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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27. 2023

나만의 그림체를 찾아서

마녀 아줌마의 세상살기

"내 그림체를 찾고 싶어!"

정물 소묘

처음에는 실제 정물을 놓고 가능한 똑같이 묘사하면서 기본기를 다지려고 했다. 세상은 오래 전부터 '잘 그린 그림'보다는 자신만의 해석이 들어간 반구상, 추상화 혹은 특별한 코드를 가진 단색화 쪽으로 기울었으나, 그래도 필력은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다음에는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외부에 나가 풍경을 보고 그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적 공간적 체력적 조건이 안따라주니 사진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제 그 한계에 부딪혔다. 사진을 찍으면 3차원 세상이 2차원으로 박제되고 이미 해석이 된 상태이므로 나의 해석이 들어가는 걸 막아버린다. 

엄마에게 선물한 고흐 그림

모작도 해봤다. 명화 모작도 초보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비록 돈은 얼마 못 받지만 지금도 팔 수 있는 시장이 작게 형성되어 있긴 하다. 나이가 더 들면, 그냥 모작을 하면서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생각도 안해본 건 아니었다. 지금와서 전업작가가 될 수는 없으니 아마추어의 소일거리로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자 답답증이 몰려들었다. 사진이든 명화든 어떤 원본을 두고 그것과 똑같이 가야한다는 게 어딘가에 묶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것도 아니네..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했다.  사진에 얽매이지 않고 풍경화에 나의 해석이 들어가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자꾸만 사진에 눈이 가고 어느 결에 따라 그리고 있었다. 상상 속 이미지를 그려보려고 했지만 무작정 하다보니 자꾸 덧칠을 하게 되었다. 유화는 자체의 느낌이 무거운데다 색이 쌓이면 아래 색깔이 배어나와 중후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내가 원하던 가볍고 밝은 이미지에 맞지 않았다.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는 게 낫다는는 사실은 알면서도 아크릴 작업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엄청 빨리 굳어버리는 아크릴 물감을 다루는 게 어려웠다. 


"어떡하지?"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자유 드로잉을 해야 한다. 낙서라도 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학교에 다닐 때는 교과서든 연습장이든 낙서를 엄청 해댔는데, 컴퓨터가 나온 뒤 자판을 두들기며 살면서 연필이나 펜을 잡아본 적이 거의 없으니 당연히 어딘가에 끄적거렸던 버릇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지금부터라도 펜을 손에 들고 낙서하는 습관부터 다시 잡아야 할 판국이었다. 


길거리에 혼자 앉아서 그리기는 너무 어색해서 카페에 앉아 낙서하기를 시도했는데, 대체 무엇을 먼저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 해본 적 없는 걸 하려면 낯설고 어색하다. 이거 역시 익숙한 거 부터 해야하는 군. 누군가는 주변에서 눈에 띄이는 것을 그리라고 했지만 내게는 어려운 방법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그릴 그림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것도 일단 해보고 실패해야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 나의 그림체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지만 굽이굽이 가다보면 어딘가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될 거야 "


거기에 덧붙여 아이패드는 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머리 속 이미지에 색을 입혀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누가 일러준 게 아니라 이것저것 시도하려면 며칠이 훌쩍 가버리기도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나마 상상의 이미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일단은 마음에 여유를 안겨주었다. 그 결과물들을 다시 유화든 아크릴이든 캔버스에 옮겨보는 작업도 시도해야지. 이렇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오고가면서 서로에게 힘을 얻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하지만 돌고 돌아 언젠가는 유화나 아크릴로 이루어진 아날로그의 세상 속에서 갓 구운 빵처럼 말랑거리고 안개꽃처럼 뽀얗고 부드러운 그림을 그릴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곳에 도달하게될 나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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