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페르소나가 달라지지만, 특히 다섯 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는 더더욱 말이 줄어든다. 그중엔 꼭 한 명씩, 말을 멈추지 못하는 이야기꾼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자리에서 주로 경청하는 쪽이다.
사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에도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그저 흘려듣는 건 ‘들어주는 것’이라 할 수 없으니 제외하고, 1) 말을 끊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는 스타일, 2) 상대의 말을 다시 정리해주며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스타일, 3) 궁금증이 생기면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는 스타일, 4) ‘나였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느낀 점을 덧붙이는 스타일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이 네 가지 방식을 그때그때 섞어 쓰는 편이다.
조금 독특한 점이라면, 나는 언론홍보를 직업으로 삼고 있어 일종의 직업병이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의 ‘본질’을 파악하려 들고, 상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사이트를 캐내려는 습관이 있다. 말하자면, ‘내가 만약 기자라면’이라는 마인드가 장착된 상태다. 어떤 인물과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궁금할 만한 포인트일지, 어떻게 하면 잘 끌어낼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발리에서 만난 동행들은 하나같이 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당시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소방대원, 마케터, 변호사, 에어비앤비 운영 사업가 등 직업도 다양했고, 모두 90년대생으로 공감대 형성도 수월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깊어졌고, 자연스럽게 서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터놓게 됐다. 그중에서도 소방대원의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원래 광고대행사에서 일했지만,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소방대원을 준비하게 됐다고 했다.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부터가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그가 들려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투신 사고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파트 고층에서 뛰어내리면 대부분 즉사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예컨대, 얼굴이 반으로 갈라진 상태에서도 숨이 붙어 있다면, 두 조각을 맞대고 병원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살아 있다면 소방대원의 몫이고, 숨이 멎었다면 그때는 경찰의 몫이라고.
소방대원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신고 유형도 있다. 바로 지하에서 불이 난 경우다. 불 자체보다도 시야 확보가 어려운 게 문제라고 했다. 지하의 밀폐된 공간에 연기가 가득 차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 진입하기 전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며 동선을 계산해야 한다고. 그 와중에 “안에 사람 있는 것 같아요” 같은 말을 무책임하게 던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말 한마디로 생사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극도의 긴장 상태 속에서 이성의 끈을 붙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고양이 구조나 벌집 제거 같은 사소한 일부터, 신체가 분리된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일까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절로 경외심이 생겼다. 몇 번이고 진심으로 그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그는 실용적인 팁도 하나 알려줬다. “산에 갔는데 어디선가 드론 소리가 들리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