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어보지 않고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다.
팀장님 아들이 올해 재수능에 응시했다. 올해는 작년과 달랐다.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받게 되어 오히려 고민을 하고 있었다. 목표한 학교보다 상위권 대학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며칠 고민한 끝에 서울권 대학으로 목표를 정했다고 했다. 문제는 실기 종목 중 하나인 높이뛰기가 너무도 생소한 것이었다. 실기 학원에 준비생들이 많다 보니 연습 기회는 적었고,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의 고민은 아버지의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팀장님 자존심을 내려놓고 기억 속에 있는 과거의 사람들을 불러왔다. 10년 전 자기 밑에서 일했던 직원과 실기 학원을 운영 중인 예전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부탁을 하셨다. 양쪽 다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통화를 마치고는 안도하셨다.
"잘해주길 잘했지. 못해줬으면 이 친구들 입장에서는 거절하면 끝인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사람 좋다는 말이 어울리는 분이기에. 과거 삶에서 뿌렸던 씨앗이 나고 자라 거두어들이고 계신 느낌이었다. 아들은 알고 있을까?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들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삶을.
팀장님의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몇 년 전 결혼을 앞둔 나는 아버지와 등산을 했다. 아버지는 걷고 또 걸으며 그동안 내게 못 했던 말을 털어놓으셨다. 과거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초임 시절 직장의 술 문화는 고약했다. 상사는 신고 온 구두에 맥주, 소주, 고춧가루 등 각종 것을 섞어 마시게 했다고 하셨다. 구두 속 폭탄주 위로 가족들 얼굴이 비치었을까. 아니면 악마 같은 상사 얼굴이 비쳤을까. 그날의 술자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상상조차 어렵다. 아버지만큼 깔끔한 사람도 드문데 얼마나 지독하셨을까. 게다가 가난으로 인한 학력 한계는 진급 한계라는 결과를 낳았다. 실력이 있어도 한계는 명확했다. 사회적 장벽은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각종 수모와 고통을 견뎌내며 한계를 넘으셨다.
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목욕을 했고, 여행을 했고, 여행 뒤에는 아버지 품에 안겨 잠들었다. 함께한 시간만이 사랑이 아니었다. 함께 하지 않는 시간에도 아버지는 사회에서 애쓰며 가족을 향한 사랑을 이어가고 계셨다. 어느덧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와 씻고, 여행하고, 잠든 아이를 들쳐 업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몸부림도. 이제서야 알아가고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담긴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