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인생의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시간입니다

by Robin 임봉규

얼마 전 친구 자녀의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축하의 웃음과 사진 촬영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학 시절을 함께 보냈던 동기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30년 전 빳빳한 신입사원 사령장을 들고 설레던 청년들이 이제는 대부분 첫 직장에서의 긴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동안 준비했던 기사자격을 취득해서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미뤄 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며, 또 누군가는 여전히 새로운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은퇴’라는 단어가 오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해방처럼 들리고, 누군가에게는 막막하게 들리는 단어, Retire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퇴를 사회적 역할이 끝나는 순간처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Retire라는 단어의 뿌리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re-trahere(뒤로 끌어당기다)와 프랑스어 retirer(뒤로 물러서다)에서 유래했습니다.


본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면에서 잠시 물러나 자신을 정비하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장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 숨을 고르고 다음 전략을 준비하는 장수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단어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Retire를 Re(다시)와 Tire(타이어)로 읽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고속도로를 달려온 자동차는 타이어가 마모되기 마련입니다. 접지력이 약해진 타이어로 계속 속도를 내면 언젠가는 위험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멈춤이 아니라 정비입니다. 낡은 타이어를 빼고 새로운 길에 맞는 타이어로 갈아 끼우는 시간입니다. 저는 은퇴가 바로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자격증을 준비하고, 취미를 전문 영역으로 확장하며, 봉사나 컨설팅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멈춰 서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에서 다음 구간을 더 안전하고 즐겁게 달리기 위해 삶의 접지력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100세 시대의 60대는 더 이상 결승선이 아닙니다. 그저 길의 성격이 바뀌는 갈림길일 뿐입니다. 젊은 시절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지나쳤던 풍경들이 속도를 조금 낮춘 지금에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컨설팅이든 배움이든 창업이든, 혹은 조용한 휴식이든 어떤 길이든 괜찮습니다.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운 자동차는 이제 젊은 시절에는 감히 선택하지 못했던 길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국 Retire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보면 은퇴는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잠시 멈추어 자신을 정비하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은퇴는 인생이 보내는 가장 조용한 출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새로운 타이어를 고르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도, 다시 길 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