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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Aug 21. 2021

<보디가드> 무슬림은 다 그래?

소수 인종에 대한 단조로운 시각

※ 스포일러 경고

<보디가드>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테러와 대테러     


나디아(안즐리 모힌드라)는 객실 화장실에 숨어서 떨고 있다. 폭탄 조끼를 입고, 누르는 즉시 객차를 날려버릴 끔찍한 버튼 장치를 손에 쥐고서. 


첩보를 입수해 출동한 대테러 전담반은 열차를 세우고 승객을 대피시킨 뒤 표적 사살 준비를 마쳤지만, 제삼의 인물 데이비드 버드(리처드 매든)가 나타나 시야를 가로막고 폭탄 처리반을 불러달라며 성화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연민을 가득 담아 이 테러리스트를 부둥켜안고 설득을 시도하는 중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간절한 대응이긴 해도, 데이비드는 자신이 지금 작전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비번인 날에 아이들과 같이 런던행 열차에 올랐다가 본능적으로 낌새를 읽고 테러를 저지하게 된 그는 특수 경호 분야에 배치된 현직 경사(PS, Police Sergeant)로서 곧 영국 내무 장관의 경호를 맡게 될 참인데, 전 아프가니스탄전 파병 군인이라서 무슬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좀 있으며 아군이든 적군이든 병사로 동원됐다가 몸과 마음이 죽고 다치는 전우들의 비참한 운명도 잘 아는 사람이다.



나디아는 자살 폭탄 테러에 실패한 현행범이다. 데이비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사는 전직 군인이다. 어딘가가 망가진 둘이 만나면서 시작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보디가드>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제시하지만, 그 어떤 위기도 이 도입부만큼 쫄깃하진 않다. 대치하는 두 캐릭터 각각의 감정 상태를 치밀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긴박하고, 그들은 안타깝고 서글프다. 민간인 대상 테러라는 끔찍한 범죄의 미수자인 나디아는 울고 있다. 그는 결코 죽고 죽이기를 원치 않는 테러의 희생양처럼 보인다. 나디아를 발견한 데이비드는 이 위태로운 상황을 침착하고 지혜롭게 제압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건 매뉴얼에 따른 기계적인 협상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스러운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간절한 포옹이자 인간적인 설득이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인간을 구하는 것은 통제된 시스템이 아니라 상처 입은 또 다른 인간이다. 오직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훈련된 대테러 전담반이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이다. 결국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잘 설득하고 나디아가 잘 수용한 덕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둘의 교감이 대등하지는 않았다. 데이비드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낸다. 상대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전직을 밝히고, 상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에 대해서 설명하고 사진까지 보여준다. 상대의 이름을 묻고, 시야에 들어온 남성이 그의 배우자인지를 묻는다. 이때 나디아의 응답은 ‘예/아니오’와 자신의 이름, 눈물과 눈빛으로 읽을 수 있는 두려운 감정뿐이다. 히잡을 두르고 폭탄 조끼를 입은 나디아는 한순간에 기차를 날려버릴 파괴적인 인간 병기이지만, 백인 남성의 뜨겁고 교양 있는 설득 앞에서는 단답형 대답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한없이 수치스럽고 무기력한 소수자가 된다. <보디가드>가 초반에 그리는 나디아는 이렇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수동적으로 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때가 되어 결혼했다가 배우자가 가담한 민족주의적, 반사회적 테러 임무에 인간 폭탄으로 사용되는 억압받는 여성인 것만 같다. 작품은 나디아의 과거를 세밀하게 그리지 않는다. 캐릭터에게 역사를 주지 않는 것으로 무슬림 여성의 인생을 이렇게 통념대로 추측하도록 유도한다.


리즈 테스트     


이런 식의 캐릭터 문법에 제동을 거는 직접적인 질문 세트가 있다. 벡델 테스트에 대한 무슬림 공동체의 대답인 ‘리즈 테스트Riz test’다. 벡델 테스트가 극이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권태로운 방식에 대해 비교적 위트 있게 지적할 때(①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둘 이상인가? ② 그들이 대화하나? ③ 남자 얘기 말고 다른 화제가 있나?), 리즈 테스트는 정색하고 작품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극이 무슬림 캐릭터를 제시할 때, 아래의 다섯 가지 질문을 패스할 수 있는가?


① 테러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②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화를 내는가?
③ 미신적이거나, 문화적으로 뒤처졌거나, 반현대적인가?
④ 서구의 삶에 위협적인가?
⑤ 남성이라면 여성혐오자인가? 여성이라면 남성에게 억압받는가?     


