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아줌마의 여름 전쟁
이 정도되면 '무더위 융단폭격 속에서의 생존 투쟁'에 가깝다. 아악!!!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워!!!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데다 몸도 가벼운 편이라서 사람들은 내가 더위에 강한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추운 것보다는 더위가 낫다고 여겼지만 올해부터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추위와 빙판길은 여전히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지만 이정도로 더우면 그냥 싫다가 아니라 사람이 '망가지는' 느낌이다. 이상도 하여라, 새벽운동도 여전히 하는 중이고, 나름 건강도 챙기고, 겉보기는 멀쩡한데, 내부 속사정은 그러하지 않다. 가장 문제는 더위에 지친 내부 장기들이 태업을 넘어 파업 시위 중이라는 거다.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평소에도 식사 후 잠시라도 산책을 해야 소화가 되는 편인데 올 여름은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 걸어봤자 도리어 역효과가 나는 거지.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에어컨과 서큘레이터를 동원했으나, 인공적 냉기와 바람은 잠시동안 열기를 식혀줄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사용하다가는 또 역효과가 난다. 실제로 조금 많이 가동했다가 감기와 지독한 근육통에 시달렸고, 근육통은 지금도 진행중이므로. 딱히 무지무지 아픈 곳은 없는데도 모든 곳이 아픈 기묘한 기분이란!
더욱 황당한 건,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거라는 무시무시한 전망이다. 아니, 올해도 이렇게 힘든데 내년에는 도대체 얼마나 더워질 것이며, 그 와중에 과연 생존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것다.
그렇다고 널부러진 채 아까운 시간을 그냥 소모할 수는 없어서 기왕 서식지에 발이 묶인 참에 두 가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나는 근처 구청에서 진행하는 동영상 프로그램인 프리미어 수업이고, 다른 하나는 유튜브 스페인어 강좌이다. 동영상 편집은 나돌아 댕기면서 찍은 영상들을 편집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지금까지 필요한 프로그램을 거의 독학으로 익혔지만 왠지 모르게 이것 만큼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서 강좌를 듣기로 했고, 기왕 들을 거 가장 복잡하다는 프리미어를 배워보기로 하고 신청한건데, 다행히 열정적인 강사님을 만나서 진행에 무리가 없다. 어차피 프로그램은 계속 새로운 게 쏟아지고,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신기능이 추가되고 인터페이스는 바뀌므로 한번 배웠다고 줄창 써먹을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가장 중요한 건 기본 매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거다. 혹시라도 사용법을 잊어버리거나 생판 첨 보는 신 기능이 나오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와도 기본이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대충 응용가능하고, 정 모르겠거든 블로그 혹은 유튜브를 뒤지면 사용법이 나온다.
그에 반해 스페인어 강좌의 경우, 당장 필요한 것도, 실제로 사용하게 될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평소에 관심이 있었고, 내가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영어공부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생판 모르는 언어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긴 했다. 그에 덧붙여,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스페인 쪽으로 여행을 갈 때 인사말 정도는 그 나라 언어로 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사람마다 외국어 공부 방법이 다른 거 같긴 했다. 누군가는 외국어 방송을 계속 들으니 귀가 트였다고 했고, 누군가는 문장을 다 외워서 해결했다고 하고, 누군가는 문법책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이 세상 모든 비법이 안통하는 황당한 경우였던 나는 뒤늦게 영어를 공부하던 시절, 듣기와 말하기는 딕테이션-셰도잉으로 했고, 문법 대신 의미단위 (주로 전치사구)로 외우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게 스페인어에서도 통할 지 궁금했다. 어쨌든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어어, 동사변화가 왜 이렇게 복잡한거니? 주어 생략은 왜 이렇게 많고, 목적어가 왜 동사 앞에 나오냐고! 뭐가 뭔지 모르겠길래 서점에 가서 책도 한번 찾아봤는데, 문법책을 보자마자 익숙한 좌절감이 몰려들었다. 맞아, 난 문법책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 일단 어디까지 어떻게 공부할 지 생각해봤다. 일단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건 기대하지 말고, 여행가서 인사말하고 음식 메뉴판 읽고, 그 외 각종 스페인어 문장을 보면서 그 의미를 대충 어림잡아 때려맞힐 정도로 하면 되는 거 아냐? 공부 방법 역시 처음부터 꼼꼼하게 깊이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일단 한번 쭉 훓어보면서 스페인어의 구조와 알아야할 내용들을 숙지한 다음에, 다시 말하자면 큰 뼈대를 잡아놓고 하나하나 더 깊게 들어가는 게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마디로 가볍게 가볍게 또 가볍게!
현 위치는 어디일까? 일단 유튜브 강좌 42개는 모두 들었다. 세세한 사용법은 아직 모르고 외운 것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수준이다. 그저 위안이 된다면 스페인어에서 익히고 외워야 하는 내용을 대충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중 필수적으로 알아야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사가 남성 여성 뿐 아니라 단복수에 따라 변화한다. 규칙변화도 있지만 불규칙변화가 아~~주 많다.
동사를 보고 주어를 유추할 수 있어서 그런지 주어 생략이 많다.
시제변화도 절대 간단하지 않다.
간접목적어와 직접목적어가 동사 앞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 동사 끄트머리에 어미처럼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재귀대명사도 그렇다. 이거 진짜 헷갈린다.
소유대명사도 전치형 후치형이 있다.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문장 요소들의 위치가 상당히 유동적이어서 스펠링대로 읽는다는 사실 하나 빼고 모든 게 정신없다. 하하하
지금부터는 하나씩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봐야한다.
오십대 중반을 넘어, 아니 곧 앞자리 숫자가 바뀔 준비를 해야하는 아줌마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를 대상으로 하는 이 실험의 결말이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