터도 당연히 있다. 그런데 이 잦은 출장 업무에 출산이나 입양 등 양육 문제가 개입하면 <마인드헌터>의 빌처럼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풍성해진다. 반대로 이야기가 사라진다. 그들과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기혼 유자녀 여성 FBI 요원은 너무 드물다. 지역 경찰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긴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2019, 미국)의 카렌, <깊은 숲에서>(2017~, 프랑스)의 비르지니, <마르첼라>(2016~, 영국)의 마르첼라, <종이의 집>(2017~, 스페인)의 라켈처럼 아이가 있는 각국의 여성 경찰이 역동적인 현장 근무에 투입될 수는 있고 퇴근을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거지에서 한참 벗어나 보다 복잡하고 장기적인 작전을 수행하는, 아이가 있는 여성 FBI 요원 캐릭터를 찾으려면 애를 써야 한다.



임신한 FBI 요원은 있었다. <오자크>의 마야 밀러는 주인공 마티의 돈세탁 정황을 포착하기 위해 오자크로 파견된 법 회계학 전문가다. 마야에 따르면 먼저 다녀간 FBI 요원 로이의 수사 방식은 너무 “교과서적”이다. 목표에 집착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난폭하게 굴다가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마야는 이와 다른 전략으로 표적인 마티의 지능과 소시민적 양심을 높이 사고, 기존의 혐의를 인정하고 18개월을 복역한 뒤에 일반 시민 자격으로 FBI를 도와 제도 개선에 힘을 쓰라고 권한다. 마야는 마티가 이런 일로 자부심과 성취욕을 얻을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협상하려는 것이고, 마티 또한 이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다. 둘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 현장은 마티가 운영하는 카지노로, 똑똑한 마티가 증거 하나 안 흘리고 어마어마한 돈을 굴리는 범죄 현장인데 그만큼 똑똑한 마야가 감시하고 있으니 마티는 더 철저하게 범행을 숨겨야 한다. 마야는 임신을 하면 “더럽게 힘들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마야는 총기류를 소지하고 용의자의 신체를 통제해 수갑을 채우는 수사물 속 전형적인 FBI 특수 요원이 아니다. 영장을 받은 카지노에 한 달간 출근해 책상에 앉아 장부를 검토하는 게 일인 이른바 화이트칼라다.


여기서도 임신에 대한 고정된 시선이 느껴진다. 작품이 일 잘하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면서 임신 설정을 얹고 이로 인한 생물학적인 변화를 감안해 육체적 활동이 제한된 업무를 배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FBI 실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의도한 근무 환경에 마야를 끼워 넣은 것이다. 공식 홈페이지fbijobs.gov가 제공하는 채용 정보에 따르면 FBI 인력은 수사물에서 자주 접하는 특수 요원special agents(법 집행) 말고도 정보 분석가intelligence analysts(데이터 관리), 감시원surveillance(증거 수집), 법의학 회계사forensic accountants(금융 범죄 추적), 언어 분석가language analysts(다문화 사회 이해)로 구성된다. 여기서 법의학 회계사는 “특수 요원과 협력하여 자금의 출처를 추적하고 이를 범죄 활동 및 국가 안보 문제에 연결함으로써 미국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업무”를 하는데, 딱 <오자크>의 마야가 하는 일이다. 이들은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췄을 때 유리하게 채용되고, 미 전역 56개 현장 사무소와 워싱턴 DC에 있는 FBI 본부에서 주로 일한다. 마야 같은 지역 카지노 파견 근무 사례는 다소 예외적이지만 그 파견지는 FBI 영장을 받은 곳이고 근무 기간은 영장의 시효를 따른다. 따라서 <오자크>의 특수 요원 로이의 출장과 법의학 회계사 마야의 출장은 같지 않다. 로이는 거의 언제나 총기를 소지하고 야외 현장에서 뛰면서 정보원이나 용의자를 겁박할 수 있지만, 마야는 어디로 가든 실내에서 모니터와 서류를 보는 게 일이다.


2019년 어느 시점의 FBI의 고용 성별 통계를 보면 전체 남성 직원은 21,215명(56%), 여성 직원은 16,770명(44%)이다. 이들 가운데 특수 요원은 남성 10,900명(80%)과 여성 2,726명(20%)으로 격차가 훨씬 크다. 즉 남자 직원 대다수가 수사물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눈에 보이는 다이내믹한 일을 하고, 그렇게 일하는 여성은 20%일 뿐이니 대부분 상근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통번역을 한다는 뜻이 된다. FBI는 성별 말고도 인종 불균형 문제가 지적되곤 하는데(2019년 백인 고용률 74%), 한 내부 고발자가 말한다. “FBI는 꽤 순응적인 조직이라 비판하면 배척당한다. 다 백인이고 다 남성인 사회에서 나오는 형제애 같다.” 사실 이는 결과론이다. 공식적인 채용에 있어서 문제가 될 만한 성별 차별은 없기 때문이다. 특수 요원 지원자 및 연수생은 체력 테스트(제한 시간 내 윗몸일으키기, 달리기, 풀업 등)를 치르지만 생리적 차이를 고려해 성별에 따라 다른 채점 기준을 적용한다. 채용 후엔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배려해 의료 휴가법의 절차를 따라 병가 말고도 출산이나 입양 같은 위급 상황에 대해 12주의 무급 휴가를 허용하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주 16~32시간 범위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제도와 규정이 현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성은 실제로 덜 채용되고, 현장직으로는 현격하게 덜 채용된다는 것이다. 출산을 선택하고 배우자보다 육아에 더 큰 압박을 느끼는 여성이 더 많은 현실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문제다.


물론 이것은 채용 문제가 아니라 지원 문제일 수 있다. 직업 선택에는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강력한 성 역할 고정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찰관policeman과 소방관fireman 같은 국가직은 영어 명칭에서부터 기준 성별이 남성이다(‘police officer’ ‘firefighter’ 같은 성중립적인 표현도 물론 있다). 1908년 발족해 1935년 개칭된 FBI는 1972년부터 공식적으로 여성 특수 요원의 지원을 ‘허용’했다. 여성이 특수 요원이 될 수 있다고 뒤늦게나마 인지한 것처럼 남성도 가사와 양육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데, 제도가 나름의 노력을 한다고는 해도 그건 불이익에 대한 최소한의 저지선 역할을 할 뿐이지 사회문화적으로 고착된 집단적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한다. 현직 여성 특수 요원이자 채용 담당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제니퍼 바크는 늘 여성 지원자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말한다. “가족을 갖고 개인의 생활을 누리면서 특수 요원으로서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요?” 바크 요원은 “그럼요yes you can”라고 자신했지만 수사물도 언급을 회피하는 기혼 유자녀 여성 FBI의 일과 생활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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