<보디가드>는 첫 에피소드만으로 리즈 테스트가 제시한 기준의 절반 이상을 ‘충족’하는 작품이다. 히잡을 두른 나디아는 폭탄 조끼를 입고 열차에 탑승한 명백한 테러리스트인 동시에, 종교 집단의 광기에 따라 자폭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피해자로 묘사된다. 이때 인종이 같은 나디아의 배우자가 잠깐 스쳐 가는데, 이 부부 사이에는 가부장적인 지배 논리가 작동할 것이라고 쉽게 예측된다. 나디아는 말이 없고, 데이비드는 사랑한다면 이런 일을 결코 시킬 수 없다며 이 끔찍한 상황을 대화로 풀자고 거듭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위계 논리에 따라 무슬림 남성이 테러를 지시하고, 그와 결혼한 무슬림 여성이 목숨을 바쳐 이를 이행한 것으로 해석하게끔 연출한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제시하려면 맥락이 필요하고, 그건 시간이 드는 일이다. 이 섬세한 노력을 포기하고 관습대로 캐릭터를 설계할 때 제작진에게 보장되는 것은 효율이다. <보디가드>가 첫 에피소드를 시작하자마자 리즈 테스트를 직면하는 데 걸린 시간은 12분이다. 



리즈 테스트는 리즈 아메드Riz Ahmed의 연설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로그원> <사운드 오브 메탈> 등에 출연해 할리우드 이력을 쌓은 배우로, 2017년 영국 하원 연단에서 영화의 다양성에 역설했다. “사람들은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고, 내가 보이고 들리는 무언가의 일부이며, 가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표되는 느낌을 원합니다. 그 작업에서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리즈 테스트는 이 뼈아픈 연설을 계기로 삼아 학계의 여러 연구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자이자 영화 애호가인 샤프 초드리Shaf Choudry와 사디아 하비브Sadia Habib가 영화와 TV 시리즈가 재생산하는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돌아볼 수 있도록 제시한 질문이다. 직선적이고 규범적인 이 질문은 구체적으로 (특히 9/11 이후) 무슬림 캐릭터를 향하지만 좀 더 나아가면 백인 중심의 극에서 타 인종이 얼마나 부실하게 표현되는지를 떠올려볼 기회를 준다. 전과 없는 흑인은 많다. 수학 못 하는 아시안도 많다. 우리 모두가 ‘영화처럼’ 살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는 영상 콘텐츠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넓힌다. 이는 경험하지 못한 문화에 다가가는 좋은 방법이지만 사실 위험성도 크다. 몰입도 높은 작품일수록 연출된 세계에 대한 신뢰는 높아지고, 작품이 제공하는 정보(혹은 편견)에 대한 균형적인 판단은 어려워진다. 이것은 작품의 문제이지만 작품이 교정할 수도 있는 문제다. 리즈 아메드의 연설과 이를 규범화한 리즈 테스트는 그 영향력과 책임감을 묻는다. 영국 배우 사지드 바르다Sajid Varda의 언급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대중매체는 정보 전달에 있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특히나 소수자 집단과 접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교육 자료가 될 수 있기에 무슬림은 테러리스트이며 여성혐오자라는 비유를 퍼뜨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영화학자 자흐라 코스로샤히Zahra Khosroshahi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나눈다. “할리우드라는 세계는 대단히 공고하고, 그들이 만드는 작품은 전 세계를 여행한다. 따라서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고 보여줄 책임이 요구된다.”     


허약한 반전     


<보디가드>를 관통하는 주요 긴장 요소는 테러고, 사용되는 주요 무기는 폭탄이다. 그건 시작부터 나디아가 몸에 두르고 나온 전 사회적 위협이다. 이어서 시민 사회를 위해 일하는 공직자들, 이를테면 테러 진압반과 내무 장관 줄리아 몬터규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무기다. 마지막으로 이 폭탄은 주인공 데이비드에게 떨어진다. 이렇게 폭탄을 고루 돌려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는 살린 뒤 결말에 이르러 작품은 묻는다. 이 폭탄을 만든 인간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보디가드>가 제시하는 반전이다.


