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아줌마의 세상살기
언젠가 너튜브의 한 채널에서 주인공의 하루가 늘 리셋된다는 스토리의 영화를 다룬 적이 있다.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어도 똑같은 하루가 무한반복된다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결은 살짝 다르지만 요즘에 내 인생에도 그런 요소가 있다는 의심이 든다. 인생 결정의 상황이 왜 이렇게 주기적으로 리셋되는 건지!
첫번째 결정.
20대 후반, 나는 내 인생을 번역에 걸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성격과 상황상 번역이 딱 맞는 듯 했다. 바로 이거야! 몇 년 동안 아슬아슬했지만 그럭저럭 꾸준하게 일을 했는데,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지면서 출판계는 완전 직격탄을 맞았고, 산탄을 한몸에 받은 나의 7년 커리어는 장렬히 전사했다.
두번째 결정.
어, 어떻하지? 일단 책표지 디자인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익혀둔 일러스트와 포토샵으로 웹디자이너로 겨우 취직을 할 수 있었고, 삼년 정도 일을 한 후 처음 예상했던 대로 닷컴버블이 꺼지는 바람에, 나는 다시 번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원래는 디자인일을 하면서 프로그래밍을 익히려고 했지만 이미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내가 처음부터 배우기엔 무리였으니까. 다시 원점으로 복귀.
세번째 결정.
그래, 까짓거 이렇게 된거 공부나 더 하자! 결국 팔자에도 없는 가방끈이 쭈욱 늘어났고, 그후 프리랜서 번역가 겸 강사로 일하다가 은퇴를 했다. 학원을 거쳐 대학원에 가고 다시 강사로 일한 기간을 모두 합치니 이십년이 조금 안되는 거 같다.
네번째 결정.
은퇴하기 전, 나는 취미로 그림을 배우면서 할머니 아마추어 화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했다. 어차피 프로가 되지는 못할거고, 간간히 여행다니고, 대부분은 서식지에 처박혀 그림을 그리고, 명화모작으로 재료비만 건지면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역마살이 발동하면서 실패! 서식지에 처박히기는 커녕 거의 2년 정도 거의 매일 둘레길을 걷고 여행사 당일치기 프로그램을 따라다니며 엄청 돌아다녔다.
다섯번째 결정.
그럼 이렇게 돌아다닐 바에는 아예 산 근처로 이사를 갈까? 까짓거 매일 산에 가고 사진찍고 그거 정리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이건 하기도 전에 실패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허수아비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약 한달전 인제 아침가리 계곡 트래킹에 가서 확실하게 깨달았으니까. 평지를 걸을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물속에서 걷는 구간이 많은 계곡 트래킹은 달랐다. 게다가 아무리 초록이가 좋고, 나무가 좋고, 숲이 좋아도 그냥 걷기만 하는 건 그리 올바른 선택이 아닌 거 같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다시 결정해야할 시기가 온 거지.
이제 마녀 아줌마는 결정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아직은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완전히 새롭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 으디로 가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