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과 소주

by 호준코리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음식’이라고 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발리는 미식 여행지로 기억되진 않는다. 물론 내가 제대로 된 발리 음식을 접해보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허름한 길거리 가게에서 파는 한국식 백반을 연상케 하는 나시짬뿌르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 외의 식사들은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메뉴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 발리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조금 민망하지만 “삼겹살과 소주”라고 답하게 된다. 물론 고기 퀄리티만 따지면 한국의 삼겹살 맛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김치와 함께 쌈을 싸 한입에 넣었을 때 느껴졌던 그 만족감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낯선 땅에서 만난 익숙한 맛은 생각보다 더 큰 위로였다.


그날의 ‘삼쏘 원정대’ 멤버는 나를 발리로 초대한 그녀, 그녀가 길리섬에서 만난 동행(이하 길리섬녀), 그리고 러닝맨, 이렇게 넷이었다. 특히 길리섬녀는 삼겹살과 소주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참고로 그녀는 ‘참이슬’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직 ‘처음처럼’만 찾았다. 그리고 고기 굽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엔 러닝맨과 내가 집게를 들고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집게는 길리섬녀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는 불판의 특성을 파악해 고기와 김치를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우리 사이에서 ‘삼겹살 마스터’로 등극했다.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생전 처음 만난 러닝맨에게 마치 챗GPT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듯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피드백을 쏟아냈다. 그러자 러닝맨은 ‘머신 러닝맨’으로 진화했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착실히 피드백을 수용하며 합을 맞춰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다 같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그날의 마스터피스. 상추 위에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삼겹살 한 점, 노릇하게 구운 김치 한 점, 밥 반 숟가락, 그리고 쌈장 약간. 그렇게 정성껏 쌈을 싸고, 소주 잔을 부딪치며 ‘짠’을 외친다. 한 모금 들이켜고, 쌈을 입에 넣는 순간. 그건 그냥 맛있는 걸 넘어서, 뭔가 제대로 된 한 장면 같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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