막판에 나디아는 표정을 싹 바꾸고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가난하고 억압받는 무슬림 여성으로만 여기겠지만 나는 교육받은 엔지니어라고, 지하디스트로서 그 폭탄은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자백으로 이루어진 이 반전은 놀랍긴 한데, 아주 작은 복선이 있긴 했어도 작품이 그 맥락을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리수로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나디아에게 중간은 없었다. 취조가 시작되자 그는 기차에서 발견됐을 때처럼 말도 못 하고 울고 떨면서 고갯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했고, 이 테러 미수범을 수사진은 가여운 아이 다루듯 했다. 작품이 수사진의 입을 빌려 그를 테러의 희생양으로, 배우자에게 배신자 취급을 받고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불쌍한 무슬림 여성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가 나오자 그때서야 나디아는 소수자 여성에 대한 온정적인 차별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메신저로 돌변한다. 비판에는 설득력이 있지만 이를 전하는 캐릭터에게 충분한 개연성을 주지는 않은 것이다. 



<보디가드>는 히잡을 두른 무슬림이 통념대로 억압받는 여성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이 고정관념을 뒤엎고 캐릭터에게 주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디아를 공학적 지식과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테러를 주도한 적극적인 가해자로 규정한다. 방법도 시기도 그리 정교하지가 않다. 이 반전이 충격을 주긴 해도 너무 갑작스러워 연출상의 결함으로 느껴진다는 문제도 있지만, 더 나쁜 문제는 만연한 소수자 고정관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더 나쁘게도,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것을 넘어 확대하는 쪽이다. 나디아에게 양면성을 부여했다 한들 그래 봐야 그는 서구의 삶에 위협을 가한 고약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결국 무슬림은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맹신적이고 야만적이라는 불공정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 작품에 미덕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보디가드>는 구석구석 복잡해서 생생한 캐릭터와 촘촘한 음모가 대기하고 있어 시시각각 긴장하고 집중하게 되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굴곡이 많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밝혀야 할 진실이 있으며 회복해야 할 마음의 병이 있다. 정신은 위태로워도 일은 잘하는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맘ma’am’이다. 배우의 (스코티시) 억양과 발음으로 인해 엄마를 부르는 것처럼 들려 작품의 부가적인 재미 요소가 된 이 호칭은 그가 일터에서 복종해야 할 여성이 많음을 의미한다. 그가 경호한 내무 장관 줄리아가 하는 모든 짓은 적절한 게 하나도 없지만, 그는 권력과 야망이 남성 정치인의 전유물이라는 도식을 제대로 깬다. 데이비드의 직속상관이자 총기를 암거래하는 조직 폭력배에게 뒷돈을 받고 수사 정보를 흘리는 타락한 경찰도 여성이다. 부패한 경찰 권력과 능구렁이 같은 정보부는 중앙행정기관을 조종하기 위해 무고한 이들을 제거하면서까지 추악한 기 싸움을 벌이고, 더러운 두 기관은 희생양으로 데이비드를 낙점한다. 알고 보니 권력 다툼에 사용되고 버려지는 비참한 존재는 나디아가 아니라 데이비드였다. 이것은 <보디가드>가 나디아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 나디아에겐 전개상 확실한 용도가 있었다. 작품이 데이비드의 비극적인 운명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슬림 여성의 서사 전형을 이용한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디가드>는 재미있다. 다만 재미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재미있는 작품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리즈 테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논할 필요가 있다. <보디가드>는 복잡해서 풍성하고, 따라서 각각 이해되거나 단죄할 여지가 있는 개인과 집단의 이야기를 세련된 화법으로 전개하지만 무슬림 사회만은 흑백논리를 따른다. 소수자에 대한 타성적인 시각에는 비판이 필요하고, 리즈 테스트는 그 준거점이 될 수 있다. 제작진은 좀 억울해하는 것 같다. 프로듀서인 제드 머큐리오는 “리즈 테스트가 분석 도구로서 얼마나 유효한지 말하기는 이르다”면서 무슬림의 테러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위협이며 테러에 맞서는 수사팀 리더를 인도계 배우(애시 탄돈)가 연기했다는 점을 들어 비판을 방어하는데, 해당 캐릭터 샤르마 경감은 일은 잘해도 삶과 사회에 대해 말할 기회는 없는 비중 작은 인물이라 적절한 완충이 되지 못한다(게다가 샤르마라는 이름은 무슬림의 이름이 아니라 힌두교도의 이름이다). 테러의 공포는 주류 사회만의 공포가 아니다. 사회가 지켜야 할 구성원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면 그게 바로 차별이고 혐오의 시작이다. 작품 책임자의 이 모자란 응답이야말로 리즈 테스트가 왜 당장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리즈 아메드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작품을 통해 우리를 발견하는 일에 여전히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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