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1.
창문에 무언가 튕기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비가 오나 봅니다.
요 며칠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엄청 더웠는데 오늘은 비 덕분에 가지고 온 옷들이 재 역할을 해서 다행입니다.
나고야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왔습니다.
다른 도시들은 일로 자주 들르게 되는데 유독 나고야는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출장이 아니기에 오랜 친구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의 일본어 선생님이자 잊지 못할 호의를 베풀어준 이 친구는 이제 어느새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고 한 남자의 와이프이자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20년 전 도쿄에서 유학하던 저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아르바이트였기에 생활은 궁색하기만 했고 몸은 점점 말라가고 있을 때 출장차 도쿄에 온 이 친구는 저의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염치도 없이 저는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일본어에 아리가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에 관심이 없더라도 일본어로 고맙다를 뜻하는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有り難い(아리가타이)
한자로 쓰면 이렇게 됩니다.
일본어 동사 뒤에 가타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하기 어렵다’라는 뜻이 결합해서 ”존재하기 어려운, 있을 수 없는’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과 더불어 우리가 많이 아는 일본어 중에 ‘스미마셍’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済みません(스미마셍)
일본어 동사 뒤에 마셍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부정형이 되고 스미마셍은 ’ 무언가 끝나지 않다 ‘라는 뜻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두 문장이 전통적인 일본을 잘 나타내는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두 문장 모두 너무 자주 사용해서 그 안에 담긴 뜻을 일일이 생각하면서 쓰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 두문장은 恩返し(온가에시: 보은, 은혜를 갚다)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리가또는 ‘베풀어 주신 행동이 실제로는 하기 어려운 것인데 저를 위해 해주셨군요’,’ 참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셨군요 ‘,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미마셍은 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안할 때도 사용하고 고마움을 표현할 때도 사용하니까요.
하지만 핵심은 같은 것 같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피해를 입혔는데 그거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
”나를 위해 당신이 불편을 감수하고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고야 역에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자 남편과 함께 마중 와준 친구를 한눈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후덕해진 모습 외에는 어릴 적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녁식사까지 예약해 놓은 친구부부는 시간이 좀 남으니 호텔 체크인부터 하자고 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키를 받고 방으로 향하는 제게 친구는 에코백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선물이라고.
또 염치없게 만들 생각인가 봅니다.
방에 올라와 급히 케리어를 열었습니다. 그 녀석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가져오기를 잘했습니다.
받았으니 뭔가 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가져다주고 싶었습니다.
이게 한국의 정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 중간에 서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친구 부부가 예약해 놓은 이자카야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도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20년 전에 베풀어준 호의에 저녁을 대접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조금은 済んだ라고 얘기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